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용도 멀티를 넘어
동네에서 작은 공간을 하나 마련해 커뮤니티 활동을 시작하는 일은 쉽지 않다. 임대료는 오르고 운영은 녹록지 않다. 공간은 넓지 않고 예산과 인력도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이곳에는 주민들의 다양한 요구가 모인다. 모임과 학습, 돌봄과 전시, 대화와 휴식 같은 활동이 상황에 따라 선택되고 조합될 수 있어야 한다.
소규모 공간에서 다기능은 선택이 아니라 조건이자 생존 전략이다. 공간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꾸준히 드나들고, 활동 또한 이어져야 한다. 이곳에서 이용자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과 만나며, 자신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새로운 활동에 도전해볼 수 있다.
겹쳐쓰기란 하나의 공간을 기능별로 고정하지 않고, 시간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계획하는 방식이다. 공간은 같지만,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은 달라진다. 낮과 밤의 쓰임이 나뉘고, 읽기와 대화가 이어지며, 참여자와 운영자의 역할이 교차한다. 하나의 평면 안에서 서로 다른 활동이 겹쳐 작동한다.
왜 커뮤니티 공간에서 겹쳐쓰기가 중요할까. 그것은 단순히 여러 기능을 담기 위해서가 아니다. 서로 다른 활동이 한 공간 안에서 마주칠 때 사람 사이의 관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여러 목적이 우연히 교차하는 순간, 이용자는 방문자에 머무르지 않고 참여자가 된다. 커피를 마시다 강연을 듣고, 아이를 데려왔다가 부모 모임에 참여하며, 전시를 보러 왔다가 지역 활동가를 만난다. 이때 커뮤니티 공간은 소비의 장소를 넘어 관계가 형성되는 장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방식은 낯선 것이 아니다. 도시는 오래전부터 서로 다른 기능이 겹치며 작동해왔다. 제인 제이콥스가 말한 활기 있는 거리는 다양한 목적과 시간이 공존하는 장소였고,* 렘 콜하스가 주목한 현대 도시 역시 단일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활동의 밀도 속에서 의미를 만들어내는 공간이었다.** 도시의 생동감은 기능의 분리가 아니라 중첩에서 비롯된다.
겹쳐쓰기는 이러한 도시적 원리가 동네의 작은 공간 안에서 구현되는 방식이다. 공간을 넓히는 대신 같은 공간을 다르게 사용한다. 제한된 조건 속에서 다양한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공간기획의 태도다. 그렇다면 이러한 겹침은 실제 공간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까. 작은 평면 안에서 여러 기능은 어떤 방식으로 공존하는가. 이제 구체적인 다음 세 개의 사례를 살펴보려 한다.
* 제인 제이콥스,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유강은 옮김, 그린비, 2010, 제8장 ‘혼합된 주요 용도’ 참조.
** Rem Koolhaas, Delirious New York: A Retroactive Manifesto for Manhattan, New York: The Monacelli Press, 1978.
늦은 저녁, 모두가 돌아간 뒤의 달리도서관은 조용하다. 책장 사이에 불빛이 남아 있고, 거실에는 아직 따뜻한 기운이 감돈다. 낮에는 모임이 열리고 아이들이 드나들던 공간이 밤이 되면 한 사람의 숙소가 된다. 책을 읽다 잠이 들고, 아침이 되면 같은 자리에서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도서관이면서 동시에 머무는 공간이다.
달리도서관은 2009년 10월 문을 열었다. ‘달빛 아래 책 읽는 소리’라는 뜻과 세상을 ‘달리 보고, 달리 느끼고, 달리 생각한다’는 태도를 함께 담은 이름이다. 초기에는 여러 명이 뜻을 모아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운영 구조는 변화했다. 현재는 윤홍경숙 관장(토토)을 중심으로 다섯 명의 달리지기가 요일지기 시스템을 통해 운영을 맡고 있다.
이곳에서 도서관과 게스트룸이 함께 계획된 데에는 특별한 문제의식이 있었다. 개관 초기 제주에는 여성이 혼자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숙소가 많지 않았다. 모임과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육지에서 방문하는 여성들이 있었지만, 머무를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달리도서관은 이 필요를 외부 시설로 분리하지 않고, 도서관 안에 함께 두기로 했다. 여성과 가족을 위한 머무름을 공간 구성의 일부로 끌어들인 것이다.
이 공간의 출발점은 보습학원이었다. 근린상가 2층, 칸칸이 나뉘어 있던 교습 공간을 그대로 유지한 채 도서관으로 전환했다. 큰 열람실을 새로 만들는 대신, 분절된 구조를 읽기방·사랑방·게스트룸 등으로 재해석했다. 정문에서 공적 영역을 거쳐 안쪽으로 갈수록 사적인 공간으로 깊어지는 배치는 작은 면적 안에서 공공성과 사생활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계획이었다. 물리적 조건은 한계가 아니라, 다층적 공간 구성을 가능하게 한 기반이 되었다.
