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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스박씨 Dec 19. 2019

우리가 밤낮없이 일해야 기업이 잘되나요

전지적 게임 개발자 시점 _5편

    최근 주 52시간제 노동 시간제한과 관련해서 많은 이슈가 있었고, 여전히 논란은 계속되고 있는 듯하다. 주 52시간이라고 하면 주 5일 근무제 기준 하루 10시간 근무하고도 2시간을 추가 근무해야 가능한 시간인데, 평균 통근 시간을 하루 2시간(출퇴근)으로 잡고 점심시간을 1시간으로 계산하더라도 하루 13시간을 집 밖에 있어야 가능해진다. 그럼 많이 양보해서 8시에 집 밖을 나간다고 생각하면 9시에 귀가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해지려면 아이들을 9시까지 굶기거나 아이들이 한참 꿈나라인 7시 이전에 집 밖을 나가야 가능해진다. 물론 5일 중 이틀은 1시간 추가 근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마저도 힘들어진다. 

    그런데 경악할 일은 이것이 기업의 생산성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이고, 더 나아가 국가 경쟁력에 어려움을 초래할 것이라는 기사들이다. 이 기사들의 시작점에는 대부분 성공한 기업가들의 인터뷰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정말 기업의 생산성은 직원의 밤낮 없는 헌신이 필연적인 것일까? 개인 개발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기업의 생산성을 늘리려면

    4차 산업을 필두로 기업들은 생산성 경쟁에 돌입한 듯하다. 여기서 생산성은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효율적인 기업 운영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 효율적 기업 운영을 위해 기업이 선택하는 수많은 방법들이 있는데 특히 게임 산업을 기준으로 대표적인 몇 가지를 알아보자. 


외주 인력의 활용

    수년 내 게임 개발시장에서 가장 큰 변화로 꼽을 수 있는 것들 중 하나로 '게임 개발의 외주화'를 들 수 있다. 개인적으로 'Zynga'라는 모바일 게임 개발사에서 일하던 당시 Outsourcing manager로 일했었던 경험이 있고 현재 회사에서도 또 과거 중국에 있을 당시에도 외주 인력과 함께 일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지난 10여 년간의 외주 시장의 성장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해 왔다. 

    사실 외주라고 하면 저임금 노동력을 게임 개발에 사용하는 것이 주를 이뤘다. 게임에 들어가는 반복적인 어셋이라던지 창의성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 지원을 받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최근 게임이나 영화 전반 산업에서 보이는 외주화 방식을 보면 게임 개발의 시작과 끝 부분 전반에 외주 인력을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세계적인 기술력을 가진 외주회사를 통해서 게임의 디렉션을 정해줄 가이드라인들에 대한 외주를 진행한다. 과거에는 회사 내부 인력을 통해서 하던 일들을 현재는 보다 적극적으로 외부 고급 인력들을 활용한다. 

개인의 성장 없는 시장의 미래는 어둡다

    이 변화는 사실 개인의 생산성과 연관성이 있다. 개인의 역량을 최대화한 아티스트 또는 기술자들은 생산 전반에 참여하는 스트레스를 감당하며 경력을 낭비하기보다 본인의 극대화된 역량을 사용할 수 있는 프로젝트의 일정 영역에 집중하기를 선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팀에 소속되어선 불가능하기 때문에 프리랜서로 기업 외부에 머물면서 본인들이 선호하는 프로젝트를 선택해 진행하게 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개인 생산성을 향상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동반한다. 새로운 툴이나 효율적인 제작 방식을 연구하고 시장이 원하는 가이드를 계속해서 제시하면서 본인들의 생산성을 입증한다. 

    최근 몇 년간의 이런 변화는 개인 작업자의 생산성 향상이 기업의 생산성 향상에 크게 영향을 주는 변화라고 할 수 있겠다. 예를 들면 크라터(https://www.artstation.com/karakter)라는 외주 회사의 포트폴리오를 살펴보면 다수의 대형 게임/영화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결정해주는 컨셉 디자인들을 볼 수 있다. 이들은 업계 최고의 아티스트들의 라인업을 보유하고 대형 프로젝트의 초반 작업 제작을 주로 맡아 진행한다. 

 

진보된 기술의 적극적 활용

    또 다른 게임 시장의 변화는 단연 나날이 진보되고 발전되고 있는 기술력을 들 수 있다. 근본적인 변화에는 그런 기술력들이 활용 가능하게 된 게임 기기 또는 PC 등의 하드웨어의 발전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 

    현재 콘솔 게임 업계는 또 다른 전환점을 눈앞에 두고 있다. 내년 겨울이면 Ps5와 Xbox 스칼렛이 출시될 것이고 계속해서 전해지는 소문들로는 엄청난 기술력의 집합체가 될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이다. 

