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이해타산(7)
“참으로 눈물 없인 못 들을 이야기구나.”
“예에— 그라쵸. 지금도 말하믄서도 맘이 참 애린 게.”
성진은 이제 순정 만화에 푹 빠진 소녀의 얼굴을 하고서 제상과 희주가 나눴던 교환 일기를 읽고 있었다.
“제상이 형님은, 고 애린 맘을 저 이뿌장한 일기장에다가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쓰기 시작혔어. 맘이 느므 안 좋다. 왜 자꾸 그 강쥐 같은 동그란 눈이 생각나는질 몰루게따. 뭐 그런 구구절절한 소릴 다 해다 적었지.”
“아휴, 상사병이네. 그냥. 고백을 해야지.”
“이이— 맞어. 고걸루 난중에는 청혼을 했그등.”
“어머? 그럼 사귀자고 한 건 또 따로 다르게 했어요?”
“것두 어뜨케 된 거시냐믄, 은행 일이 끝나구 다들 퇴근 했으니께, 집에 가자, 한잔 허자, 어쩌고 하는디, 울 제상이 형이 총각 중에서 제일 인물이 갠차나서, 아닝가? 홀쭉한 편이라 그른가? 어찌꺼나 여직원들이 좀 들이대구 그랬거등? 긍데 그것도 1:1로 노골적으루다가 그러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는 또 그런 것은 응그은허게, 스아짝쿵, 아닌 처억, 허는 거시 좀 있었어. 그랴서 우리 저녁에 술 한잔 해요. 하다가 처녀 여직원들은 다 모이게 되구, 제상이 형은 혼쟈 가게 된 거여.”
“허허…… 역시 아바마마께서도 천하를 쥐게 되실 재목이셨구나.”
“요 집 남자들이 다 갠찮킨 혀어. 나를 포함 혀서. 큼! 어쨌거나. 꿔다 논 보릿자루 맹키루 술을 홀짝거리던 염희주씨가 집에 먼저 간다구 하는데 제상이 형도 그럼 그만 다들 가재니께 거기 여자들이 단체루다가 눈을 막 부라려서 쨰리드니 희주가 다시 앉았어. 글드니 또 희주는 지 혼챠 꾸석에 박혀선 술을 막 들구 따르구 마셔. 딴 여직원들은 걔가 그러등가 말등가 상관도 않코.”
“어머, 그래 봐야 콩쥐가 이긴다. 이 여자들아.”
“그려. 결론은 그러긴 혔어. 어쪘껀 그러다가 다들 비도 오구, 통금 시간도 다 되아서 일어나는디 아이, 암만 봐두 희주가 정상이 아닝데 쩨일 먼저 나가서 지 몫을 계산할러구 서 있는 겨. 그랴서 형님도 얼른 따라가서 대신 계산을 딱 헐라구 나를 떡 꺼냈는디…….”
“키키키킼. 아 여기서 걸린 거구나?”
“이이— 둘이 딱 눈을 서로 탁 마주보구서 암말을 않고 계산을 다 허고, 사람들을 다 보내놓구서 걷는디…… 희주가 그 동안 그냥 뭐 대리님, 어쩌구 하드니, 이번에는 조용히 슨배. 이랴. 글서 가만 보니 사람이 왜 그랴요? 또 이랴.”
다들 그 다음이 어떻게 전개 되려나 궁금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상의 낡은 지갑은 그때의 일이 바로 엊그제에 있었던 일인 것마냥 아주 생생하다며 혼자 감상에 빠져 킬킬거렸다.
“확실히 말여. 남자가 마음을 탁 머그믄 고때는 달러.”
“왜요? 왜? 뭐라고 했는데요?”
“내 고때랑 또옥같이 말해불 텡게 들어 뱌. 큼큼.”
이번엔 그가 목을 가다듬는 동안 모두들 숨을 죽였다.
“희주야. 너 술 그렇게 마시다가 무슨 일이라도 나겠다.”
“잉? 그게 다예요?”
기대감을 잔뜩 부풀려 놓았던 에쎄 담배가 잽싸게 김을 뺐다.
“아아니이이— 차암내. 급허기는. 뒤에 또 이르케 말을 했지. 내가 집에 데려다줄게. 그니께 희주가, 얼탱이가 없어가지구, 선배가 뭔디 무신 집을 델따주니 마니 하믄서, 자기 것두 아닌 지갑을 멋대루 쓴 거냐구 그라믄서 앙칼지게 쐈그등?”
“그렇지. 어찌하여 아바마마께선 신의를 지키지 못하신 게야?”
