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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수인 Sep 27. 2024

순도 100%의 사랑~

3장 이해타산(6)






다들 황당하단 투로 되물었다.


“아이, 울 이제상 슨배가 잘 지내냐 하구, 본인두 잘 지낸다 하구. 인쟈 형은 사시를 준비 헌다고 하구. 그러다가 우리 희주가 주섬주섬 날 끄내.”


“뭐야? 그래서요?”


“거, 툭 내밀지이. 그러드니, 대뜸, 아차! 나 그 전에 희주가 어딜 갔다가 지도 힘들구 심란한가 네잎크로바를 그르케 찾아다녔어. 그래서 하나를 따악 코팅을 혀서 내 여 속 안에다가 넣어 뒀거등? 고걸 싸악 끄내드니. 제상이 형 헌티, 지갑은 뭐, 서진? 아 석진. 그 사람헌티 주고. 네잎크로바만 가지라고 행운을 빈다고 예쁜 글씨로 잘 적어 놨다고. 그러고는 끝이 났지.”


“뭐야? 다음에 뭐 어디 단팥빵이라도 먹자 이런 말 안 해요?”


“어어— 이이, 넌 참 뭘 많이도 안다? 근디 아녀. 고걸로 끝이었으.”


“이렇게 되면 이어지는 것이 없지 않겠느냐?”


“긍까여. 고거시 내가 말한 반전이에요이!”


“오, 더 있네. 뭐가.”


“여그서 문제. 시간이 지나고 1984년에 나가 누구의 손에 있었께?”


“저요! 저요!”


“어, 그려. 너 서랍장. 너가 함 말 혀 봐.”


“이제사아앙!”


“옳지. 그려야 우리가 이르케 만나서 이야기 보따리를 풀구 그러지이. 이이.”


어느 순간부터였는지는 몰라도 지갑의 이야기를 듣는 이들이 더 많아졌다. 성진은 12자 오크 나무 원목 장롱에 있던 제상의 물건을 한 무더기로 꺼내놓고서, 미처 상자에 다 담지 못해 밖으로 질질 끌고 나가는 중이었다.


“쟤들은 아쉽겠다. 이 재미난 이야기를 더 못 듣구.”


까만 재봉틀이 정말로 안 됐다는 투로 얘기했다. 성진은 이제 제상이 쓰던 서랍 쪽으로 다가와서 가장 아랫칸 서랍장을 열었다. 와…… 여긴 진짜 고전이 가득하네? 필름 카메라 두 대, 디지털 카메라 두 대. 자신의 아버지가 사진 찍는 취미를 가졌었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애정이 깊은 줄 미처 몰랐던 성진은 제상의 오래된 카메라 앞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앞으로 무엇을 간추려 가지고 있는게 좋을지 정하기 위해 일단 안에 있는 물건들을 전부 다 꺼내기로 결정했다. 그가 부산하게 움직이는 중에 얇은 다이어리 한 권 사이에서 빚바랜 필름 사진 한 장이 툭 하고 떨어져 나왔다. 앳된 희주가 미니스커트를 입고 잔디 밭에 앉아 찍은 사진이었다. 그 사진은 금새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저때, 참 마이 이쁘고, 처연혔지.”


“저때가 언젠데요?”


“희주 어무니 돌아가신지 몇 주 안 되아서 기분 풀어준다구 우리 제상이 형이 올림픽 공원 데리구 갔을 적이여. 저거시 첫 데이튼가 그럴 겨.”


“아니, 지금 자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스토리의 중간 내용을 다 빼먹고 나서 이리 간단히 말하고 끝내면 어찌하냔 말이야.”


“그래요. 저 지금 삼촌한테 살짝 실망했어요. 라뷰 스토리 어디 갔어요?”


“아이, 나두 몰루게, 저 사진을 보구 헌 감상이여. 내가 지금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버린 것이 아녀어. 본격적인 재미는 지금부터 시작이여. 다들 그르니케 실망들은 말고, 나에게 집중을 다시 따악 하는 겨. 자, 눈을 감어 바.”


“눈을 요?”


“이이— 맘을 따악 모아야 혀. 그래야 그때 그 시절로 향하게 돼 있으.”


물건들은 지갑이 요구한대로 도대체 눈을 어떻게 감아야 감기는지도 모르면서, 우선 어떻게든 해보겠다는 시늉이라도 했다. 그 사이 성진은 ‘순도 100%의 사랑~’이라 적힌, 코팅지 마저 누렇게 변한 네잎클로버 한 조각을 발견해 잡고 이리저리 돌려보고 있었다.