최근 공개된 Xbox  스칼렛 X의 모습

    이런 하드웨어의 변화는 직접적으로 소프트웨어 개발에 영향을 준다. 영화 제작과는 달리 게임 개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는 Optimization(최적화)이 있다. 비주얼만 전달해주는 방식이 아닌 상호 연결되어 사용자의 조작이 영향을 주는 방식이기 때문에 하드웨어를 통해 주어진 공간 안 가능하면 많은 데이터로 품질을 올리기 위해서는 얼마나 불필요한 부분을 줄이 일 수 있는가가 생산성과 효율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다. 

    이런 진보되어가는 기술들은 개인 개발자에겐 어떤 영향을 줄까. 이 부분에서도 위에서 다뤘던 것처럼 개인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력이 필요해진다. 회사에서 현재 개발하는 것들을 지속하는 것은 사실 미래를 보고 새로운 것을 연구하는 것과 전혀 다른 문제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예로 들면, 초창기 게임 업계에 입문했을 당시 난 콘솔 게임에 대해 문외한에 가까웠다. 막연히 몇 번 플레이해본 정도였지 개발을 꿈꿔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회사 동료를 통해서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고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받으면서 미래의 목표로 변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매일 3-4시간씩 퇴근 후 개인 시간을 활용해서 그 목표로 가기 위한 노력을 해갔다. 그런 목표는 회사를 이직하는데도 영향을 주었다. 포트폴리오 준비에 더욱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중국행을 결심하기도 했었다. 그런 방향성을 기반으로 한 개인 생산성의 향상이 현재 10년 전과는 전혀 다른 프로젝트와 플랫폼에서 게임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물론 지금도 그 습관을 바탕으로 회사 내에서 살아남고 있다. 창작자에게 개인을 위한 다양한 방식의 노력은 필수조건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야근은 만악의 근원
개발자 갈아 넣기   

   종종 뉴스에도 등장하지만 이 방식은 한국 게임 개발에서만 보이는 방식은 아니다. 미국 내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회사들에서도 자행되고 있는 일들이다. 회사가 선택하는 저비용 고효율 정책은 여러 가지가 있다. 

 야근은 만악의 근원

    첫 번째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장시간 근무하게 하는 방법이다. 과거 제조업에서 사용했던 방식을 게임 개발에 적용시킨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거둘지 모르겠자만, 창의적 관점에서 장기적으로 기업에 약보단 독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미 많은 게임 회사에서 내부 개발자의 폭로나 개발자의 과로사 등으로 기업에 독이 되고 있음이 표면화되고 있는 중이다. 

저비용 고효율

   두 번째는 개발 기간을 짧게 해서 결과에 따른 후조 치를 즉각적으로 단행하는 것이다. 쉽게 예로 들면 최근의 모바일 게임 시장의 확장은 이런 기업의 경영 방식과도 맞물린다. 모바일 게임은 전형적인 저비용 고효율 개발 방식을 띤다. 일단 완성할 필요가 없다. 30% 정도의 초기 진행만 완성해서 출시, 마켓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향후의 방향을 계획할 수 있다. 또,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 안에 하나 이상의 타이틀 출시가 가능하다. 콘솔 게임 개발이 짧게 잡아도 3년의 개발 기간을 갖는 것을 생각해보면 기업 입장에서 탐나는 시장임은 분명하다.

 다른 하나는 '리스킨'이라고 표현하는 개발의 재활용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출시한 게임 혹은 타 회사에서 출시한 게임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면, 비주얼만 수정해서 같은 류의 게임을 신속하게 재생산하는 것이 용의 하다. 기업의 입장에선 고민이 많이 필요한 초기 작업 없이도 게임 개발이 가능해진다. 

    이것을 역으로 바꿔서 개발자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분기마다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 없게 되고, 창의성보다는 빠른 개발을 강요받기 때문에 기계처럼 일하는 기분을 받기 쉽다. 또 저비용 개발이다 보니 언제든 프로젝트를 취소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기업은 훨씬 유연하고 효율적인 경영이 가능해지지만, 개발자는 미래를 보장받지 못한다. 

인력 돌려막기? 직원 쥐어짜기?

