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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선 Sep 21. 2023

우리는 모두 피해자들의 피해자

불행의 대물림 끊기 1편

"너 쳐다보기도 역겨우니까 방으로 꺼져"

입술을 깨물고 저녁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들을 뒤로하고 어두컴컴한 방으로 향했다. 문을 닫고 나서야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불은 키지 않았다. 거울을 비친 내가 정말 역겨울까 봐 겁이 났다.

한동안 소리 죽여 울었지만 다음날 아침 등교하려 나갈 때까지도 내방엔 아무도 오지 않았다.


--

저희 아버지는 말을 세게 하셨어요. 가족 중 그 누구도 가리지 않는 아빠의 폭발적인 분노는 엄마 포함 가족 모두에게 아빠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만들었습니다. 아빠는 말을 정말 잘하시는 분이세요. 하지만 그 재치 있는 입담은 상처 주는 말 역시 그만큼 더 아프게, 더 모욕적이게, 비수가 되어 꽂혔습니다. 아버진 소리 지르시며 상대를 '굴복'시키셨고, 어떤 말을 해도, 내 입장을 설명해도, 죄송하다 빌어도, 아버지는 비웃으셨습니다.


아빠가 클라이언트 디너 없이 일찍 들어오시는 날엔 손발이 차가워지고 몸이 떨렸었어요. 아빠가 기분이 안 좋으신 날엔, 아마 뭘 해도 그의 주 타깃은 나일 테니까. 내 눈빛, 말투, 존재 모두 아빠를 거스를 테니까.


아버지는 “야마 돈다”라는 표현을 자주 하셨습니다. 나중에 커서 연인에게 화낼 때 그 말 뜻을 이해했어요. 정말 수도꼭지가 고장 나서 콸콸 쏟아지는듯한 컨트롤 불가능한 감정. 눈이 헤까닥 도는 느낌.


전 처음 사귄 애인에게 트리거 되면 인격을 짓밟는듯한 말과 죄책감을 심는 말들만 골라서 했고, 사랑하는 그를 벌레 보듯 보았습니다. 제 분노는 아빠의 분노와 소름 돋게 닮아있었고, 절대 정상적인 화가 아니었어요. 저는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 때 말 그대로 이성이 끊겼고, 아빠는 본인이 무시당한다고 느낄 때 이성을 잃으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정말 사랑받지 못할 때, 정말 무시당할 때가 아니었다는 점이에요. 남자 친구의 일상적인 행동 중 조금이라도 제 아픈 과거와 근접한 말투 한 번에, 전 살랑살랑 애교를 부리다가도 180도 돌변하곤 했습니다. 아빤 자신이 무시 “받은 거”같은 상황 - 예로 13살 딸아이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의견을 말해볼 때, 에어컨을 끄고 다니라고 했는데 실수로 켰놓았을때 -처럼 사소한 일상에 걸맞지 않은 분노가 아빠를 급작스럽게 몰아쳤습니다. 어린 딸이 저녁식탁에서 해맑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게 그 당시 아빠에겐 자신을 무시하고 아버지로서의 권위를 뭉개는 행동이라 여기셔서 화내신 것처럼, 100번 잘해도 1번 말투가 차갑게 나갔다고 그의 사랑을 믿지 못했던 저는 누군가에게 똑같은 가해자가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아빠를 굴복시키시며 키우셨습니다. 훈육방식이 공개적으로 창피를 주고 조롱하는 것이었고, 언어폭력은 물론 차마 여기서 말로 하기 힘들 정도의 물리적 폭력을 가하셨어요. 아빠는 자신이 저에게 한 "훈육"보다 훨씬 더 심한 학대를 받으며 자라신 분이셨습니다. 1남 2녀 중 장남이었던 어린아이는 자신의 아버지의 주 감정쓰레기통이었고, 그 어린아이는 자라 아버지가 되어, 자신을 똑 닮은 장녀인 저에게 그가 사랑이라 믿어야 했던 훈육법을 똑같이 가합니다.


피해자였던 아빠는 나에게 가해자로,

피해자였던 나는 애인에게 가해자로,

그리고 가해자였던 할아버지 역시, 그의 아버지의 피해자였습니다.


시대차이가 큰 만큼, 할아버지는 그의 아버지께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학대를 받으셨어요.


전 압니다 - 제 트라우마를 어드레싱 없이 엄마가 되었다면, 분명 배우자와 아이에게 폭언을 했을 거예요. 얼마나 공격적으로 사랑하는 내 아이를 짓밟을지 너무나 생생히 보였습니다.


슬프게도 우리는 결국 아는 것만 줄 수 있어서,

트라우마는 소름 돋게 비슷한 모습으로 불행을 대물림합니다.

(Generational Trauma)



+ 여담이지만 특히 우리나라는 (6.25, 일제강점기, 5.18 민주화운동 등) 집합적인 트라우마가 비교적 최근이고, 몇 세대 거치지 않은 채 빠르게 발전해서 비슷한 트라우마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전쟁 같은 트라우마를 겪고 어떻게 아이의 감정에 집중해 주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런 부모아래서 양육받은 최근 세대는 자신이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을 수 있을까?

좀 더 가보자면 우리나라 출생률이 떨어지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불행의 대물림 끊기 2편: 아이 없이 부모가 되었다 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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