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시 운전을 잘해.”
교차로에서 신호를 받고 직진하는데 오른쪽에서 우회전으로 들어온 차량이 나의 직진을 방해한다. 조심스러운 움직임도 아니다. 우회전 후 곧바로 1차선까지 돌진한다. 저것은 우회전일까 직진일까.
쌩-
나를 지나침과 동시에 어느새 저 앞을 달려가고 있다. 1차선 2차선 3차선, 다시 2차선, 3차선, 4차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생각했다.
‘저건 추월이 아니라 그냥 노는 거구만.’
그리고 조용히 중얼거린다.
“아니야, 분명 똥이 마려운 거야.”
똥이든 업무든 심리적 생사를 다투는 어떤 일이 아니라면(물론 그래도 안 될 일이지만…), 만약 추월 자체를 위한 추월이라면, 그는 지금 어깨를 으쓱하며 이렇게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역시 나는 운전을 잘 해.”
…
가만히 달리는데 미쳐 인지하지 못한 차가 갑자기 내 앞으로 들어오면 경적을 누르기 마련이다. 놀랐거나 화가 난 것이다.
물론 앞 차가 비집고 들어온 그 공간은 아직 나의 공간이 아니다. 곧 그 도로를 밟을 테지만 아직은 아니다. 그럼에도 경적을 누른다. 이것이 중요하다. 내가 화나거나 놀란 이유는 무엇일까?
나의 앞은 잠시 후 내가 밟게 될 길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선택권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시점에 내가 속도를 냈다면 사고났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놀라거나 화나는 게 당연하다. 그 끓어오름을 잠재우는 게 경적이라면, 그것 참 점잖은 것인지도 모른다.
지정된 차로에서 규정 속도로 달리는 차들 사이를 이리저리 빠져나가는 차를 본다. 뒤에서 보니 꼴이 우습다. 운전을 잘 하는 줄 아는 그 차에 비해 다른 차들은 마치 게임 속의 NPC처럼 보인다. 그걸 알기에 규칙과 예의는 저 멀리 던져 버리고 다른 차들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 나가는 것이다. 얼마나 쉬운가.
하지만 그는 모르고 있다. 난폭운전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다른 차들이 ‘각자의 자리를 지키기 때문’이다. 모두가 제멋대로였다면, 적어도 제멋대로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된다면 그는 지금처럼 쉽게 난폭해지지 않을 것이다. 그 역시 자신이 사고나는 걸 원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세상에 ‘그냥’ 이루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누군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고마운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부끄러움도 알아야 한다.
당신의 위반조차 보호해 주는 질서에.
그 질서를 따르고 있는 사람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