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성장기 _ 2
1.'넌 잘하는 게 뭐야?'
그토록 그림밖에 모르던 아이는 어느덧 왜 원하는지도 모를 원하는 대학에 들어간 이후에 항상 준비된 답을
가지고 있던 익숙한 질문을 마주한다. 같은 과 새내기로 입학한 친구의 의미 없는 질문에 주저함 없이
'그림...'
이라고 답하던 과거와 달리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여기선 다 그림 잘 그리는 애들뿐이자나...'
이때는 이 질문의 대답을 찾는데 그토록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줄은 몰랐었다. 나의 내면의 방황의 시작은
어쩌면 이때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2. 미대생의 시작은 자연스럽게 미술학원 아르바이트와 함께 한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딱히 다른 알바를 찾자니 미술학원 강사만큼 페이를 주는 곳도 찾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니까.
근 2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지 알 수 없지만 일단 2 어장의 입시미술 포트폴리오를 들고 학원들 문을 두들긴다.
보편적으로 대형 미술 학원들에서 새끼 강사(보조 강사를 이렇게 불렀다.)를 많이들 필요로 하니 대형 미술 학원 중심으로 구직활동을 시작했던 기억이 있다. 전원, 창조의 아침 등등 이곳저곳 문을 두들기고 때론 시험을 보기도 했다.
'입시 때로 돌아온 것 같다. 키득키득'
구직활동의 동반자였던 친구와 나란히 앉아서 불과 6개월 전까지만 해도 학생의 신분으로 앉아서 그림을 그리던 공간에서 예비 강사의 입장으로 시험을 보는 것이 그리 기분 나쁘지 않았던 듯하다.
결국, 노량진에 있는 대형 미술 학원 예비반(1, 2학년)에 보조 강사로 길었던 강사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다.
사실 지금은 거의 기억에 없을 정도로 짧은 강사 생활을 하고 그만두었던 것 같다. 음주가무가 더 재미있었으니까.
3. 첫 강사 생활만큼 첫 연애도 짧았다.
새내기로 들어간 새 공간의 새 동기들 중 한 명과 연애를 시작했는데 어떻게 시작하는 게 맞는지 어떻게 관계를 만들어가는 게 맞는지 모든 것에 서툴었던 나는 15일 만에 내면에 쌓여간 복합적인 감정들을 못 이기고 포기하기로 결정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무책임한 시작이었고 비겁한 결정이었던 것 같다. 결국 많은 3학년 여선배들의 공공의 적이 되었고 꽃길만 걸을 것 같았던 새내기 시절의 큰 걸림돌이 될 듯하였으나 헤어진 여자아이가 다른 선배와 사귀기를 시작하면서 날아오던 화살들은 사글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