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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토리 Jun 28. 2024

[여행기록] 군산 - 선유도와 장자도

자전거 섬투어하기  

아이와 여행을 할 때에는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월요일'이다. 월요일은 유명한 식당들도 많이 쉬는 날이며, 온갖 박물관 전시장 휴무날이다. 이번 변산반도 여행에도 월요일이 껴있다는 사실을 여행지 도착해서야 알게 된 우리였다. 둘 다 파워 J는 아닌가 보다. 여러 박물관, 공원이 있었지만 모두 휴무, 승마 체험이 있어서 이거라도 해보자 하는 마음에 전화를 해보니 여기도 휴무, 여기저기 쉬는 날이었다. 휴 어쩐담.


월요일 오전에 변산반도의 닭이봉 전망대 내소사를 둘러본 후 점심을 먹었다. 모두 휴무인지라 갈 곳을 잃은 우리는 장소를 이동하기로 했다. 자전거 타자며 조르는 아이와 어디를 가야 할까 고민을 잠시 하던 중 월요일 휴무 영향을 받지 않고 자전거를 탈 수 있으며, 어른 자전거 대여도 가능한 곳을 삽시간에 찾아낸 짝꿍이 말했다.


"군산 가볼까?"

 

가볍게 던진 한마디에, 군산? 이라며 한번 정색하고 여기가 최선일까를 한번 더 생각해 보았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다. 전라도 여행은 많이 해보지 않은 터라 군산을 가보지 않은 나는 너무 멀지 않나 하는 생각만 들었지만 그냥 가보기로 했다.


군산 가는 길에 넓은 유채꽃밭이 펼쳐져있었다. 꽃 보면 힐링되는 나이가 되어가나 보다. 선유도 공영주차장에 주차하고 자전거 대여를 하고 본격적으로 함께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자전거 타기로 체력이 부쩍 좋아진 아이는 자전거길을 따라 끝까지 가보자고 하는 바람에 뜻밖에 자전거 섬투어가 시작되었다. 선유도를 한 바퀴 돌고 본래 자리로 돌아온 우리는 선유도 친구처럼 붙어있는 장자도를 가보기로 했다.


바닷바람 맞으며 라이딩


장자도 가는 길은 언덕과 내리막길이 있을 뿐 아니라 차도를 살짝살짝 지나가야 하기 때문에 주의 집중력을 발휘해서 가야 했다. 맨 앞에 아빠가 가운데 아이, 맨 끝에 내가 이렇게 순서를 맞추어 이동했다. 선유도와 장자도를 연결해 주는 다리는 경사가 좀 있었다. 우리 모두 일어서서 파워워킹 하듯 자전거 페달을 밟아야 했다. 물론 내려서 잠시 자전거를 끌고 가도 되었건만 무슨 오기였는지 모두 파워워킹 페달질로 언덕을 올랐다. 언덕에 올라서는 절로 비명소리가 나왔다. 허벅지 터지는 그 느낌...... 으~아악!!!!


이 언덕을 궁뎅이 씰룩거리며 파워페달질을 하던 7짤 입니다.


자전거 타고 장자도까지 도착하니 배가 고파왔다. 괜찮아 보이는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노파가 운영하는 작은 식당이었는데 바닷가 앞 야외 테이블도 있었다. 야외테이블에 앉겠다고 하니 노파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으셨다. 음식 나르기 힘들다고 그냥 안에서 먹는 게 어떠냐며 제안하셨지만 저희가 도와드린다며 얼른 야외테이블에 자리 잡았다. 해물라면, 해물파전, 해물칼국수를 주문하고 손바닥을 비비며 배고프다며 구시렁거렸다.


누가 맛집 추천해 준다고 할 때 믿지 말아야 할 사람 부류가 있단다. 바로 자전거 동호회 사람들. 자전거 타고 가다가 발견한 맛집이라 말하는 이들. 그들의 말은 최대한 흘려듣는 것이 좋다. 자전거 타는 게 엄청난 운동이라 라이딩 후 먹는 밥은 뭘 먹어도 정말 꿀맛이다.   



바닷가 앞에서 해물이 들어간 음식은 안 맛있을 수가 없다. 너무 맛있다며 연신 감탄하며 음식을 싹싹 긁어먹다 보니 어느덧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서둘러 낙조를 볼 수 있다는 카페를 찾아 또다시 자전거로 이동했다. 나름 대형 카페였다. 큰 건물 앞 바닷가 야외에 테이블이 있었다. 각자 음료 하나씩 들고 자전거 투어하며 느낀 썰을 풀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해는 어느새 해수면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꽃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향기 좋은 꽃이라며 따준 꽃에 기분도 향긋해지는 순간이었다.


이 꽃 이름이 뭐였더라? 찾아보았지만 기억이 안 나네 ;;


보라카이에서 보았던 석양이 참 멋졌던 탓에 멋진 석양이라 물으면 늘 보라카이를 떠올렸는데 이제는 그 자리를 군산이 차지해 버렸다. 자연에 압도되는 느낌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하는 낙조.


tnv프로그램 알쓸신잡 경주여행 편에서 윤여정 배우가 노을을 보면 참 슬프다고 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에 유시민 작가님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노을은 왜 저렇게 느낌이 강할까?
저는 일출을 보면 별 느낌이 없어요.
근데 노을이 질 때는 어떤 감정이 일어나요.
해가 넘어가는 게 정해져 있잖아요.
해는 시간이 되면 넘어가게 돼 있어요.
우리네 인생도 시간이 되면 넘어가게 돼 있어요.
근데, 해는 서산으로 넘어갔는데 붉은 노을이 남아 있는 거야.
우리 삶의 끝이 저러면 참 좋겠다.

끝나는 건 끝나는 건데,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지만,
딱 끝나고 나서 약간의 여운이 남잖아요.
잊히는 것도 어쩔 수 없지,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내 삶이 끝나고 약간의 시간 동안이라도
내 삶이 만들어낸 어떤 것이 여운을 좀 남기면
상당히 괜찮은 끝이 아닐까?


인생의 끝을 논하기에 나는 아직 어린 마흔이지만, 자연에 압도되는 낙조를 보고 있자니 잔여 인생을 어떻게 살면 좋을지 흐릿한 힌트를 얻는 기분이 들었다. 내 별것 없는 하루의 낙조가 남기는 여운이 짙고 길어지면 좋겠다는 소망을 담아 해가 해수면으로 쏙 숨어버리는 그 순간까지 지켜보았다. 7살 아이 마음속에 낙조는 어떤 이미지로 남았을까. 해가 해수면에 닿기 직전에는 몇 초만 한눈을 팔아도 금세 쑥쑥 내려갔다. 아이는 눈을 감고 얼마큼 내려오나 실험하듯 해를 쳐다보았고, 나는 좀 더 천천히 떨어지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월요일이 모두 휴무인 탓에 뜻밖에 군산의 선유도와 장자도라는 좋은 곳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알게 되었다.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멋진 낙조를 못 봤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월요일에 여행을 와서 보고 놀 만한 것이 없다는 생각에서 날씨가 좋지 않으면 보지 못했을 낙조를 보았다는 긍정적 생각의 전환이 일어났다. 나도 원영적 사고를 마구 뿜어대고 있구나 하며 한바탕 웃었다. 8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도 하늘의 붉은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차 창문을 내 끝까지 지켜보며 해어진 군산. 아름다운 이 곳을 꼭 다시 오리라!


짝꿍이 낙조 보는 나와 아이를 찍어준 젤 잘 나온 사진. 대자연을 사진에 잘 담기는 참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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