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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Jan 27. 2022

퇴사자의 재입사 적응기

고객님들 안녕하세요!

총무 제안을 받고 하루 정도는 업무에 집중하지 못했을 뿐 그 이후론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머릿속은 적당히 고민하는 척 지내면서 총무를 거절하려는 생각만 있었을 뿐!

마침 2022년도 사업부의 방향이 윤곽을 보이기 시작하며 또 얼마나 힘든 업무가 주어질까 두렵기도 했지만 새로운 사업을 준비해 나간다는 기쁨으로 준비를 했다.

하지만 분명 머릿속으론 적당히 생각하는 척하며 넘어가려 했지만 마음속에는 총무에 대한 제안이 불편하게 남아 있었다. 그래서 조금의 찝찝하고 불편함을 좀 없애보려고 냉정하게 내가 하는 업무와 총무의 업무를 대입해봤다. 강사 관리를 직원 관리로 그 대상을 바꿔봤더니 어쩌면 아는 동료들에겐 무리한 부탁도 할 수 있겠고, 꼼꼼함이 부족해서 욕먹을 수 있는 일들은 세세하게 잘 챙겨주는 것으로 상쇄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생판 남인 사람보단 그래도 회사를 위해 밤낮 애쓰고 돈 버느라 외부에서 싫은 욕 다 먹어가며 일하는 직원들 챙겨주는 게 마음이 더 끌리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의 가능성을 열고 보니 사업부냐 총무냐 에 대한 마음이 다시 팽팽해졌다. 처음엔 변변한 총무가 없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회사의 상황에 대한 오지랖으로 고민했다면 이번엔 업무적으로 가능성이 있어 보이니 더 결정하기 어려워졌다.

인터넷을 또 뒤져보니 각 회사마다 원하는 총무의 역할이 다양했다. 대인관계를 중시하거나 완전 서류 속에 파묻혀 지내거나 하염없이 엑셀 데이터만 뽑아내던가, 기계만 고치던가 아니면 이 모든 걸 다 해내는 팔방미인 같은 존재면 더욱 좋다더라!

홍수가 나면 마실물이 없어서 탈수현상 때문에 사망한다고 하던데, 정보가 너무 많으니 나에게 맞는 정보를 찾지 못해 갈팡질팡 하는 내 모습이 딱 그 꼴 같았다.

뭔가 나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선이 필요했고 제삼자이며 내 업무 성향을 잘 아는 사람에게 물어봐야 했다. 지금은 더 높은 지위에 올라간 옛 팀장에게 전화를 했다. 재입사하고 한번 같이 차를 타고 집에 간 적이 있지만 그 후론 서로 바빠서 얘기조차 못했었다.


"찰리 한! 무슨 일이야?"

"아직 결정된 건 아니라 조언이 필요해요. 나 총무 제안받았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나도 모르는 나, 오직 3자의 입장, 팀장의 입장으로써 바라보는 내 모습이 궁금했다. 옛 팀장은 회사에서 총무 채용을 신중하게 하는 이유를 한번 더 설명해줬고 내 강점과 약점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줬다. 역시나 약점은 서류 작업에 있어서의 꼼꼼함 이였다. 하지만 이 부분은 어쩌면 다른 경영관리팀 직원에게 도움을 받는다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하며 대신 강점에 대한 부분은 막 들어온 직원이나 경력직원이 쉽게 따라올 수 없을 것 같다며 제안을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게끔 했다.


우리 회사는 크리스천 기업으로 매달 예배를 드린다. 전 사원이 참여를 해야 하며 총무의 업무 중에는 예배 준비까지 포함돼있으니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한다면 이런 것 역시 잘 준비할 수 있다. 부서장들과의 소통과 협의는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어떻게든 해결해 나가는 능력은 가장 최적화됐고 상사의 업무 요청에 즉각 반응하여 해결하는 것 또한 중요한 총무 업무 중 하나일 것 같다며 본인의 생각을 잘 내비쳤다. 총무로 일한다면 앞날을 위해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약간의 로드맵을 머릿속에 그려주는 모습을 보니 첫 팀장이 됐을 땐 참 부족해 보였던 사람이 어느새 진짜 팀장이 됐다는 걸 느꼈고 고마운 마음을 전달하며 전화를 끊었다.

