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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톨 May 05. 2020

[1월] 내가 독립출판 전에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

내새끼니까 물론 예쁘지만서도...

독립출판을 할 때는 정말 무슨 정신이었는지 모르겠다. 일이 바빠진 지금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퇴근 후면 열심히 자판을 두들기고 가인쇄를 하고 박스를 잔뜩 쌓고 포장을 하고 난리법석을 떨었다. 그 폭풍이 한 차례 지나가니 뿌듯함의 감정도 많이 가라앉고 이제는 좀더 객관적으로 나의 독립출판 과정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미리 알았더라면 참고해서 방향을 바꿔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다음 세 가지는 다음 책에서라도 바꿔보고 싶은 것들이다.


1. 좀더 뾰족한 컨셉으로 써볼걸

이건 내가 앞 글에서도 말했던 부분이다. 에세이도 물론 좋지만 좀더 특이한 컨셉을 잡고 쓰는 것도 좋았을 것 같다. 에세이나 여행문은 사실 쓰기 쉽고, 그래서 차별화가 어렵다. 글재주가 정말 뛰어나다면 사실 뭘 써도 눈에 띄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특이한 기획으로 차이를 두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여행책이어도,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를 방문하거나, 현지 카페들이나 책방에 대해서만 써봐도 좋다. 편지글이어도, 전 애인들에게 쓰거나 존경하는 선생님에게 써봐도 좋고, 막 사회초년생이 된 동생에게 쓰는 것도 재밌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내가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으로 쓰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 책은 좀더 나다운 방식으로, 그리고 나만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풀어보고 싶다.



2. 흑백으로 뽑을걸

독립서점은 정산이 더딘 편이다. 1달이면 빠르고 반 년 정도까지 걸리기도 한다. (대부분 개인이 운영하고, 관리하는 책도 많다 보니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이해한다) 그래서 초기 비용을 줄이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200-300부가 가장 적절한 부수인 것 같다. 나는 200부, 컬러로 뽑았는데 흑백으로 뽑을 때보다 가격이 두세 배는 더 뛰었다. (종이 질이나 두께마다 천차만별이겠지만 나는 A5 정도 사이즈 130페이지에 원가 6천원 정도가 나왔다) 중간중간 들어가는 사진 몇 장을 위해 전부 컬러로 뽑으려니 너무 아까웠다. 들어간 돈이 많다보니 자꾸 손익분기점을 생각하게 된다. 돈을 벌지는 못해도, ROI가 -이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비용은 가격으로도 이어진다. 가격을 최대한 낮추고 싶어도 유통 과정이나 서점 수수료(보통 35%)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개당 원가의 2배 이상을 받을 수밖에 없어서 13,000원으로 책정했다. 요즘 책 한 권이 그정도라지만, 내가 그 정도 자격이 되나? 나를 보고 사주는 지인들에게 많이 미안했다. 



3. 익명으로 내볼걸

사실 초고는 훨씬 더 길었다. 그런데 많이 뺐다. 감정을 배설하기 위해 쓴 글들이 많았다. 내게 상처 준 사람들을 원망하는 글, 내가 상처 준 사람들에게 구질구질하게 변명하는 글, 나의 잘못을 남에게 돌리며 탓하는 글, 이제는 지나가버린 과거를 씁쓸하게 회상하는 글. 그렇지만 결국 완성본에서는 다 지워버렸다. 그에 관련된 내용도 책에 쓰게 되었다.

물론 내 감정을 정화하기 위한 용도로만 글을 써서는 안 되겠지. 무라카미 하루키는 남의 악담은 구체적으로 하지 않고, 변명과 자랑은 되도록 하지 않는 것이 자신의 에세이 작성 원칙이라고 했대. 에세이는 본인의 이야기고 결국 나는 사회의 구성원이니 다른 사람 이야기가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내 글을 그 누가 읽어도 결코 상처받지 않기를 바랐어. 내가 사랑하는 나의 가족이나 친구들은 물론이고 내 글을 절대 읽을 일이 없는, 관계가 어긋난 사람들도. 상처 주는 글쓰기라니, 최악이잖아. 그건 글쓰기 자체에게도 욕보이는 짓이라고 생각해. 내가 아무리 사실만을 쓴다고 해도 말이야. 부엌칼에도 베일 수 있는 것처럼, 악의가 없다고 다치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나는 성도 이름도 특이한 편이고, 그 둘의 조합은 말도 안되게 드물다. 검색하면 거의 나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알게 되는 그 누가 찾아봐도 당당할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어서 검열도 많이 했다. 굳이 실명으로 낼 필요가 없었다는 것도 알지만, 그래도 내 이름 석 자를 걸고 당당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결과물을 하나쯤 만들고 싶었다. 만약 다음 책을 낸다면 익명으로 내보고 싶다.




사실 이렇게 아쉽다느니, 고치고 싶다느니 말을 늘어놓았지만 역시 사람은 저질러야 배우는 동물이다. 이런 것들을 배웠으니 다음 책은 더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 아쉬움에서 교훈을 배우고, 더 나은 방향으로 피봇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너무 완벽을 기하지 말고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출간을 해보시길. 데드라인이 있으면 더 좋다. 쫓기듯이라도 책을 내고 나면 '이렇게 하지 말걸' 하는 후회보다 '다음 번엔 저렇게 해야지'라는 생각이 들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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