“다른 분은 몰라두. 내가 월하 노인 만큼은 인정이여. 리-스-펙트! 고때 따악, 만나게 해분 게, 고거시 보통 콘트롤이 필요한 거시 아니거덩.”


“언제요. 그니까. 언제에. 둘이 따악 만났어요? 아 저 이제 누가 저한테 라이터로 불 붙이고 쪽쪽 빠는 거 같아요! 진짜 현기증이 난다구요!”


“우리나라가 민주 공화국이 되구서, 첨으로 경상 흑자가 난 때가, 저 성진이 태어나던 해여. 긍디 그 전 몇 년전부텀 은행이, 이이, 참, 호황을 누렸으. 그랴서 우리 제상이 형이 사실은 대학 다닐 적에 참으로 열심히 공부를 했거등. 사법 고시를 칠라고 말이여. 근디 고거시 2년을 1차만 달랑 붙고는 2차는 자꾸 안 돼불고 그럈어. 긍게 똥줄은 타는 디, 어째 뭐, 안 될랑가 하고 그냥 접구서. 신한은행으로 입사를 했단 말이지. 긍디 거기에 따악 문을 열고 첫 출근을 하는디. 누가 어맛! 하고 놀래. 그랴서 봤드니, 이게 누구여어. 이이, 희주여어.”


“헉! 우연 치곤 너무 딱 마주친 거 아녜요?”


“이이, 더 웃긴 건 뭔지 알어? 아니 희주가 한 6개월을 수습 기간을 하구 인쟈 창구 경리로 전환을 해서 근무를 하던 때라는 겨.”


“허허, 하늘의 뜻이 맞구나.”


“그죠이이, 그니께 얼매나 희한혀? 근디 차암, 희주가 거기서도 고생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녀. 너들 아는가 몰루것는디, 옛날에는 아니, 고 시절에는 대학 가는 거보담, 상고라고 바루 산업으로 뛰어드는 인재가 많았거등? 근디 은행이 상고 출신들이 유독 많았어. 갸들은 막 주판을 아주 주판이 아휴 나 그거 갸들이 하는 거 보구 있으믄 없는 눈알이 빠져불 거 같텼는디. 하휴, 어찌껀, 고 잘난 똑띠 가시내들이 어리버리 부자집 출신 외동 딸에 주판 굴리는 것두 영 션차는 희주를 볶아 먹구, 씹어 먹구, 조샀어. 아쥬. 이이, 틈만 나믄 저, 어디 불려가서 희쥬씨 증멜루 요로실 끈가요? 이라믄서 사람을 얼매나 쪼는지. 희주 얼굴이 허어어옇게 떠선, 쯧쯧.”


“아이. 그럼 이제상씨는 뭐 했는데요? 가서 막 그러지 말라고. 괴롭히지 말라고 했어요?”


“아이, 야가 아는 건 많아도 그거까졍 헤아리기는 어렵나부네. 고렇게 하믄 짤려어. 희주 쟈가 야무진 거도 없고, 대학도 중퇸디, 그것도 감지덕지였어어어. 아, 제상이 형이야 좀 심허다 싶으믄 아이, 오늘 점심 뭐 먹을까요? 하믄서 유들유들하게 훼방도 놓구 혔지. 근디 원래 힘 없구 약허면 다 그르케 물어 뜯기는 거여어어. 이이. 세상 이치가 그르치이. 그걸 어뜩하남.”


에쎄 담배는 지갑이 하는 이치라는 말에 괜히 울컥하는 기분을 느꼈지만 그냥 지나쳤다. 그때나 지금이나 어설프고 여리기만 하면 괜한 일까지 붙여 물어뜯기는 건 피할 수가 없는 거라고. 세상은 늘 그랬듯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되내면서 말이다.


“그러구 얼마 안돼서 희주 어무니가 결핵으로 돌아가셨어. 그 시절에는 결핵도 다 완치가 되고, 사망자도 잘 안 나오던 시절인디. 폐가 허옇게 되서 염증이 나더니 급성으로 그리 가셨어. 아부지는 어디 쫓겨 다니시느라 연락도 안 되시고. 급하게 장례식장을 잡아서 장례를 치루는디, 은행에서 온 사람들 말고는 조문객이 하나도 없는 겨. 텅 빈 빈소를 희주 혼자 지키고 밤을 지새우는디…… 아이, 고 처연한 얼굴이 더 반쪽이 돼가지구. 내내 설븐가. 눈물이 그렁그렁 하는디. 나가 튀어나가서 꼭 안아주고 싶드라니께.”  


“참으로 눈물 없인 못 들을 이야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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