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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커뮤니티 공간을 이해하는 여덟 가지 틀

by 박혜선

1. 키워드로 읽는 이유

커뮤니티 공간의 다양성

동네 커뮤니티 공간은 하나의 유형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어떤 공간은 카페처럼 보이지만 주민 모임이나 공부방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작은 도서관에서 시작했지만 전시나 공연이 열리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형태와 운영 방식은 다르지만 이러한 공간들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마주치고 관계를 만들어 가는 장소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커뮤니티 공간에 대한 논의는 주로 시설 유형이나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마을카페, 커뮤니티센터, 주민공동시설과 같은 이름으로 공간을 분류하고 그 안에서 어떤 활동이 이루어지는지를 설명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실제 공간을 살펴보면 같은 이름의 공간이라 하더라도 공간의 구성과 배치에 따라 이용 방식은 크게 달라진다. 어떤 곳에서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어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고 머물며 관계가 이어지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지만 활동이 끝나면 다시 일상의 공간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커뮤니티 공간을 프로그램이나 시설 유형으로 설명하려는 접근이 ‘무엇을 하는 공간인가’를 묻는 것이라면, 이 책은 어떻게 계획하고 디자인해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나고 관계를 만들어 가는 공간을 만들 수 있는지를 질문한다.


키워드라는 읽기의 틀

이 책은 이러한 질문을 바탕으로 동네 커뮤니티 공간을 ‘공간의 구성과 이용방식’이라는 관점에서 읽어 보고자 한다. 사람들이 공간에 들어오고 머물며 관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 속에서 공간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커뮤니티 공간 사례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공간 구성 방식을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하였다.키워드들은 공간을 유형으로 분류하기 위한 이름이라기보다, 공간의 구성과 사용 방식이 사람들의 만남과 관계 형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읽기 위한 하나의 해석 틀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 절에서는 이러한 키워드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동네 커뮤니티 공간을 어떻게 관찰했는가

이 연구는 다양한 동네 커뮤니티 공간 사례를 살펴보는 데서 출발했다. 일본과 한국을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운영되고 있는 커뮤니티 공간을 직접 방문하거나 자료를 통해 살펴보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공간에 들어오고 머무르며 관계를 만들어 가는지를 관찰하였다.


이 과정에서 관심을 둔 것은 공간의 형태나 기능보다 공간이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 장면이었다. 사람들이 어떤 경로로 공간에 들어오고 어디에서 머무르는지, 낯선 사람 사이의 만남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음식이나 활동이 관계 형성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살펴보았다. 또한 공간의 배치, 가구의 구성, 경계의 열림과 닫힘, 프로그램 운영 방식 등이 이러한 장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함께 살펴보았다.


이러한 과정에서 서로 다른 도시와 문화권의 공간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관계를 이어지게 만드는 데에는 몇 가지 공통된 공간 구성 방식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떤 공간은 접근성을 높여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이고, 어떤 공간은 음식을 매개로 관계가 시작되도록 하며, 또 어떤 공간은 하나의 장소 안에서 다양한 활동이 겹쳐지도록 만들어 일상의 접점을 넓힌다. 형태와 규모는 서로 다르지만, 이러한 전략들이 나타나는 공간의 계획 방식에서는 일정한 공통성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사례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공통된 공간계획 방식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다음 절에서는 이러한 방식들이 어떻게 여덟 가지 키워드로 정리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3. 키워드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그림 1] 동네 커뮤니티 공간 키워드 도출 과정


반복되는 공간 구성 방식의 발견

앞 절에서 살펴본 것처럼 다양한 동네 커뮤니티 공간을 살펴보며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관계를 맺는지를 중심으로 공간 이용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관찰을 이어가다 보니 서로 다른 도시와 문화권의 공간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관계를 이어지게 만드는 몇 가지 공통된 방식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어떤 공간은 길과 내부 공간의 경계를 느슨하게 열어 두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들고, 어떤 공간은 음식을 함께 준비하고 나누는 과정을 통해 관계가 시작되도록 한다. 또 어떤 곳에서는 하나의 공간이 시간에 따라 다른 쓰임으로 바뀌거나 서로 다른 활동이 한 장소 안에서 겹쳐지면서 일상의 접점을 넓힌다. 이러한 장면들은 개별 사례에만 나타나는 특징이라기보다 여러 공간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공통된 공간 전략이었다.


