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귀국날의 작은 축복

집 찾아간 장

by 하늘바람

우리는 종종 작은 일상의 축복을 여행지에서 깨닫곤 합니다. 때로는 그 깨달음이 참으로 소소하고, 웃음 짓게 만드는 방식으로 찾아오기도 하지요.


코타키나발루에서의 마지막 나흘은 어머니께 조용한 시련의 시간이었습니다. 낯선 음식, 달라진 생활 리듬, 그리고 아마도 여행이 주는 미묘한 긴장감 때문이었을까요. 어머니의 장은 그만의 고집스러운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마치 비행기 이륙을 거부하는 여행객처럼, 꿋꿋하게 제자리에 머물러 있기로 한 듯했죠.


"아이고, 이러다 한국 가겠네..."


호텔 화장실에서 한숨 섞인 어머니의 중얼거림이 들릴 때마다, 저는 죄책감과 안쓰러움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열대과일과 야자수가 가득한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도, 어머니의 마음은 오로지 그 문제로 무거웠으니까요.


아버지는 나름의 방식으로 위로를 건네셨습니다.

"괜찮아, 집에 가면 되지 뭐."

무심한 듯 던진 그 한마디에, 오십 년 부부의 세월이 묻어났습니다.


그렇게 나흘이 지나고,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비행기가 김해공항에 착륙하고, 입국 수속을 마치자마자 어머니는 화장실로 향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아이고, 시원해라!"


공항 화장실에서 들려온 어머니의 환한 목소리에, 저는 피식 웃음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비록 공항 화장실이었지만, 그곳은 어머니에게 나흘 만의 해방구가 되어주었습니다.


어머니가 화장실에서 나오실 때의 그 표정이란! 마치 오랜 고행 끝에 득도를 한 스님처럼 평온해 보이셨습니다. 그동안의 모든 걱정과 불편함이 씻겨 나간 듯했죠.


"역시 우리나라가 최고다."

어머니의 이 한마디에, 우리 가족 모두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일입니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지구 위에서 이뤄지는 일상적인 생리현상인데, 왜 그렇게 국경을 가리는 걸까요? 어쩌면 우리 몸은 그렇게 고향을 그리워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국적인 휴양지의 호화로운 리조트도 좋지만, 때로는 평범한 일상의 편안함이 주는 행복이 더 크다는 걸 이번 여행에서 배웠습니다. 특히나 어머니의 장에게는 더욱 그랬나 봅니다.


귀국 후 저녁, 집에서 맛있는 김치찌개를 먹으며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다음 여행은 우리나라로 가자."

아버지는 싱긋 웃으시며 고개를 끄덕이셨고, 우리도 모두 동의했습니다.


여행의 즐거움과 일상의 편안함. 어쩌면 이 둘의 균형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요? 김해공항 화장실에서 찾은 어머니의 소소한 행복이, 그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었습니다.


오늘도 어딘가를 여행하는 누군가의 장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길 바라봅니다. 때로는 이런 소소한 귀환도,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특별한 선물이 될 수 있으니까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