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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스박씨 Nov 08. 2019

한국 게임 업계의 불황은 정말 52시간제 탓일까.

게임 개발자 이야기 _ 1편

한국 PC게임의 황금기를 이끈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과거 2000년대 초반 황금기를 맞던 한국 게임 업계가 내리막을 걷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오던 일이다. 최근 52시간제 셧다운제 등의 정부 규제로 이슈화된 것일 뿐 게임업계의 새로운 이슈라고 보기 어렵다.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2000년대의 한국 게임의 황금기를 살았고 중국 모바일 게임의 황금기의 시작점에 중국 회사에서 근무했었다. 그리고 지금은 미국 게임 회사(페이스북 게임, 모바일 게임, 콘솔 게임)에서 급변의 시기를 지내오고 있다. 그래서 개인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의 한국 게임 업계의 문제의 원인과 해결점을 개발자의 관점에서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현재 언론의 주목하는 문제들

  

  현재 언론이 주목하는 게임업계 문제의 원인은 크게 3가지 정도인 것 같다. 


중국 게임 시장의 팽창과 자국 우선 주의

    중국이 한한령을 내리는 시작점이 되었던 2016년 Thaad 배치 논란에서 많은 사람들이 Kpop이나 한류 문화 등을 부각했지만, 게임은 그중에서도 큰 피해를 입은 콘텐츠다. 중국시장에 게임을 퍼블리싱하기 위해서는 판호라고 하는 서비스 허가권을 받아야 하는데 한한령을 계기로 완전히 그 가능성이 차단되었다.  그 결과 중국과 한국 사이에 절대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형성되었다. 중국의 게임들은 거대 자본을 등에 업고 물밀듯 한국 시장을 공략했지만 한국 게임들은 중국 정부의 규제로 수출 제로에 머물고 있다. 


한국 정부의 게임 규제 정책

    한한령 이전인 2013년부터 시작된 한국의 게임 규제 정책은 게임 중독법 발의, 강제적 셧다운제, 확률형 아이템 규제 법안, WTO의 게임을 중독물로 지정 논란 등으로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그러한 규제들로 인해 게임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악화되어 왔고, 게임 업계의 어려움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게임 산업의 변화

    많이 거론되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바라보고 있는 부분은 과거 10여 년 간의 급격한 게임 플랫폼의 변화이다. 10년 이전을 생각해보면 모바일폰을 기반으로 한 게임은 상상하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게임 산업의 주류는 PC를 기반으로 한 RPG형 게임들 또는 역시 PC 기반의 FPS 게임류였다. 하지만 게임 플랫폼의 변화에 따른 유저층의 이동으로 인해 PC게임들의 설자리가 그만큼 줄어들게 되었다. 그 결과가 게임 시장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한국 거리에서 보이는 대부분의 옥외 선전물이 모바일 주류인 것을 보면 가늠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주요 국가들의 개발 현실

    위에 언급했듯 한국 게임 업계는 위축될만한 여러 외부 혹은 내부 요소들에 직면해 있고 그것이 큰 경제적 불이익으로 연결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직접적 연관성을 가진 나라들, 중국과 미국의 상황은 어떨까?


거대해지는 게임 산업, 여전히 어려운 개발자의 삶 - 중국

    2년여간 중국 현지의 '넷이즈'라는 중국 게임 회사에서 근무했다. 현재 텐센트와 더불어 중국 게임 시장의 양대 산맥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는 회사이다.  물론 이 경험이 중국 게임 업계의 전체를 대변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중국 내 2위의 게임 회사 내부의 직원들을 통한 경험이니 적어도 상당 부분의 현지 상황을 가늠해볼 수 있겠다. 

2017-2018 기준 중국의 게임회사들이 10위 내 두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넷이즈에서 게임 개발에 참여하던 시기는 넷이즈가 본격적으로 모바일 산업으로 뛰어들기 직전의 시기였다. 넷이즈 역시 PC게임 개발사로 유명세를 얻던 1세대 개발사였기 때문에 그들도 변화되는 게임 플랫폼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가장 야심 차게 준비하던 것이 그들이 기존에 개발했던 PC 게임 IP(지적 재산권)들의 모바일 게임화였다. 그들의 예상처럼 이미 인지도를 가지고 있던 IP들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 시기 넷이즈는 세계 게임회사 수익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그 화려함 뒤에 내가 만난 개발자들의 삶은 달랐다. 