공간 계획 요소로 정리하기

이 연구에서는 이러한 반복성을 단서로 삼아 사례 속에서 나타나는 공간 요소들을 하나씩 정리해 나갔다. 먼저 사례 속에서 나타나는 장면과 공간적 장치를 기록하고 비교하면서 서로 유사한 특징들을 묶었다. 그 과정에서 접근성, 투명성, 기획성, 오픈공간, 음식, 공동체 형성, 연결성, 다용도 활용, 로컬성 등과 같은 공간 계획 요소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요소들은 동네 커뮤니티 공간을 계획할 때 고려해야 할 건축적 조건들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위치와 외부에서 내부 활동을 느낄 수 있는 투명성, 사람들을 공간으로 불러들이는 기획, 누구나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 음식을 매개로 관계가 형성되는 환경, 활동을 이어 주는 연결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될 수 있는 공간 구조, 그리고 지역의 기억과 감성을 되살리는 장소성 등이 그것이다.


일상 언어의 키워드로 번역하기

건축적 개념을 일상의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여덟 가지 키워드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들은 건축계획이나 연구의 언어로는 설명될 수 있지만 일반 독자에게는 다소 경직되고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이 책은 동네 커뮤니티 공간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러한 공간 계획 요소들을 일상적인 언어의 키워드로 다시 정리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접근성과 투명성을 함께 묶어 ‘다가가기’, 기획성을 ‘끌어들이기’, 오픈공간을 ‘열어주기’, 음식을 매개로 한 관계 형성을 ‘대접하기’, 공동체 형성을 ‘묶어주기’,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구조를 ‘이어주기’, 하나의 공간이 여러 활동으로 활용되는 방식을 ‘겹쳐쓰기’, 지역의 기억과 장소성을 되살리는 과정을 ‘되살리기’라는 키워드로 정리하였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공간 구성 방식을 정리하면서 여덟 가지 키워드가 도출되었다. 이 키워드들은 특정한 공간 유형을 규정하기 위한 분류라기보다 동네 커뮤니티 공간이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관계를 만들어 내는 방식을 읽기 위한 해석의 틀이다. 다음 절에서는 이러한 키워드들이 기존의 공간 이론들과 어떤 지점에서 만나고 연결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표 1] 공간 계획 요소와 공간디자인 키워드의 대응




4. 키워드와 이론의 만남

경험에서 출발한 키워드

앞에서 살펴본 여덟 가지 키워드는 다양한 동네 커뮤니티 공간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정리된 개념들이다. 이 키워드들은 특정 이론에서 출발해 공간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실제 공간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공간의 구성 방식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공간의 구성 방식은 기존의 건축과 도시 이론들과도 여러 지점에서 만난다. 사람들의 경험과 장소의 의미를 설명해 온 장소 이론, 일상적 만남과 사회적 관계를 설명하는 사회학적 논의들은 동네 커뮤니티 공간이 어떻게 형성되고 작동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이 책의 키워드들은 경험적 관찰에서 출발했지만 기존의 공간 이론들과 만나면서 동네 커뮤니티 공간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읽기 틀을 형성한다.


동네 커뮤니티 공간은 크게 세 가지 과정 속에서 형성된다. 첫 번째는 사람들이 공간으로 들어오는 과정이고, 두 번째는 그 공간 안에서 관계가 형성되는 과정이며, 마지막은 그 공간이 지역의 장소로 자리 잡는 과정이다.


공간의 문턱과 제3의 장소

먼저 ‘다가가기’와 ‘끌어들이기’, ‘열어주기’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의 문턱을 낮추는 공간적 장치와 관련된다. 동네 커뮤니티 공간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들이 부담 없이 들어올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러한 조건은 레이 올든버그(Ray Oldenburg)가 말한 ‘제3의 장소(Third Place)’* 논의에서도 강조된다. 제3의 장소는 집과 직장 사이에서 사람들이 편안하게 머물며 관계를 형성하는 일상의 공간을 의미한다. 이러한 공간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접근성과 개방성이 중요한 조건이 된다. 이 책에서 말하는 ‘다가가기’와 ‘열어주기’는 이러한 조건을 공간의 언어로 풀어낸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관계를 만들어 내는 공간

한편 ‘대접하기’, ‘묶어주기’, ‘이어주기’는 공간이 사람들 사이의 관계 형성을 촉진하는 방식과 관련된다. 동네 커뮤니티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만남은 대부분 처음부터 긴밀한 공동체 관계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일상 속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느슨한 관계에서 출발해 점차 확장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관계 형성의 구조는 사회학자 마크 그라노베터(Mark Granovetter)가 설명한 ‘약한 연결의 힘(The Strength of Weak Ties)’**과도 맞닿아 있다. 또한 로버트 퍼트넘(Robert Putnam)이 말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만나고 신뢰를 쌓는 공간적 환경은 지역 사회의 관계망을 형성하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


장소가 되어 가는 공간

마지막으로 ‘겹쳐쓰기’, ‘되살리기’ 공간이 지역의 장소로 자리 잡는 과정과 관련된다. 다양한 사용과 경험이 축적되면서 공간은 단순한 시설을 넘어 기억과 경험이 쌓인 장소로 변화한다.


