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롯데월드를 가서 다 느꼈네!
12월 30일에 회사 종무식이란 종무식은 다 끝내고 31일은 휴무로 지정됐다. 일찌감치 소식을 알았고 나만의 소소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각자의 위치에 데려다준 다음, 2달 전부터 라디오에서 나오는 영화 소개에 심장이 이끌려서 꼭 보겠다던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영화관 가서 시청하는 것이었다. 아내와 오랜만에 데이트를 하면서 영화 보고 커피 마시고 맛있는 밥을 먹고 아이들을 하원 시켜 근처 키즈카페를 가던지 외식을 하던지 할 예정이었다.
스파이더맨을 좋아하지 않는 아내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광적으로 좋아하는 나를 위해 동의하며 계획을 실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 계획은 한순간에 초기화됐다.
아이들이 감기에 걸려 학교를 못 가기도 했고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너무 답답해하는 첫째님을 보며 아내는 그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우리의 저 소소한 계획을 알고서도 29일이 되는 날 나한테 연말에 어디 갈 거냐고 물어봤다.
당연히 영화 보러 간다는 말을 했고, 스파이더맨을 보고 싶지 않은 마음과 답답해하는 첫째님을 보며 아내는 집콕이 싫다고 했다. 내 몇 안 되는 소중한 휴가를 한 번은 나를 위해 사용하려고 저리도 야심 찬 계획을 세웠고 그리도 강조했지만 아내는 잊어버린 마냥, 가기 싫다는 마냥 계속 연말에 어디를 가냐 되물었고 그 의도를 파악했지만 나 역시 굽힐 수 없어서 토요일 롯데월드를 가자고 했다.
주말이고 신년이 되는 첫날이 토요일이며 지금은 추운 겨울이다. 이 3박자만 보더라도 분명 토요일에 롯데월드는 사람들 간 거리두기를 못할 정로로 붐빈다는 건 안 봐도 비디오였다. 하지만 내 소중한, 나만을 위한 휴가를 포기할 수 없어 끝까지 썩은 동아줄 부여잡듯 잡았지만 결국 아내의 입에선 '그 토요일에 롯데월드를 가자고?'라는 짧은 한마디에 계획을 포기해야 했다.
서운함도 있었지만 첫째님이 집콕하는 게 안타까운 마음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부모니까, 아이의 행복이 내 행복이 되는 건 맞으니까 계획을 변경하여 아이들을 위해 하루 신나게 놀기로 했다.
이렇게 내 계획은 머나먼 저 어딘가로 날아갔고 어쩌다 우린 롯데월드로 향했다. 2년 만에 다시 찾은 롯데월드는 변함없이 화려하고 신나고 재밌었다. 여기저기 화려한 조명들과 악기 연주 소리가 사람을 들뜨게 만들었고 잠시 동안 6학년 때의 내 시절을 생각나게 했다. 27년 전엔 개장 때부터 폐장 때까지, 햄버거 겨우 2개 정도 먹으면서 12시간을 놀았었는데 지금은 4시간 놀면 다행이지 않을까 하며 저 에너지 넘치는 두 아이들을 얼마나 짜증 안 내고 케어할 수 있을지 걱정도 들었다.
2년 전 실패했던 하늘에 매달려서 실내 모든 관경을 볼 수 있는 풍선을 타러 갔다. 개장 1시간이 지났지만 70분이나 대기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넘쳤고 기다리다 보니 둘째 놈과 아내는 이렇게 기다릴 바에 다른 걸 타는 게 좋겠다고 했다.
실은 우리에겐 첫째님의 복지카드로 첫째님과 동반 1인은 매직패스라는 우선권을 무제한 사용할 수 있었지만 가족과 함께 타고픈 난 그걸 기다리겠다고 고집부리다 결국 2명만 20분 동안 의미 없는 기다림을 해야 했었다. 아내와 둘째 놈은 핫도그 매장에서 아이스크림과 핫도그를 먹으며 주린 배를 채웠고 첫째님과 난 복지카드를 통해 바로 탑승했다. 기다리다 지쳐있는 아이, 부모님들에게 조금 미안했지만 어차피 탈 거 눈치 안 보고 타기로 했다.