고민이 오히려 깊어졌고 아내의 눈치도 많이 보였다. 힘들어서 불평불만하며 퇴사하고 싶다고 징징거렸던 남편이 다시 회사 들어가겠다고 하질 않나, 이젠 사업부가 아닌 총무로 하겠다고 하니 지 편한 세상에 사는 남의 편 같은 사람이 정말 못마땅해 보였을 테고 회사의 이런 업무 변경이 참으로 답답할 지경이었다. 100명이 넘는 중견기업에 다녔던 아내는 총무들의 고된 업무를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나 역시 그런 고된 업무를 하게 되는 게 안타까움이 가장 크긴 했다.


사업이 거의 종료되는 시점이라 업무가 많이 줄어들었고 대부분 단순 업무들이었다.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으니 자연스럽게 다시 총무냐 사업부냐 에 대한 고민으로 업무시간의 대부분을 보냈다. 누군가에겐 정말 쓸데없는 고민일 수 있지만 나에겐 꽤 중요한 결정의 순간이었다. 총무로 간다면 내쫓지 않는 이상 정년까지 이 회사에 뼈를 묻을 생각으로 일해야 했기 때문이다.

계속 고민의 고민을 더하던 시간이 쌓이면서 마음이 어느 쪽으로도 선택할 수 없는 팽팽한 신경전이 지속될 때 우리 집 인재상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베풂, 나눔, 신실 이 세 가지 단어로 자녀를 양육하면서 동시에 내가 나아갈, 인생을 살아갈 기준이 되는 것들이다. 지금의 상황에 맞게 하나씩 대입해봤다. 

내가 베풀 수 있는 것과 나눌 수 있는 건 사업부에서건 총무에서건 둘 다 할 수 있다. 마지막 신실에서 드디어 답을 찾게 됐다. 크리스천 기업으로 예배 준비를 총무가 해야 한다는 건 어쩌면 내가 더 신실하게 하나님을 믿어야 하고 준비를 해야 했다. 사업부에선 주어진 시간에 예배드리면 끝나지만 총무는 예배를 위한 모든 걸 준비해야 했다. 음향, 말씀 전하는 speaker 섭외, 인도자, 반주자, 기도자까지.

하나님께 신실하게 나아가기 위해선 어쩌면 총무라는 업무가 가족의 인재상에 더 적합했고 그간의 고민이 쓸데없을 정도로 답을 찾아버리니 순식간에 총무로 결정했다. 

결정한 다음날 회의실에서 만난 경영관리 부서장의 얼굴을 오랜만에 쳐다보며 지난날의 총무들에 대한 얘기를 잠시 하면서 여쭤봤다. 

"전 지난번 말씀드린 대로 꼼꼼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사업부 경력만 가득하기에 총무는 무경력입니다. 잘할 수 있을지도 솔직히는 잘 모르겠지만 어떤 업무를 총무가 하는지도 궁금합니다"

혼자 오만가지 생각을 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총무가 하는 일에 대해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던 내 모습을 보고 한심했지만 어떤 업무가 오던 내 마음가짐만 바로 잡힌다면 해낼 수 있다는 나름의 내 능력을 믿고 있기도 했다.

"신경 쓰면 할게 너무 많고 안 쓰면 별로 할 건 없어요. 회사의 전반적인 것들 모두 다 한다고 보면 돼요"

역시 총무의 업무는 두리뭉실하고 특정 지을 수 없었다. 그래서 더욱 마음가짐에 대해서만 말하게 됐다.

"총무가 된다면 이전 사업부 동료들이 다 고객이 된다는 겁니다. 고객들을 잘 관리하고 사업 잘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마음 하나 갖고 왔습니다"

직원이 고객이 된다는 문장이 부서장에게는 꽤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이 말은 실은 아내가 나한테 해준 말이었다.

"찰리 한! 너 동료들이 다 고객이 되는 거야. 고객들한테 이리저리 치이고 잘해도 욕먹는 위치라고! 할 수 있겠어?"


그 고객이란 단어를 부서장에게 고스란히 전달했고, 그 마음가짐을 갖고 나 역시 내뱉었다. 내뱉었으니 돌이킬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난 회사의 총무가 됐고 2022년부터 총무로써의 업무를 시작하게 됐다.

새롭고도 다양한 업무를 해야 한다는 게 나한테 참 기대되고 흥미롭다. 그래서 사업부에 있을 때에도 싫지만 내년의 새로운 삶을 기대하며 한해 한해 업무를 해나가듯 앞으로의 업무가 힘들겠지만 맞는 옷을 잘 입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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