에드워드 렐프(Edward Relph)는 장소가 단순한 물리적 환경이 아니라 인간의 경험과 의미가 축적되는 환경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크리스티안 노르베르그-슐츠(Christian Norberg-Schulz)가 말한 ‘장소의 정신(genius loci)’*****역시 장소의 의미가 인간의 삶과 경험 속에서 형성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논의는 공간이 경험과 기억 속에서 장소로 형성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론들은 이 책의 키워드를 설명하기 위한 출발점이라기보다, 실제 공간에서 관찰된 특징들이 기존의 공간 이론들과 어떤 지점에서 만나는지를 보여주는 참고 틀이라 할 수 있다.

[표 2] 공간디자인 키워드와 이론의 연계

* Ray Oldenburg, The Great Good Place, New York: Marlowe & Company, 1989.

레이 올든버그, 『제3의 장소』, 김보영 옮김, 풀빛, 2019.

** Mark Granovetter, “The Strength of Weak Ties,”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Vol.78, No.6, 1973, pp.1360-1380.

*** Robert Putnam, Bowling Alone: The Collapse and Revival of American Community, New York: Simon & Schuster, 2000.

로버트 D. 퍼트넘, 『나 홀로 볼링』, 정승현 옮김, 페이퍼로드, 2016.

****Edward Relph, Place and Placelessness, London: Pion, 1976.

에드워드 렐프, 『장소와 장소상실』, 김덕현 외 2명 옮김, 논형, 2005.

***** Christian Norberg-Schulz, Genius Loci: Towards a Phenomenology of Architecture, New York: Rizzoli, 1980.




5. 여덟 가지 키워드의 구조

동네 커뮤니티 공간이 형성되는 과정

동네 커뮤니티 공간은 단순히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라기보다 시간이 흐르면서 관계와 기억이 축적되며 형성된다. 이 책에서 제시한 여덟 가지 공간디자인 키워드는 이러한 과정을 문턱(threshold)–관계(interaction)–장소(place)라는 세 단계의 구조로 이해할 수 있다.

먼저 문턱은 사람들이 공간에 들어오는 지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문턱은 단순한 물리적 경계를 의미하기보다 사람들이 공간에 접근하고 내부의 활동을 감지하며 자연스럽게 들어오게 되는 전이의 지점을 의미한다. 이러한 전이가 가능할 때 사람들은 부담 없이 공간에 다가올 수 있다.


공간에 들어온 이후에는 다양한 활동과 만남이 이루어지며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형성된다. 음식과 활동을 매개로 한 일상의 만남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알게 되고 이러한 만남이 반복되면서 관계가 이어진다.

이러한 경험이 시간 속에서 축적되면 공간은 단순한 이용 장소를 넘어 지역의 기억을 담는 장소로 변화한다. 다양한 활동이 겹쳐지고 지역의 이야기와 감성이 축적되면서 공간은 하나의 장소로 자리 잡는다.


사람들이 들어오는 공간

‘다가가기’, ‘끌어들이기’, ‘열어주기’사람들이 공간에 들어오도록 만드는 공간 구성과 관련된다. 접근성과 개방성, 그리고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공간으로 이끄는 장치는 커뮤니티 공간이 작동하기 위한 출발점이 된다. 이 단계에서는 공간의 문턱을 낮추고 누구나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관계가 형성되는 공간

‘대접하기’, ‘묶어주기’, ‘이어주기’공간 안에서 관계가 형성되는 과정과 관련된다. 사람들은 음식을 함께 나누거나 활동을 함께 하면서 서로를 알게 되고 이러한 만남이 반복되면서 관계가 점차 이어진다. 이 단계에서 공간은 단순히 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넘어 사람들 사이의 연결을 만들어 내는 사회적 환경으로 작동한다.


장소가 되어 가는 공간

한편 ‘겹쳐쓰기’와 ‘되살리기’공간이 지역의 일상 속에서 하나의 장소로 자리 잡는 과정과 관련된다. 다양한 활동이 겹쳐지며 공간의 사용이 확장되고 시간 속에서 경험과 기억이 축적되면서 공간은 단순한 시설이 아니라 지역의 의미 있는 장소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이처럼 여덟 가지 키워드는 사람들이 공간에 들어오고 관계를 형성하며 장소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여덟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실제 커뮤니티 공간 사례들을 살펴보며 각각의 공간 구성 방식이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그림 2] 동네 커뮤니티 공간 키워드의 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