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VI | 타워 The Tower
타워카드는 타로에서 제일 기피되는 카드 중 하나입니다. 이 카드의 키워드는 붕괴; 갑작스러운 변화; 이별; 예상하지 못한 끝. 높게 쌓아 올린 탑이 번개 한 번에 와르르 무너지고 사람들은 혼돈에 뛰어내리는 한눈에도 무시무시한 이 카드가 전 좋아요.
안정적인 기반이 있었다면 외부의 충격에서도 끄떡없었을 것입니다. 타워카드가 말하는 건 무언가 너의 삶에서 붕괴된다면, 그건 애초에 첫 단추부터 잘 못 꿰였음을 가르쳐줍니다. 어차피 언젠간 무너져 내렸을 거예요. 기초가 부실했던 그 탑은, 아무리 공들여 쌓아올렸다한들, 아무리 높이 올렸다한들, 절대 안정적이고 굳건할 수는 없습니다.
이번엔 제대로 된 기반으로 튼튼하게 지어 올릴 기회예요.
사회에 부응하려는 마음, 나를 증명해 내려는 마음, 나를 못 믿는 마음, 남들의 기대에 맞추려는 마음으로 애초에 시작된 것은 그만큼 위태롭습니다. 애초에 나의 진실을 기반으로 하지 않으니까요.
전 여러 번 여러 나라 이사하면서 친구들과 선생님들에게 바보취급을 당했습니다. 선생님들은 영어가 서툰 저를 일부러 골라 책을 읽게 했고, 단어를 틀리게 발음하면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곤 했습니다. 저는 반 전체의 비웃음거리였어요.
그래서 무시당하는 게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을 의대로 갔어요. 좋아하는 것, 열정 있는 건 따로 있었지만 내가 정말 바보가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내가 무시당했던 아픔을 과잉보상하려는 마음에 내린 선택이었어요. 내가 의사가 되면 다시는 날 멍청하다면서, 어디 모자라지 않냐며 조롱받을 일은 없을 테니까. 내 꿈,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에 충실하기보단, 나의 과거에서 생겨난 열등감과 바닥 치는 자존감을 어떻게든 메꾸려 아등바등했어요.
남들에게 사랑받고 싶어 내린 선택은 의대입학이란 증명 후엔 엄청난 번아웃을 가져왔습니다. 막상 가보니 공부가 재밌고 말고를 떠나서 내가 날 일으킬 여력이 없더라고요. 그냥 너무너무 지쳤어요. 마음속엔 미술을 하고 싶단 갈망과, 난 의사가 되어 남들의 인정을 받아야 한단 고집이 팽팽히 대립해 저를 괴롭혔습니다. 결국 전 자퇴하고 포트폴리오를 준비했어요.
뒤늦은 선택이었고, 밤을 새워가며 울면서 공부한 몇 년의 시간들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됐지만, 힘들게 쌓아 올린 탑이었지만, 더 늦기 전에 그만한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열등감 가득한 마음으로 전 좋은 의사가 되지도, 행복한 사람이 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갑작스러운 끝 - 너무 무섭죠. 우리가 그 탑에 공들였을수록, 오래오래 매만져 올렸을수록 더. 이 탑의 붕괴는 내가 간절히 사랑하는 인연과의 이별일 수도 있고, 망가지면 큰일 나는 내 사업일 수도, 급작스럽게 해고되는 것일 수도 있어요.
타워카드의 순간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내가 피한다고 피해 지지 않아요. 이미 예정된 것이었거든요.
라이더 웨이트 덱의 타워카드를 보면 벼락에 맞아 왕관이 떨어집니다. 왕관은 크라운 차크라 (crown chakra/Sahasrara) - 우리의 머리 꼭대기에 있는 7번째 차크라 같아요. 크라운 차크라는 우리의 영적인 이해와 지혜를 돕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물질적 세계의 잣대를 넘어 영혼이 바라는 것을 깨달으려면 크라운 차크라가 막혀있지 않아야 해요. 번개가 쳐서 이 왕관이 떨어진단 건 곧 우리가 불안정한 기반과 표면적이고 사회에서 학습된 것 - 돈, 명예, 시기질투 대신 정말 나를 영혼부터 뿌듯하고 따듯하게 채워줄 진정한 행복이 뭔지 찾아갈 수 있는 기회를 뜻해요. 그리고 그만큼 이 와르르는 신의 개입 - 필연적이었던 무언가인걸 뜻합니다.
만약 지금 내 삶에서 아주 고이고이 열심히 쌓아온 게 위태롭게 흔들리고, 더 나아가 붕괴됐다면 - 충분히 허망함에 슬퍼할 수 있지만 이번엔 더 제대로 된 기반에서 시작할 수 있단 것에 초점을 더 두시길 바라요.
무너져 내린 탑 보고만 있으면 절망밖에 찾아오지 못해요. 좌절에 주저앉진 마세요.
분명 이번엔 더 튼튼한 기반을 다져서 그 어떤 벼락에도 무너지지 않을 탑을 지어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