실력 있는 개발자들의 엑소더스

 

미국 내 리쿠르터들이 가장 많이 구인에 활용하는 플랫폼 '아트스테이션'

    Artstation, Zbrush central 등의 글로벌 아티스트들 또는 개발자들의 포트폴리오를 살펴볼 수 있는 사이트들을 보면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중국 개발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쉽게 그들이 중국 회사 안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들은 대부분 중국 내에서도 기업을 벗어나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이유는 중국 회사들의 성장이 개발자의 이익으로 연결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경험이나 명성을 쌓은 경력 개발자들은 프리랜서나 온라인 강의 등으로 빠져나간다. 오히려 그 편이 개인의 수익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중국 회사 내의 직원들의 연봉은 메니져 레벨의 몇몆을 제외하고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낮다. 상승률도 높지 못하다. 그래서 회사가 사용하고 있는 동기 부여 방법은 상위 몇 명에게 주어지는 엄청난 보너스다. 그런데 그 역시도 상당히 높은 레벨의 직원에게 주어진다. 과거 한국 사회의 제조업 회사들이 사용하던 방식과 흡사하다. 물론 중국 사회 전체의 임금구조에 비춰볼 때 게임업계의 임금이 낮은 것은 아니겠지만, 한국에서 상상하는 좋은 대우를 함께 누리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한국 언론은 흔히 한국 개발자들의 힘든 상황과 중국 기업의 호황을 등치 시켜서 비교한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춰보면 이것은 맞지 않다. 비교하려면 한국 개발자들의 상황과 중국 개발자의 상황을 비교해야 하고 중국 기업과 한국 기업을 비교해야 한다. 한국 개발자들의 상황처럼 중국 개발자들도 끝없는 야근과 박봉, 소통 부재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양국 모두 상위 몇%를 제외한 대부분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플랫폼 다변화를 꽤 하고 있는 게임 업계, 변화 가운데 놓인 개발자 - 미국

    그렇다면 미국은 어떨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 게임 시장도 엄청난 플랫폼의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모바일 게임 시장은 어느새 PC나 콘솔 게임 시장의 수익을 훨씬 넘어섰고, 그로 인해 많은 개발자들의 모바일 시장 유입이 있었다. 또 VR를 새로운 플랫폼으로 키우려는 움직임으로 인해 많은 모바일 회사들이 VR로 방향을 전환했다. 모바일 이전에는 페이스북 게임들이 있었고, 지금은 스트리밍 서비스가 새로운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보이고 있다. 이런 변화들이 고작 10년 안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그렇다면 미국에서는 게임 시장의 성장이 개인 개발자들의 상황과 연결되었을까?

'Zynga'의 황금기를 이끌어준 페이스북게임 'Cityville'

    중국행을 결정하기 이전에 'Zynga'라고 하는 대형 페이스북/모바일 게임사에서 근무했었다. 내가 근무하던 4년여간 페이스북 게임이라는 플랫폼에서 모바일로 변화되어가는 시기가 있었고, 그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한 회사는 4년여간 1000명 이상을 정리 해고했다. 그리고 엄청난 부를 안겨준 페이스북 게임의 왕좌는 과거의 영광처럼 희미해져 갔다. 이미 새로운 플랫폼인 모바일 게임은 수많은 경쟁자들로 포화 상태에 있었고, 그 사이에서 3000명에 이르는 규모의 회사를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Xbox one의 개발을 책임졌던 Don Mattrick을 새로운 CEO로 영입하는 등의 시도를 해봤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그 당시 함께 일했던 많은 모바일 게임 개발자들이 여전히 모바일 게임 업계에 남아있는데, 이러한 문제는 Zynga만의 문제가 아니었기에 몇몇 회사를 계속해서 수평 이동하며 수명을 연장하는 듯하게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이것이 미국 모바일 게임 산업의 단면이다.  

    물론 모바일 게임은 짧은 시간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장점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것은 기업 이익의 측면이고, 단기간의 개발 기간과 수익과 직결된 개발 구조, 소규모 개발인원 등 단점도 보인다. 이것이 내가 중국행을 결정하고 콘솔 게임 개발로 전향을 하게 된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단기간의 개발 기간은 개인 개발자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함은 물론이고 곧바로 게임의 성패로 드러난다. 기업의 수익 구조 역시 바꿔놓는다. 특히 수익을 주주들에게 공개하는 주식회사에 경우 매 분기마다 게임의 성패를 보고해야 한다. 게임이 성공했다고 해도 곧 따라올 실패를 준비해야 했다. 모든 게임의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여나 실패했다면 그것은 곧바로 인원 감축 등 개발자의 생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단기간의 개발 기간은 게임을 출시해야 할지 개발을 중지해야 할지의 결정도 보다 즉각적이게 만든다.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보다 많게는 수십 배에 달하는 마케팅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이다. 