높이 올라간 기구에 첫째님이 무서워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무서워하긴커녕 밑을 보며 그렇게 신나게 웃고 즐기는 녀석을 보니 내가 고집부리며 타겠다는 내 결심을 칭찬하기까지 했다.
내친김에 우린 후름라이드를 타겠다며 아내한테 통보를 했다. 신장 110cm 이상이면 가능하단 문구를 보며 2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하는 대기줄을 복지카드를 통해 5분도 안되어 탑승할 수 있게 됐다. 그날만큼은 장애가 있는 아이가 고마울 정도로 편하게 탑승했다.
클라이맥스 구간으로 가는 동안 첫째님은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즐기고 있었다. 물만 보면 좋다고 추운 겨울에도 바다에 뛰어들 만큼 연가시 같은 존재라 그런지 물이 튀면 좋다고 깔깔 웃어데며 놀이기구를 즐기고 있음을 보면서 아이의 성장을 엿보게 됐다.
아이들의 로망, 밝은 조명과 반짝이는 거울, 수많은 말들을 탈 수 있는 회전목마를 탈 땐 2년 전에 비해 첫째님의 확실한 성장을 눈으로 확인했다. 말에 타면 무서워서 내리거나 불안해해서 꼭 뒤에 같이 타야 했지만 그날만큼의 첫째님은 아주 의젓하게 말에 앉아 기둥을 잡고 안전벨트를 풀지 않은 채, 여느 아이들이 타는 것처럼 아주 잘 탔다. 양 옆에서 첫째님을 바라보며 회전목마가 주는 즐거움과 화려함 보다 아이가 이만큼 컸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화려한 회전목마에 주인공은 마치 첫째님 같았고 이 모든 게 첫째님을 위해 만들어진 듯한 착각까지 했었다.
언제 이 아이가 이렇게 자랐을까? 매번 보는 아이의 모습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고 여전히도 뿌뿌 거리며 침을 뱉고 물건을 흔들고 손을 흔들면서 누가 봐도 장애아이처럼 뛰어다니며 소리 지르는데, 그런 상동 행동은 그대로 갖고 있지만 해마다 신경 쓰지 않았던, 잘 되지 않았던 것들이 조금씩 되는 행동을 눈으로 확인하며 고마움과 함께 아이를 케어하느라 고생했을 아내를 생각하니 마음속 불만을 이따금씩 가졌던 게 미안했다.
좀 더 잘해줬으면 더 많이 성장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와 미안함, 그럼에도 이만큼 성장한 것에 대한 감사함이 교차했다. 피날레인 퍼레이드에선 첫째님이 퍼레이드를 보며 웃는 모습에 잠시 눈물이 났다. 그 즐거운 축제의 장 속에서 바보같이 혼자만 슬퍼했다. 아이는 감정도 있었고 사람을 통해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난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만 했었던 것이 얼마나 아이에 대해 무관심했는지 자꾸만 후회와 미안함만 커졌던 것이다. 20kg이나 되는 아이를 퍼레이드가 끝날 때까지 안아주었다.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지만 즐거워하는 아이를 보면 조금이라도 더 퍼레이드를 보여주고 싶어서 참았다.
'좀 더 즐겨봐! 좀 더 퍼레이드에 대한 즐거운 감정을 느껴봐!' 난 마음속으로 첫째님에게 말하면서 계속 버텨야 했다. 이 아이가 퍼레이드에 대한 즐거운 감정을 끝까지 느낄 수 있도록.
즐거운 롯데월드에서 난 아이의 성장함을 눈으로 확인한 기쁨과 아무것도 아이에 대해 몰랐던 내 모습이 미안함을 느끼며, 인간이 느끼는 희로애락을 다 맛보며 돌아왔다. 오는 길은 수많은 퇴근 차량들 틈에 꼈지만 21년의 마지막 지는 해를 바라보며 소소한 내 계획보다 더 알차게 보냈다는 뿌듯함에 지는 해가 아쉽지 않았다.
22년도엔 무슨 일들이 또 일어날까, 첫째님은 또 얼마나 성장하고 얼마나 퇴행할까, 기대도 걱정도 된다.
아직 새해 계획을 세우지 못했지만 21년도의 마지막에 아이들의 성장을 확인할 수 있어서 기쁜 마음으로 22년도를 맞이할 수 있겠고 차근차근 계획도 세울 수 있겠다는 희망찬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