     세 번째는 개발 구조의 불안정성을 기반으로 한 인력 돌려막기가 있다. 개인 개발자가 충분한 시간을 부여받지 않고 제조업적 개발 방식 안에 놓이게 되면, 불만이 생기게 된다. 창의적이고 개혁적인 개발자일수록 더욱 그 현상은 빠른 시간에 찾아온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개발자가 자기 발전을 멈추면 개인 생산성이 저하되게 되고, 기업의 생산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업은 여러 이유에서 개발자들을 돌려막기 시작한다. 개발자들에게 새로운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준다라는 이유를 전면에 내세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역시 저비횽 고효율, 즉 직원을 놀리지 않는다라는 기본 원칙이 깔려있다. 개발자의 창의성은 안정된 풀에 있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하는데 불안정한 풀 안에서 생산과 직결된 프로젝트에 내몰린다. 기업의 직원 쥐어짜기는 개발자의 손만 이용할 뿐 머리는 이용하지 않겠다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우물을 넘어 세상 밖으로


    중국에서 일할 때 몇몇 한국 개발자들과 함께 지낸 경험이 있다. 그 잠시의 경험을 통해 한국 개발자들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은 프로젝트를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났고, 그에 뒷받침하는 성실성도 가지고 있었다. 또 미국에서 경험하지 못한 끈끈한 관계를 통한 시너지도 보여줬다. 비록 한국의 수많은 개발자들 중 일부겠지만, 나는 한국 개발자들의 가능성을 충분히 확인했다. 

우리의 생태계를 우리가 이끌어갈 권한 정도는 가져도 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한국 개발자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것은 더 이상 한국 게임 업계라는 바운더리 안에서 유토피아를 찾으려고 하지 않았으면 한다. 새로운 플랫폼을 접근하는 한국 회사들의 태도를 보면 아직은 과거의 관성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꼭 외국에 나가야 할 필요는 없다. 과거와 달리 많은 경로로 본인을 알리거나 다른 해외 아티스트들과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기본적인 영어 실력을 전제로 한다면, 수많은 기술들을 무료로 배울 수 있는 수많은 리소스들이 존재한다. 비록 당장 세계 시장에 나갈 수 없더라도, 세계 시장의 트렌드나 발전 방향 등을 계속해서 주시하면서 경험을 쌓아 나간다면, 분명히 기회는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임 개발의 방향은 꾸준히 바뀌어가고 있다. '호라이즌 제로 던'을 개발한 게릴라의 개발자와의 대화를 통해 그들이 중국 외주 업체와 긴밀히 일하고 있는 것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면 수많은 대형 프로젝트들이 중국, 인도, 한국 등의 개발자들과 함께 작업하고 있다. 전편에서 언급했듯, 개발 비용의 증가는 외주의 활용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런 외주의 방향성은 과거와 달리 게임 전반의 방향성과 연관된 중요한 작업 들일 경우도 포함하고 있다. 개인의 역량에 따라 충분히 만족스러운 작업자의 삶을 살 수 있음을 뜻한다. 

    외국에 나갈 수 있다면 경험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현재 미국은 이민법 문제로 학교를 거치지 않고는 일할 기회를 얻는데 어려움이 있지만, 캐나다나 유럽, 중국 등은 비교적 수월하다. 그리고 지금 어렵다고 미래에도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내가 AAU라는 샌프란시스코 소재의 아트 스쿨에 입학할 당시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던 부분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Pixar나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많은 인력을 필요로하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애니메이터들의 수요가 많았다. 그래서 컨셉을 준비하는 나에게 많은 사람들이 신입으로 입사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런데 3년 후 졸업할 시기의 시장은 완전히 변해 있었다. 애니메이션 시장의 수요가 줄어들어 더 이상 신입을 뽑지 않았고, 페이스북 게임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이 형성되어 많은 컨셉 아티스트들을 뽑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운 좋게 미국 내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었다. 현재의 분위기를 보면 모든 분야에서 내년도 밝은 미래를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현재를 통해 미래를 결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도 그랬지만 많은 취준생이나 구직자들은 입사를 목표로 한다. 그런데 오랜 기간 일해 본 바로 커리어와 개인의 행복에 더욱 직접적인 것은 '작업 수행 능력'이다. 성실함을 바탕으로 맡겨진 업무를 정해진 시간에 마칠 수 있는 능력, 팀원들과 소통하고 함께 일을 진행할 수 있는 능력, 개인적인 성장을 위해 장기적인 노력을 해나갈 수 있는 능력. 이런 능력들이 합쳐져서 좋은 개발자가 된다. 그 이면에는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현재나 미래의 위치보다 아무도 관심갖지 않았던 과거의 과정들이 있다. 현재 어느 위치에 있던 그 무수한 과정을 이겨내고 현재까지 개발자의 삶을 이끌어 온 한국의 모든 개인 개발자들에게 진심을 담은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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