    또, Free to Play 곧, 무료로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도록 공개하는 게임은 게임 내에 수익구조를 창출이 게임의 성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것의 의미는 과거 PC, 콘솔 게임 등 유료 게임은 콘텐츠 전체가 주는 재미를 통해 유저에게 만족감을 주는 형태였다면, 현재의 보다 많은 사람이 보다 즉각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구조로 게임이 변화를 겪으면서 게임의 무료화를 기반으로 한 수익 구조는 게임산업의 중심을 차지했다. 모바일 게임이 이 중심에 있다. 사실 무료화 게임이 모바일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순 없다.  PC게임 역시 같은 수익 구조를 갖고 시작했다. 하지만 보다 긴 개발 기간과 더 나은 퀄리티에 대한 요구로 인해 개발자들에게 좀 더 나은 삶을 제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바일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이유는 최근 한국 게임 업계의 주류가 모바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게임, 미래가 있을까

    위에서 들여다본 각국의 상황들처럼 한국의 상황을 '다른 나라는 다 잘 나가는데 여긴 왜 이래'라고 볼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모든 기업들이 어려움 가운데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각국의 개발자들은 모두 불투명함 가운데 있다. 

    그렇지만 각자의 장단기적 해결책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중국은 단기적으로 정부가 외국 기업의 유입을 막아 내부에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을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주류가 되는 게임 개발사들이 플랫폼까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상생이라기보다 독점적인 모습으로 비치는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중국과 같은 큰 정부를 지향하는 사회에서나 가능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경쟁과 상생을 반복하고 있는 Apple의 IOS와 Google의 안드로이드

   미국의 해결책은 플랫폼 개발을 주로 하는 Facebook, Apple, Sony, Microsoft 등이 소프트웨어 개발사들과 오랜 협업체계를 통해 게임 업계가 함께 상생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여전히 과거의 플랫폼이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를 가진 것도 개발자들이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미국 내에서도 주류는 모바일 게임이지만, 여전히 Riot games, Blizzard 등을 앞세운 PC게임류와 PS4, Xbox one 등을 통한 콘솔 게임의 보급이 공존하고 있다. 새로운 플랫폼을 개발하는 대형 IT 회사들이 있고, 과거 플랫폼들을 계속해서 확장시켜나가는 기존의 하드웨어 개발사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공존하며 생태계의 공존 능력을 확장한다. 이것이 한쪽 생태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개발자들이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이 가능함을 뜻하고, 인공호흡기를 달고 커리어를 이어가는 모습이 아닌 산업의 생산성에 영향을 주면서 개발자가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미래의 한국 게임은...

    개인적인 바람으로 한국 게임 업계가 이러한 미래를 설계하고 공존해 나아가기 원한다. 최근 게임 스트리밍이 새로운 플랫폼으로 떠오르고 있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조만간 꽤 큰 규모의 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넷플릭스의 등장으로 영화, 드라마 산업의 콘텐츠 수요가 폭증한 것처럼 게임 스트리밍의 경쟁이 가속화되면 좋은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도 가속화될 것이다. 이것이 잘 정착되어 과거 거듭된 변화를 계속하던 플랫폼의 변화를 멀티 플랫폼의 구조로 통합하게 되면 아마도 한국 게임 업계에도 새로운 기회들이 올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 한국 내 콘솔 게임을 개발하는 회사들의 소식이 속속 들리는 것을 보면 그 바람을 느낄 수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 중국 게임의 성장은 개발자들의 만족과 거리가 멀다. 하지만 미국 게임의 성장은 꽤나 개인 개발자들의 만족과 밀접하다. 이런 상생은 규제를 푸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쇄국정책으로 외국 자본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오히려 외국 회사들이 한국 내에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와 개발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들을 늘려주는 것, 그리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더욱 올바른 방향일 수 있겠다. 

    수익만을 쫓아 과거 플랫폼을 버리고 핫한 플랫폼만 쫓아 수익의 규모를 유지하는 방식은 기업 경영에는 단기적으로 유리할지 모르겠지만, 그 기업에 속한 개발자들에게는 살아갈 공간을 잃게 되는 일이다. 장기적으로 본인의 삶을 설계할 수 없다. EA, 엑티비젼, 락스타 등의 미국 내 게임회사들도 위와 같은 경영방식으로 개발자들과 팬들로부터 외면받은 사례들이 있다. 한국 게임 업계가 무엇이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길인지 기업인의 입장을 넘어 게임을 사랑하는 유저, 창의력을 담아 창작하는 개발자의 입장에서도 생각할 수 있는 해안을 얻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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