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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간단 리뷰

조각 : 엔딩 크레딧의 여운

by 한스푼






영화를 볼 때 반드시 엔딩크레딧이 다 끝날 때까지 감상한다.


감독은 엔딩크레딧의 마지막까지 노래나 쿠키영상들을 통해 다시 메시지를 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며칠 전 감상한 파과 엔딩에 들었던 투우역 김성철 배우의 노래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제목이 ‘조각’이다. 민규동 감독이 가사를 써서 김성철 배우에게 직접 노래하도록 부탁했다고.


기생충의 엔딩크레딧에도 봉준호 감독이 가사를 쓴 ‘소주 한 잔’을 최우식 배우가 부른 것처럼, ‘조각’에도 감독의 메시지가 담겼을 것이다.


아직 원작을 다 못 읽었는데, 책의 내용과 인물의 마음을 모두 담아내지 못한 감독이 그 빈틈의 조각을 노래에 담으려 한 듯하다.


모든 서사는 엔딩이 있지만, 사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정말 끝난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운명의 향방 또한 끝까지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볼 것이다.


덧) 러닝 타임 내내 가슴이 쿵쿵거렸고, 마음속으로 계속 원작 읽어야지, 무조건 N차 관람해야지 했다. 당분간 파과에 푹 빠져있을 거 같다. 영화 보실 분들은 꼭 엔딩크레딧의 마지막 노래까지 감상하시길 권유한다. 그래야 완성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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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원작을 읽었다. 만약 영화를 보기 전 책을 읽었다면, 노인 그것도 여성 킬러라는 캐릭터가 더욱더 신선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책은 시종일관 주인공 조각의 감정선을 계속 따르나 감정의 과잉 없이 꽤 건조하다. 전반적으로 문장의 호흡이 상당히 길다.


영화의 엔딩 무렵에 계속 폭발하는 투우와 조각의 관계성이 원작의 묘사보다 많이 생략되었나 싶었는데, 오히려 영화에서 더 친절하게 묘사된 것 같다. 원작의 기본 줄거리에 영화적인 각색을 거쳐 추가된 인물들과 배경 설정, 드라마와 액션을 적절히 섞은 연출도 마음에 든다. 조만간 영화를 다시 보아야지, 뭐니 뭐니 해도 영화는 두 번째 볼 때가 더 재미있으니까.



추가덧의 덧 20250511)

파과는 구병모 작가의 소설이 원작이다. 파과는 흠집이 난 과일을 뜻하기도 하지만, 여자 나이 16세를 이르기도 한다. 60대 여성 킬러라는 전무후무한 캐릭터 조각의 시점으로 서술되는 원작은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으며, 작년에는 뮤지컬로도 제작된 바 있다.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을 읽었는데 책의 내용을 많이 덜어내고 영화를 만들었을 거라는 추측이 틀렸음을 알았다. 원작이 상당히 건조한데, 영화라는 장르적 특성상 오히려 극적 요소가 많이 부각되었다.


게다가 감독은 투우라는 젊은 킬러에게 원작에 상세히 서술되지 않은 애매모호함에 많은 서사를 부여하여 그 힘을 실었다. 두 번째 보면서 투우에게 투영된 감정의 거대한 결에 계속 압도되어 울컥했다.


유튭의 풀버전 OST MV을 보니 삭제씬이 상당하다. 진심 감독판이 보고 싶고 대본집도 소장하고 싶다



추가덧의 최종덧 20250519)

파과를 처음 볼 땐, 생략된 서사가 많은 줄 알았다. 책을 읽고 다시 영화를 보니, 감독이 더 명확하게 투우의 서사를 부여한 것이 보인다. 모호했던, 조각에 대한 투우의 감정이 영화에서는 참 선명하다.


원작팬 입장에선 끝까지 알듯 모를 듯한 감정의 결을 해석하는 맛이 있었다는데, 영화에서 그 이유를 확정 지은 부분에 반감을 느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원작보다 영화를 먼저 본 내 입장에선 이미 투우의 서사에 호응을 해 버린 터라 감독의 친절한 해석이 더 마음에 든다.


감독이 작사한 엔딩 크레딧의 노래하는 것을 투우역 김성철 배우가 망설였다는데, 조각에게 쏠려야 할 스포트라이트가 투우에게 분산되는 것을 원치 않아서였다고.


사실 관객인 나로서는 노래덕에 오히려 조각과 투우의 관계성에 더 심취할 수 있어 좋았는데, 그것은 감독이 설계한 투우의 모든 서사가 그 노래로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결국 스포트라이트는 분산되었지만, 그 또한 이 영화만의 묘미가 아닌가 싶다.



* 파과 TMI (스포 있음)


1. 투우가 동물병원에 들어갔을 때 데스크의 명함을 쓱 보다가 강봉회의 명함을 가진다. 그 짧은 찰나 파과의 원작자인 구병모 작가님 이름이 첫 번째 명함에 뙇! 등장한다. 직함이 원장인 것 같다.


2. 투우가 신발끈으로 작업할 때, 왼쪽 신발끈을 사용한다. 양복입을 때 신은 구두, 동물병원에서 신은 검은 운동화도 모두 두 번 다 왼쪽만 신발끈이 보이지 않는다.


3. 엔딩에서 조각이 교주를 처리하기 전에 교회에 앉아있다가 머리에서 쓰윽 비녀를 꺼낼 때, 그녀의 손가락마다 휘황찬란한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다. 인조손톱을 붙였는지 모두 길고 날카롭게 잘 다듬어져 있는 걸 보면, 분명 극 중 투우가 말했던 것 때문이다. 손톱에 매니큐어 좀 칠하고 가꾸라고 했던 투우의 말을 따른 조각의 모습이어서, 늘 투우를 마음에 간직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작의 엔딩에서 손톱 다듬는 에피를, 이렇게 또 다른 방향으로 회수해 준 감독님의 설계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하고 싶다.






https://youtu.be/Gy-JRlSf5PM?si=QQPW9s8VLBfMzU1y​​

영화 ‘파과’ OST 조각 중 일부 ; 출처 - 잇츠뉴


하얗게 질린 조각달 아래 조각을 구하러 가는 투우의 모습, 감독의 미장센이 돋보인 장면으로 자꾸 떠올라서 그려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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