달리도서관의 중심에는 주방과 큰 테이블이 놓인 거실이 있다. 이곳에서는 책을 읽는 일과 음식을 나누는 일이 분리되지 않는다. 강연과 토론, 식사와 대화가 같은 장소에서 이어진다. 도서관을 조용히 책을 읽는 공간으로 고정하지 않고, 생활과 분리되지 않는 공간으로 확장한 것이다.
세미나실인 ‘샘이나실’과 ‘모여드실’은 독서 모임과 프로그램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지만, 필요에 따라 다른 활동으로 전환된다. ‘둥실둥실’은 낮에는 만화방으로, 밤에는 1인이 머무는 숙소로 사용된다. ‘허허(HerHer)실실’은 여성 전용 게스트룸이다. 이 방들은 도서관과 분리된 숙박동이 아니라, 도서관 안에 함께 놓여 있다. 별도의 공간을 추가하기보다 기존 방을 하나의 기능으로 고정하지 않고, 같은 장소가 시간에 따라 다른 쓰임을 갖도록 계획한 것이다. 낮에는 프로그램 공간으로, 밤에는 북스테이로 전환된다. 면적을 확장하는 대신, 하나의 구조 안에서 사용 방식을 중첩시킨 선택이었다.
달리도서관의 ‘겹쳐쓰기’는 공간 구성에만 머물지 않는다. 장서 방식 역시 독특하다. 이곳의 책은 일괄적으로 구입한 장서가 아니라, 각자가 읽고 의미 있었던 책을 보내어 자신의 이름을 단 책장으로 구성된다. 책은 ‘기부’가 아니라 언제든 다시 찾아갈 수 있는 ‘위탁’의 형식으로 놓인다.
따라서 책꽂이는 ‘문학·철학’과 같은 분류 체계 대신 사람의 이름으로 나뉜다. 한 사람의 삶과 취향이 하나의 서재 단위가 되고, 그 서재들이 모여 도서관을 이룬다. 사적인 독서 경험이 공공의 공간 안에 함께 놓이는 구조다. 개인의 서재가 공공의 장서가 되고, 여러 사람의 삶과 기억이 한 공간 안에 공존한다.
2017년 이후 달리도서관은 요일지기 시스템을 도입해 운영 구조를 재정비했다. 윤홍경숙 관장을 중심으로 다섯 명의 달리지기가 요일을 나누어 운영하며, 각자는 자신이 맡은 날의 기획자이자 운영자가 된다. 생업과 병행할 수 있도록 설계된 이 구조는 공간의 지속가능성을 가능하게 한 기반이 되었다.
달리도서관은 회원 회비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작은도서관이다. 정기 회원이 도서 대출과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회비는 공간 유지의 토대가 된다. 한편 게스트룸은 별도의 숙박시설이 아니라 도서관의 일부로 운영되며, 사전 예약을 통해 이용할 수 있다. 공공도서관처럼 완전히 개방된 구조라기보다, 일정한 관계망 안에서 유지되는 커뮤니티형 구조에 가깝다.
이 운영 방식은 공간 사용과도 맞닿아 있다. 프로그램은 필사·글쓰기·북클럽 등으로 확장되며, 읽기는 개인의 행위에 머물지 않고 대화와 만남으로 이어진다. 이용자와 운영자의 구분 또한 고정되지 않는다.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과 운영하는 사람의 경계가 유연해지면서, 도서관은 단순한 시설이 아니라 함께 유지하고 만들어 가는 장소가 된다.
달리도서관에서 겹쳐쓰기는 기능을 나열하는 다기능과는 다르다. 공간을 기능별로 나누기보다, 같은 장소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로 다른 쓰임을 갖도록 계획하는 방식이다. 도서관과 거실이 분리되지 않고, 만화방은 밤이 되면 숙소로 전환된다. 개인의 서재는 공공의 장서가 되고, 이용자는 때로 운영의 주체가 된다. 하나의 구조 안에서 역할과 시간이 겹쳐 작동한다.
이러한 겹침은 물리적 조건과 운영 방식이 함께 만들어 낸 결과다. 보습학원의 분절된 구조는 읽기방·사랑방·게스트룸으로 재해석되었고, 여성 중심의 운영 지향과 제주라는 지역적 맥락, 요일지기 시스템은 공간을 특정 기능에 고정시키지 않았다. 책을 중심에 두되, 읽기가 대화와 모임, 체류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구성했다.
