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 안에 담길 것들
나는 어릴 때부터 뒤로 걷는 것을 좋아했다. 처음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것이 어느새 특별함이 되었다. 한발 한발 땔 때의 어색한 걸음. 보이지 않음에 대한 두려움. 뒷걸음질로 계단이라도 내려가는 날엔 어색스럽기가 그지없었다. 첫걸음마를 걸을 때 이런 느낌이었을까.
몇 번의 뒷걸음질을 반복하며 주위를 확인한다. 두려움이 물러가고 이내 머리 뒤 공간은 설렘으로 바뀌었다. 항상 ‘앞’이라 여기던 공간은 상상의 공간이 되었고, ‘뒤’가 된 두 눈이 지나온 길을 천천히 살펴 세고 있었다. 그리고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부자연스러움이 꼭 나쁘지만은 않구나!’
그땐 부자연스러움이 내 인생을 대변하는 말이 될지 미처 알지 못했다.
살다 보니 뒤로 걷는 것은 걸음만이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며 깨달았다. 난 생각도 늘 뒤로 걷고 있었다. 남들이 앞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갈 때, 나는 늘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살피며 다른 길을 찾았다. 젊은 날의 나는 그게 단순히 젊은 시기 누구나 겪는 혼란이라고 생각했다. 머릿속은 엉켜 있는 가지와 잎들로 가득했다. 작은 줄기하나 매듭짓지 못한 채 무성해가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어떤 것이 줄기이고 어떤 것이 덧붙은 것인지 알지 못한 채 시간은 흘러갔다.
그렇게 나이가 들었고, 다른 이들이 나를 부르는 이름도 변했다. 역할은 늘고, 사는 곳도 달라졌다. 그에 따라 주위의 소음이 잦아들고, 마음속의 숲에도 또 다른 계절이 찾아왔다. 작은 가지들은 새가 날자 툭하고 떨어져 나갔고, 물이 닿지 않아 말라버린 가지들은 이내 바람에 쓸려가 버린다. 난 그것들을 모두 매듭지어야 끝나는 줄 알았는데 ‘자연스럽게’ 사라져 갔다.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비워지자, 그 속에서 굵고 단단한 줄기 하나가 또렷하게 자태를 드러냈다. 내면의 숲 속 깊은 곳에서 비로소 본래의 나무를 마주하는 듯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나무 앞에서 속삭였다.
“이게 너였구나.”
나는 뒤로 걷는 사람이다. 걸음도, 생각도, 마음도. 자연스러움보다 ‘부자연스러움’에 더 매혹되는 사람이다. 그것이 내 존재가 심기운 곳에서 자란 줄기고, 내 삶 곳곳을 뉴런처럼 촘촘히 이어온 가지이다.
나는 뒤로 걸으며 본 풍경을 글로 남기고 싶다. 평생을 그림으로 눈앞의 풍경을 그려왔는데, 이제는 글을 그 도구로 사용하고 싶다. 그림을 그린다는 건 결국 이미지를 다루는 일이고, 이미지를 다루는 건 생각을 다루는 일이다. 표현의 그릇 안에 글은 어떠한 모양일까. 글로써 생각을 붙잡고, 글로써 또 다른 이미지를 펼쳐내는 것은 그림과 닮은 듯하다. 어쩌면 그림쟁이에게 글은 무모한 도전일지 모른다. 하지만 무언가 다른 경험을 담을 수 있다면 다름은 특별함이 되어주지 않을까. 내가 정말 평생 뒤로 걸어왔다면, 이제 그 길에서 본 풍경을 글로 옮겨, 다른 이의 뒤를 열어주는 길잡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걷는 것은 본능이나, 뒤로 걷는 것은 태도이다. 남들이 당연하다 여기는 방향을 거슬러,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내가 볼 수 있는 풍경을 바라보며 걸어온 태도이다. 비틀거리며 넘어지기도 했지만, 그 덕분에 나는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더 분명히 알 수 있다.
이제 나는 그 자리에서 글을 쓰려한다. 뒤로 걷는 걸음이 내게 보여준 낯설지만 특별한 풍경. 내 글도 누군가에게 새로운 시선이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또 다른 누군가의 숲에서도 잔가지들이 떨어져 나가고, 각자의 굵은 줄기가 드러나기를, 그래서 저마다의 “이게 너였구나”라는 순간을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