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미약한 스포
봉준호 감독의 영화 제목이 미키 7이 아니라 17이 되었을 때, 익스펜더블 미키의 수없는 재생과정을 보겠구나 싶었다. 영화는 역시 예상대로였고 블랙 유머를 곁들여 빠르게 변환되는 장면임에도 상당히 고통스러웠다.
죽어야 사는 남자, 미키. 원래 그는 우주선을 탈 자격이 없었고, 사채업자에게 도망쳐 살아남기 위해 제 목숨을 계속 버릴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한다.
연인인 나샤를 제외하면 누구도 그를 연민하지 않았다. 죽을 때 기분이 어떤지 줄기차게 묻는 망나니 같은 부류들과 영원불멸의 유사 상태인 그를 가끔 부러워하는 이들이 있을 뿐이다. 미키는 얼음행성 니플하임의 업무를 수행하다가 크리퍼라는 외계생명체를 만나 목숨을 빚진다. 그러나 이 상황은 미키 18과 멀티플이 되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원작은 각색을 거쳐 봉준호 감독 전작들과 많이 겹쳐 보인다. 블랙유머와 사회풍자가 물씬해서 혹자에겐 불편한 지점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멍청한 독재자와 뒤에서 코치하는 부인, 맹목적인 부하 그리고 정치와 종교의 비상식적인 결합 등등이 그렇다. 2022년에 촬영이 끝난 것으로 아는데, 감독님이 꿈에서 미래를 보고 왔나 싶을 정도다…
영화가 전반적으로 조금 심심한데 씹을수록 진한 맛이 우러나는 느낌이다. 그래서 천만관객은 좀 어려워 보이지만, 최소 200만에서 최대 500만 정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파묘를 보자마자 바로 천만관객을 예상했던 내 촉이 또 맞을지, 그것이 궁금한 것이다. 무튼 나는 한 번 더 보려 한다. 중간중간 클래식한 음악들이 매우 인상적인 데다, 무엇보다 영화는 두 번째 볼 때가 제맛이거든.
덧) 원작의 미키 7은 대담한 거짓말로 사령관과 협상까지 했는데, 영화 속 미키 17은 좀 더 순하고 살짝 맹하다. 그나저나 예전에 책을 읽고 떠올린 크리퍼는 다리만 많지 좀 귀여웠는데, 영화의 크리퍼는 나우시카의 오무와 실제 곰벌레를 닮은 느낌이었다는. 그래도 행동양식은 상당히 귀엽다.
나샤의 입을 통해 “크리퍼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인간들이 외계인이다”라는 대사가 나오는 장면은, 과거 서구 열강의 식민지 지배를 떠올리게 한다. 이는 꽤 통쾌한 지점이 아닐 수 없다. 미국만 보더라도, 원주민인 인디언을 어떻게 대하고 몰아냈는지를 생각하면 이 영화를 보며 뜨끔할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럴 만한 양심과 상식을 가진 사람들에 한해서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