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환경이 만드는 다가가기
에후에이살롱이 상점가라는 일상의 동선 위에서 다가가기를 실현했다면, B's 교젠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같은 질문에 답한다. 이곳은 단순히 접근하기 쉬운 공간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이 같은 장소를 공유하는 구조 자체를 통해 다가가기를 실현한다.
B’s 교젠지는 2016년 완공된 시설로, 사회복지법인 불자원(Buiss-EN)의 본부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법인의 모태는 사찰 ‘교젠지(行善寺)’이며, 불교 재단이 설립 주체라는 점에서 이 공간은 종교적 배경과 복지적 실천을 함께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배경만으로 이곳을 종교 시설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교젠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불교적 개념 중 하나는 『법화경』에 등장하는 삼초이목(三草二木), 즉 세 종류의 풀과 두 종류의 나무라는 개념이다. 크고 작은 풀과 나무가 같은 비를 맞고 자라듯, 서로 다른 조건과 배경을 지닌 존재들 또한 동등하게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비유다. 교젠지는 이 사상을 교리로 설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장애의 유무나 건강 상태, 어른과 아이, 돌보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가 같은 장소를 공유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삼았다. 이 사상은 공간으로 확장되면서 B's 교젠지는 특정 집단을 위한 복지시설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이 구분 없이 겹쳐지는 일상의 공간으로 완성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등장하는 키워드가 바로 ‘고차마제(ごちゃまぜ)’라 불리는 개념이다. 고차마제는 일본어로 '뒤섞임'을 뜻하는 말이지만, 이곳에서는 단순히 사람을 섞거나 역할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차이가 존재하되 그것이 공간을 사용하는 기준이 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운영 주체는 이를 “누구도 분리되지 않고, 누구도 중심에서 밀려나지 않는 상태”라고 설명한다. 고차마제는 추상적인 이념에 머무르지 않는다. 공간의 배치와 프로그램 구성, 서로 다른 이용자들의 동선이 겹치는 구조, 그리고 안과 밖에서 시선이 교차하는 장면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된다. B’s 교젠지는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없애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다. 차이가 배제의 이유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B’s 교젠지는 일본 이시카와현 하쿠산시의 주거지 한가운데에 위치한다. 농지 사이로 새 주택지가 패치워크처럼 펼쳐진, 전형적인 지방 도시의 풍경 속에 자리한 곳이다. 이곳은 단일한 복지시설이라기보다, 아이와 노인, 장애 유무, 일하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이 각자의 일상을 유지한 채 오가는 이용공간이자 생활의 공간에 가깝다.
B’s 교젠지의 중심에는 큰 마당이 자리하고 있다. 이 마당을 둘러싸고 보육원과 아동지원센터, 고령자 데이서비스, 장애인을 위한 취업지원 공간, 카페와 키친 스튜디오, 클리닉과 사무공간이 배치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어느 부분이 복지시설이고 어느 부분이 상업공간인지, 누가 직원이고 누가 이용자인지를 한눈에 구분하기 어렵다. 처음 방문하면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모호함이야말로 이 공간이 의도한 상태다.
마당에 서면 이곳의 거의 모든 공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 커피를 마시며 쉬는 어른들, 일을 준비하는 장애인 직원들의 모습이 하나의 시선 안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중요한 점은 이 장면들이 ‘보여도 괜찮은 일상’으로 계획되었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실내 공간은 바닥까지 내려오는 투명한 유리문을 통해 마당과 맞닿아 있고, 날씨가 좋은 날에는 폴딩도어나 슬라이딩 도어를 열어 안과 밖의 경계를 지운다.
이러한 투명성은 단순히 개방감을 주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를 인식하고, 존재를 확인하는 최소한의 조건’에 가깝다. 벽으로 닫힌 공간에서는 이런 관계가 쉽게 시작되기 어렵지만, 일상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공간에서는 짧은 시선 교차나 한마디 인사가 관계의 출발점이 된다.
마당 주변과 2층 테라스에는 보행 데크가 설치되어 있어, 내부에 머무는 사람과 지나가는 사람의 시선 높이가 자연스럽게 맞춰진다. 아이를 지켜보는 부모는 앉아서 머물 수 있고, 아이와 놀아주는 아버지는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파파카페’에 다다른다.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어도, 공간 자체가 사람들의 행동을 유도한다.
이곳에서의 ‘다가가기’는 누군가를 적극적으로 초대하는 행위가 아니다. ‘보이고, 알 수 있고, 안심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일’에 가깝다. 누구나 안을 들여다볼 수 있고, 들어가도 괜찮다는 확신을 갖게 되는 것. B’s 교젠지는 공유된 중심 공간인 마당을 통해 그러한 상태를 만들어 낸다. 접근성과 투명성은 단차를 없애 경사로를 만들거나 출입구를 유리로 바꾸는 것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 자연스럽게 시선이 만나는 조건을 만드는 문제다. 이곳의 마당은 그 사실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낸다.
결국 B’s 교젠지의 마당은 사람들을 섞는 공간이 아니라, 섞이지 않아도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상태를 지속함으로써 ‘다가가기’를 공간환경의 문제로 다시 정의한다.
이 세 사례에서 '다가가기'는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프로그램으로 끌어들이는 문제가 아니라, 들어가도 괜찮겠다는 느낌이 저절로 드는 공간을 만드는 일로 다루어진다. 세 사례 모두 접근하기 쉬운 위치와 안과 밖이 서로 보이는 투명성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각각의 방식은 다르다.
깃사란드리는 두 골목이 만나는 코너의 1층에서 세탁과 커피라는 사적인 일상을 거리로 드러낸다. 안에서 벌어지는 장면이 밖에서 자연스럽게 보이고, 지나가다 눈인사를 나눌 수 있는 공간. 1층이라는 위치가 문턱을 물리적으로 낮추고, 투명한 유리가 안과 밖을 연결한다. 다가가기는 위치와 투명성이 함께 작동할 때 완성된다.
에후에이살롱은 고령자의 일상 동선인 상점가 한가운데에 자리 잡았다. 장을 보러 가다가, 산책하다가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멈출 수 있는 곳. 매일 지나치다 보면 유리문 너머로 안의 장면이 눈에 익고, 아는 얼굴이 보이면 자연스럽게 문을 열게 된다. 여기서 다가가기는 일상의 동선이 만들어내는 '보임'과 '익숙함'을 통해 이루어진다.
B's 교젠지는 마당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삶이 같은 풍경을 이루도록 공간을 배치한다. 아이, 노인, 장애인, 직원, 이용자가 각자의 일상을 유지하면서도 하나의 마당을 공유한다. 머물지 않아도 이미 관계 안에 들어와 있는 상태, 다가가기는 공간구성을 통해 완성된다.
세 공간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하나다. 다가가기는 용기의 문제도, 프로그램의 문제도 아니다. 일상의 동선 위에 놓이고,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자연스럽게 보이는 공간환경, 그것이 만들어질 때 사람들은 어느새 그 안으로 들어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