달리도서관은 작은 도서관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안에서 체류를 허용하고, 역할을 열어 두며, 시간을 겹쳐 놓음으로써 하나의 구조 안에 더 많은 활동과 관계가 머물 수 있도록 한다. 커뮤니티 공간에서 중요한 것은 규모가 아니라 구조다. 한 구조 안에 서로 다른 시간과 역할이 함께 작동할 수 있을 때, 작은 공간은 여러 삶을 수용하는 장소가 된다. 달리도서관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오사카 나카자키초에 위치한 코몬카페는 앞서 ‘이어주기’에서 다루었던 사례다. 그곳에서는 일일마스터제라는 운영 방식을 통해 사람과 역할이 바뀌며 관계가 이어지는 구조에 주목했다. 그러나 그 실험이 가능했던 또 하나의 조건은 공간 자체의 유연성이었다.
코몬카페는 운영 방식만이 아니라, 하나의 공간이 여러 기능을 수용하도록 설계된 플렉시블 스페이스였다. 일일마스터라는 제도가 작동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공간을 기능별로 고정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쓰임을 바꿀 수 있도록 한 구조가 있었다. 이번 장에서는 그 공간적 조건에 주목한다.
코몬카페는 약 20평 남짓한 직사각형 평면이다. 한쪽에는 오픈 키친과 바가 길게 놓여 있고, 맞은편 벽면에는 책장이 자리한다. 중앙은 비워져 있으며, 테이블과 의자는 이동 가능하다. 고정된 무대도 객석도 없다. 이 단순한 평면은 기능을 구획하지 않는다. 테이블을 옮기면 공연장이 되고, 의자를 모으면 토론장이 된다. 전시는 책장을 배경으로 이루어지고, 바는 조리 공간이면서 장면의 일부가 된다. 공간을 새로 만들지 않아도, 같은 구조 안에서 다른 장면이 펼쳐진다.
겹쳐쓰기는 여기서 여러 기능을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공간을 하나의 기능에 묶어 두지 않고 상황에 따라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구성하는 태도다. 고정된 설비를 최소화하고 여백을 확보함으로써, 공간은 언제든 다른 활동을 수용할 수 있는 상태로 유지된다.
코몬카페에서는 낮과 밤이 분리되지 않는다. 낮에는 카페였던 공간이 저녁에는 공연장이 되고, 워크숍은 살롱으로 전환된다. 그러나 이전의 장면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낮에 머물렀던 사람은 같은 공간에서 저녁 공연을 경험하고, 다른 날 다시 방문하면 또 다른 장면을 마주한다. 기본 형식은 유지된 채 서로 다른 활동이 이어진다. 하나의 장소 위에 여러 시간이 포개지면서 공간은 단일 기능의 시설이 아니라 시간과 기억이 축적되는 장소가 된다. 겹쳐쓰기는 이처럼 물리적 구조뿐 아니라 시간의 중첩을 통해 완성된다.
코몬카페에서 겹쳐쓰기는 다기능을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다. 공연장, 카페, 전시장이라는 이름을 각각 부여하는 대신, 하나의 평면을 단순하게 유지한 채 쓰임을 전환하는 구조다. 공간을 잘게 나누지 않고, 비워 두며, 필요할 때 장면을 만들어낸다. 기능을 더하는 대신 전환 가능성을 남겨 두는 설계 태도다.
겹쳐쓰기는 면적을 늘리는 전략이 아니라, 하나의 구조 안에서 다른 활동과 시간이 겹쳐 일어날 수 있도록 만드는 공간기획의 태도다. 코몬카페는 그 태도를 가장 간결한 평면 안에서 구현한 사례였다.
앞서 도쿄의 깃사란드리는 ‘다가가기’와 ‘끌어들이기’에서 1층의 개방성과 접근성, 세탁이라는 일상적 행위를 통해 사람을 맞이하고 머무르게 하는 공간으로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그 안에서 벌어지는 장면들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겹쳐쓰기의 관점에서 다시 보면, 이곳은 세탁과 모임, 일상과 행사가 나뉘어 있으면서도 필요에 따라 하나로 열릴 수 있도록 계획된 공간이다.
약 100㎡의 공간은 큰테이블석, 두더지석, 마을 가사실, 플로어석 등으로 나뉜다. 겉으로는 기능이 구획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사용은 고정되지 않는다. ‘큰테이블석’은 평소 사무공간으로 쓰이지만, 같은 자리에서 요리 교실, 빵 만들기 워크숍, 인터뷰 촬영, 그림책 연구회, 나무 주걱 만들기 프로그램이 열린다. 책상은 회의 테이블이 되었다가 작업대가 되고, 촬영 세트로 전환된다. 업무와 커뮤니티 활동이 물리적으로 분리되지 않는다.
