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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기자 May 22. 2023

명예훼손, 직접 고소를 당해보니...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제가 과거에 썼던 기사가 허위 사실로 작성돼 고소인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겁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혐의없음'으로 불송치 처분을 받았습니다. 고소인이 경찰의 불송치 판단에 불복해 검찰에 이의신청을 했으나, 검찰에서도 같은 결론을 냈습니다.


고소인이 문제를 삼았던 기사는 2016년께 작성된 기사로, 링크까지 걸어가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조금이나마 문제가 생길까 염려돼 상세한 기사의 내용이나 논란이 된 부분 등은 언급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의 공소시효가 7년이라고 하는데 공소시효 도달을 불과 몇 개월 남기고 경찰서에 고소장이 접수됐습니다. 기사 내용이 잘못됐더라면 수년 전에 이미 지적을 하거나 바로 잡아달라고 요청이 들어왔어야 하는데 7년이나 지난 뒤에야 고소장이 날아왔습니다. 마음속에는 여럿 의문스러운 지점이 있으나 짚지 않겠습니다.


7년 전이라고는 하지만, 범상치 않았던 사안이었기에 당시의 정황 등은 어제와 같이 생생히 기억납니다. 심지어 취재를 한 뒤 기사를 마감했던 카페의 분위기나 그날 저녁의 날씨, 밤늦은 퇴근길까지 저를 괴롭히던 관계자들의 통화내용까지 형형히 떠오릅니다.


그날 저는 제보자(지금의 고소인)를 직접 만나 인터뷰를 했고, 최대한 모든 내용을 기록에 남기고자 노력했습니다. 기사라는 것이 보고 들은 바를 모두 담아낼 수 없기에, 그중에서 핵심이 되는 알맹이만 골라 1300자 정도의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고소를 당한 뒤 다시 그 기사를 꺼내보니 "왜 더 깊이 취재하지 못했을까. 왜 더 날카롭게 지적하지 못했을까"하는 아쉬움도 일견 들었습니다.


철저히 제보자의 편에서, 제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쓴 기사였습니다. 누군가 명예훼손으로 지적의 대상이 된 제보자의 상대방에서 하지 않을까 하고 걱정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 사안이었기에 "고소장이 접수됐으니 경찰서로 조사를 한 번 받으러 와야 한다"는 경찰의 전화를 받고 나서는 나름대로 충격이 꽤 컸습니다. 성실하고 재미없고 무난하게 흘러왔던 지난 10년간의 기자생활에 대한 허무함이나 상실감도 느껴졌죠.




이렇게도 푸근하고 따뜻한 이미지의 경찰인데 말이죠


기자라는 직업군은 경찰관이나 전과가 수두룩한 피의자를 제외하고는 가장 경찰서를 많이 드나드는 직업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 역시도 3년간 오롯이 경찰서만 출입하는 '사쓰마와리'였기에 경찰서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나 이런 건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서에 들어간다니, 왠지 입구에서부터 주눅이 들고 벌써부터 죄를 지은 것 마냥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믹스커피 한 잔을 휘휘 말아주며 "요새 좋은 것 좀 없냐"라고 농담 따먹기부터 시작하던 경찰관을 대하는 자세도 180도 달라졌습니다.


접이식 간이 의자에 걸터앉아, 내게는 별 관심조차 없어 보이는 경찰관의 옆모습만 쳐다보고 있자니 손과 발이 저절로 모아지는 듯했습니다. 중간중간 메모를 하라며 종이와 펜 하나를 쥐어줬는데, 별달리 쓸 내용이 없어 엉뚱한 말들만 끄적였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취재 내용을 적어놨던 수첩이나 통화 녹음기록 등이 있었더라면 아주 간단하게 해결될 사안이었습니다. 하지만 슬픈 예감은 언제나 틀린 적이 없다고, 제가 쌓아놨던 수많은 수첩 중에 하필 2016년 초여름에 썼던 세로로 길쭉한 수첩만 없었습니다. 그날은 별로 뒤돌아보고 싶지 않았던 날이라 그랬는지, 녹음기록도 저장해두지 않았습니다.


3시간이 조금 넘는, 피의자 신분으로서의 조사를 마치고 나오니 왠지 두부가 먹고 싶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나는 정말 잘못한 것이 없다"라고 여러 차례 자신했지만, 혹시나 하는 1%의 확률로 무엇인가 잘못될까 싶어 걱정하고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단연코 말하건대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습니다.


선배들 중에는 "기자라면 고소도 한번 당하고 그래야지"하며 껄껄대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웃는 사람들 중에 본인도 조사를 받아본 사람이 있냐 하면, 제가 알아본 바로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여하튼 지난 10년간 제가 썼던 기사를 한 번쯤 되돌아보는 시간이 됐습니다. 무심결에, 혹은 나름의 최선을 다해 쓴 기사라 할지라도 제 기사로 인해 의도하지 않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그 어느 때보다 명징하게 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다른 의도를 갖고 명예훼손 등으로 저를 공격하려 한다면, 이러한 시도에는 보다 엄중하게 대응해야겠다는 다짐도 들었습니다. 명예훼손 당한 일을 가지고, 마치 무슨 훈장이라도 얻은 것처럼 장광설을 풀어놓았다면 미안합니다. 지금 가진 이 생각을 언젠가 한 번 들춰보기 위해 끄적였던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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