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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스박씨 Mar 07. 2019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

인생, 다시 쓰기 - 1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


타인으로부터의 인정(혹은 두려움)이나 경쟁 등 외부의 자극을 동력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 혹은 자기 발전이나 성취 감등 내부의 동력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사람은 살아갈 때 본인의 의지를 최대화시켜줄 무언가를 삶을 이끌 연료로 삼는다. 그것은 본인의 선택일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자연스럽게 형성되기도 한다. 가령 어린 시절의 결핍, 낮은 자존감이 그 원인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칭찬을 받은 경험, 무언가를 극복해본 경험의 누적이 그 밑바탕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멈춰서 생각해보면 이것들은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을 맘껏 누리는 데 있어 다소 부족해 보인다.


행복으로 가는 목적지는 모두 동일하지만 연료의 차이로 어떤 이는 늦고 어떤 이는 잘못된 방향을 향하고 있다면? 행복을 느끼는 임계점이 존재하고 그 임계점에 다다른 사람만이 행복을 소유하게 된다면?

이것이 옳다면 행복은 모두에게 해당되는 권리는 아닌 듯 보인다. 이에 넘어서 꽤나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잠시 잠깐 얻을 수 있는 희열 정도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냥 멈춰있어도, 목적과 방향이 없어도, 존재 자체로 행복할 순 없을까? 보다 많은 사람이 또 보다 쉽게 행복을 소유할 순 없을까?

이런 질문에 우리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향하는 목적을 바라본다. 내가 설정한 목적이 틀린 것은 아닌지 혹은 그 방향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구식 증기기관차를 상상해보자. 기관차의 동력을 계속해서 유지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석탄을 화로에 부어 넣는다. 현재의 우리의 모습이 기관차를 어떤 방식으로든 움직이게 하기 위해 계속해서 연료를 화로에 넣는 자의 모습이라면 꽤나 반복적이고 고단해 보인다. 목적지에 도착한 뒤 잠깐의 쉼이 우리에 주어질 행복의 전부라면. 젊음이 찰나인 것처럼 행복 또한 찰나임이 옳은 것일까.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모습이 이것이라면 계속된 물음이 남는다. 


존재 자체로 행복할 순 없을까


그렇다면 존재 자체로부터 오는 행복감을 지속적으로 경험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 연료를 부어 넣는 노력을 멈춰야 하고

둘째, 우리가 설정해놓은 행복의 목적 지점을 지워야 할 듯하다.


여기서 우린 반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의 동력은 멈춰버리는 것이 아닌가? 목적지 없이 살라는 말인가?


그런데 우리의 우려와 달리 그어놓은 ‘여기까지 가면 행복할 거야’라는 선이 없어지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선 자리에서 행복을 찾게 된다. 그리고 어느새 목적지로만 여겨지던 행복은 연료가 되어 느린 듯하나 어딘가로 우리의 삶을 인도한다. '자기 주도적'으로 행복을 추구할 힘을 얻는다. 


자기 주도


아이들을 생각해보자. 최근 주목받는 ‘자기 주도’ 란 무엇인가. 결국 외적인 공급으로부터 움직이던 본인을 비우고 내적인 필요에 의해 공급을 대신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계속 채워오던 것을 비우는 작업은 쉬운 일은 아니다. 일로 시간을 가득 채워오던 사람에게 쉼이 주어졌을 때 쉼을 충분히 누리기 어렵듯 비우는 것도 채우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나 잘 가고 있는 것 같은데 계속해서 내 안에 의문이 남고, 왠지 모를 우울감으로 본인의 삶이 채워져 있다면, 한번 멈춰서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청춘이 찰나이듯 우리에게 주어진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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