4m×2m 크기의 반지하 공간인 ‘두더지석’은 7-10명이 사용할 수 있으며, 레이아웃이 자유롭다. 여성들의 점심모임, 보자기 워크숍, 뜨개질 동호회, 망년회 등이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특히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는 하기 어려운 뜨개질 같은 활동이 가능하다는 점을 운영자는 이 공간의 장점으로 자랑했다. 두더지석은 단순한 소모임 공간이 아니라, 상업 카페가 배제하는 행위를 받아들이는 장소다.
구획되어 있지만 기능은 닫혀 있지 않다. 공간은 역할을 고정하기보다 상황에 따라 쓰임을 달리한다. 겹쳐쓰기는 여기서 기능의 추가가 아니라, 고정되지 않은 사용 방식으로 드러난다.
가장 상징적인 곳은 ‘마을 가사실’이다. 세탁기와 건조기, 재봉틀과 다리미가 놓인 이 공간은 분명 가사노동의 장소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회의와 생일 파티가 열리고, 모자 만들기와 상복 제작, 색종이 워크숍이 진행되며, 현대미술 전시와 지방 이주 설명회도 이루어진다. 아이와 함께 오는 엄마들의 교류장소이자 재봉틀을 사용할 수 있는 작업장이며, 방과 후 아이들의 놀이터다.
재봉틀 옆에서 토론이 이루어지고,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아이들이 논다. 사적인 생활과 지역 모임이 같은 장소에서 겹쳐진다. 이는 기능을 덧붙이는 다기능이 아니라, 생활과 활동을 분리하지 않는 공간 태도다.
플로어석은 22-25명이 이용 가능하며 자유롭게 테이블을 이동·추가할 수 있다. 지역 건축회사의 연구회, 독서회, 여행 보고회, 모형을 놓고 하는 워크숍 등이 열렸다. 전체 임대는 50명 이하의 행사까지 확장된다. 부모와 아이가 모이는 이벤트, 토크 행사, 회사 창립 파티, 생일 파티, 결혼식 이차 모임 등이 열리며, 주민 스스로 이벤트를 계획해 공간을 활용한다.
마을 가사실은 미서기문으로 열고 닫을 수 있고, 두더지석은 단차를 통해 구획되면서도 시각적으로는 연결된다. 필요할 때는 구획이 열리며 공간 전체가 하나로 이어진다. 하나의 구조가 활동의 밀도를 달리하며 사용된다. 면적은 그대로지만, 그 안에서 허용되는 활동의 범위와 규모는 달라진다.
깃사란드리의 겹쳐쓰기는 면적을 확장하는 전략이 아니다. 기능을 명확히 나누어 두되, 그 기능을 고정하지 않는 방식이다. 구획은 존재하지만 사용은 열려 있다.
이는 단순한 다목적 공간과는 다르다. 기능을 나열하는 대신, 같은 구조 안에서 사용의 폭을 열어 두는 설계 태도에 가깝다. 결국 이곳에서 겹쳐쓰기는 공간을 확장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의 평면이 다양한 활동을 수용하도록 만드는 계획 방식으로 드러난다.
달리도서관은 책을 읽는 공간에 숙박 기능을 더하고, 개인의 서재를 공공의 장서와 나란히 두었다. 읽기와 머무름이 한 공간 안에서 이어지며 시간과 쓰임이 겹쳐진다. 코몬카페는 하나의 평면 위에서 낮과 밤의 장면을 바꾼다. 낮에는 카페로, 저녁에는 공연장으로 쓰이며 같은 공간이 다른 역할을 맡는다. 깃사란드리는 구획된 작은 공간 안에서 세탁과 모임, 일상과 행사를 함께 수용한다. 가사 공간이면서 동시에 워크숍과 지역 행사가 열리는 장소다. 세 공간은 규모와 조건도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하나의 기능에 고정되지 않는다.
이들이 보여준 겹쳐쓰기는 기능을 많이 넣는 ‘다기능’과는 다르다. 공간을 잘게 나누거나 프로그램을 덧붙이기보다, 같은 장소가 상황과 시간에 따라 다른 쓰임을 받아들이도록 계획하는 방식이다. 고정된 설비를 최소화하고 여백을 남겨 두어, 이용자가 상황에 따라 공간을 다시 구성할 수 있도록 한다.
겹쳐쓰기는 선택 가능한 전략이 아니라, 규모가 제한된 동네 커뮤니티 공간에서는 사실상 전제가 되는 설계 태도다. 처음부터 다양한 사용을 전제로 계획할 때 작은 공간은 더 오래 쓰이고, 반복 방문을 가능하게 하며, 일상과 모임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기반이 된다. 결국 겹쳐쓰기는 규모를 키우는 일이 아니라, 작은 공간을 더 유연하게 쓰이도록 만드는 계획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