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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손님의 오후

원숭이도 손님입니다.

by 하늘바람

때로는 가장 평범한 순간이 특별한 기억이 됩니다. 코타키나발루의 어느 무더운 오후, 우리 가족은 호텔 복도에서 예기치 않은 손님과 마주쳤습니다


달콤한 열대과일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복도를 걷고 있을 때였습니다. 청소 카트가 복도 한켠에 고요히 서 있었고, 따사로운 오후의 햇살이 창틀을 타고 들어와 카트 위에 부드럽게 내려앉고 있었죠. 그때였습니다. 한 마리의 원숭이가 마치 오래된 단골처럼 자연스럽게 그곳에 나타났습니다.


"엄마, 저기 봐!"


아이의 작은 속삭임에 고개를 돌렸을 때, 원숭이는 이미 능숙한 손놀림으로 카트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마치 오랜 시간 이곳의 일상을 함께 해온 것처럼 말이죠. 그의 목표는 분명했습니다. 카트 한구석에 놓인 말린 파인애플 봉지였습니다.


특별한 것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지나가던 호텔 직원들은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미소 지을 뿐이었고, 청소를 하던 아주머니는 그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자신의 일을 계속할 뿐이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이미 일상이 된 풍경이었나 봅니다.


아이들의 눈빛이 반짝였습니다. 도시에서만 자란 그들에게 이것은 작은 모험이자 발견이었을 테지요. 원숭이는 천천히, 하지만 망설임 없이 비닐을 뜯어 말린 파인애플을 꺼냈습니다. 그의 움직임에는 수많은 경험이 만들어낸 여유가 묻어났습니다.


"여기서는 원숭이도 호텔 손님이에요."


지나가던 직원의 말에 우리는 모두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랬습니다. 이곳은 우리가 머무는 호텔이면서, 동시에 그들의 오랜 터전이기도 했습니다. 우리야말로 이곳의 손님이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말린 파인애플을 맛있게 먹어치우는 원숭이를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습니다. 도시와 자연이, 인간과 동물이, 일상과 특별함이 이토록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이 바로 코타키나발루의 매력이 아닐까요?


아이들은 그날 이후로 매일 오후 그 시간이 되면 복도로 나가보곤 했습니다. 우리의 특별한 손님을 다시 만나길 기대하면서요. 비록 그날의 우연한 만남이 다시 이어지진 않았지만, 그 짧은 순간은 우리 가족의 여행 앨범에서 가장 빛나는 한 페이지가 되었습니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가끔 달콤한 과일 향이 나면 그날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무심한 듯 특별했던 그 오후, 호텔 복도에서 만난 낯선 손님과의 짧은 교감. 그것은 여행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작은 기적 중 하나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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