“흐흐, 실은 다음이 관건이여. 제상이 형이 고때 마침 걸음을 딱 멈추고 희주를 정면에서 내려다보며 불르는 거여. 염희주. 그니께 희주가 발그레한 얼굴루다가 빼족허게 눈을 홀겨 올려다 봐. 제상이 형이 고걸 보고 차마 귀여버죽것다는 말은 못허고, 빙그레 웃으면서 앞으로 내가 매일 집에 데려다 줘도 돼? 허구 묻는디, 오메, 요 아가씨 얼굴이 즘즘 빨게지다가 귀까졍 아주 터질 지경이 된 거여. 근디 우리 형님이 누구여? 이제상이 아니여? 나를 딱 끄내믄서 여깃따가 붙여가지구, 이거 내가 질투가 나서 못 주겠더라. 이르케 한마디를 더도 덜도 없이 딱 요만큼만 해부는 디. 이이! 남자여! 이이!”
“어머! 어머! 어머! 질투가 냈대. 어머! 담백하니, 왠지 더 설레고 좋다아.”
재봉틀이 여러차례 말을 따라하며 호들갑 떨었다.
“근디 사실 고때, 요거는 희주는 몰르는 뒷이야긴디. 지갑을 못 전해 줄 이유가 있어브렀어. 그…… 아까 말헌 석진이 선배 있쟈녀. 희주가 좋다구 한. 그 동기가 이미 고때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거등. 근디 뭐, 친구가 그르케 된 걸 다 말허기두 좀 그르쿠, 기냥 자기가 질투가 났다 하는 것이 아주 틀린 것두 아니구 그니께, 고냥 고렇게 말을 하구 만 겨.”
“군자의 결단이었군.”
“그라고 나서 담날부터 웬 고뿔이. 으이구. 그랴서 둘이 집에 가다가 뽑뽀햤따고 소문이 나가지구. 난리 웬 난리이.”
“헉, 그럼 염희주씨 곤란해진 거 아녜요?”
“곤란했지. 다 큰 남여 둘이가 그르케 해서 내내 켈록대는디이. 사람들이 가만 내비두것남? 그랴가꼬 아주 불여시가 다 되아부럿제. 우리 희주가. 잔업도 다 몰아 받구.”
“에이씨 진짜. 확! 다!”
“긍께 로오맨스느은 가만 보믄 전쟁통에서 원래 시작이 되는 것이여. 그르케 늦게 까졍 희주가 퇴긍을 못허믄, 앞으루 집에 맨날 델따주기루 헌 제상이 형은 뭘 하것어?”
“어머! 대박! 사내 데이트!”
“그려. 울 희주 배곯을까 싶으니깐, 나가 맨날 투게더 아슈크림, 맛덩산, 꿀꽈배깅, 모시찹쌀떡, 붕어빵, 호떡, 군밤. 군고구마. 이르케 싹 다 골라다 사다 바쳤지. 이이—.”
“달다. 달아.”
“고거를 사쥬구. 한 입 까서 멕이구, 이쁭께 보다가 너 나랑 은제 겨론 할 겨? 카믄, 울 희주 입을 오물딱 복스릅게, 몰르지 나야. 해불구. 그름 또 한 입 멕여서 애가 닳어서, 그니께 너 나헌티 언제 시집 올랑가? 그르믄 옵빠 허는 거 바서어. 이래불구, 햐흐…… 참내 요 애간장아 엊그제 살살 다 녹은 거 같댜. 이이.”
달콤한 이야기 속에 빠진 안방 물건들은 아주 가까이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의 그림자도 잊은 채 깔깔거리기에 바빴다. 야, 너 뭐하냐? 그때 희주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물건들과 함께 희주, 제상이 쓴 교환일기를 탐독하던 성진이 얼른 자세를 고쳐 앉아 능청을 떨었다. 아, 어, 이거 뭐가 뭔지 몰라서 대강 펼쳐 보고 버릴라구. 근데 엄만 왜? 성진이 묻자 희주는, 나는 화장실 갈라구 그러지 하며 길목에 펼쳐진 것들을 발로 휘휘 밀어냈다. 파스락 ! 희주의 시선이 자연스레 종량제 봉투 쪽으로 향했다. 야, 저거 저기에 올려 놔라. 희주는 비닐 봉지 안에 홀로 있던 네모난 곽을 가리켜 성진에게 절대 버리지 말라며 분부했다.
“글치. 저거슨 맞는 말이여. 제사 때 형님헌티 한 대씩 올려드려야지. 이이—.”
“이렇게 혐오스러운 제가 도리할 땐 또 필요하다니요. 정말 웃기는 상황이네요. 하하.”
에쎄 담배가 자신을 두고 부러 우습게 말했다.
“아니다. 괜히 그러지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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