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동선이 만드는 다가가기
도쿄의 깃사란드리가 다양한 사람들이 오가는 일상의 공간에서 접근성과 투명성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었다면, 에후에이(FA)살롱은 같은 질문을 고령자의 일상 동선 속에서 던지고 있다. 고령자를 위한 커뮤니티 공간이라고 하면 보통 조용한 주택가 안쪽이나 복지시설이 모여 있는 공공건물 혹은 아파트단지 내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장소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위치와 다를 때가 많다.
에후에이살롱은 오사카 아베노구(阿部野區)의 왕자상점가(王子商店街)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상점가에는 장을 보러 가는 사람, 산책을 하는 사람, 잠시 비를 피하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간다. 에후에이살롱은 바로 이러한 일상의 흐름 위에 놓인 고령자 살롱이다. 이 살롱을 운영하는 주체가 만들고자 했던 것은 사람들이 일부러 마음먹고 찾아와야 하는 시설이 아니었다. 주거지 안쪽은 접근성이 떨어지고, 대로변은 고령자에게 위험하여 부담스럽다. 상점가는 그 사이에 놓인 장소다. 자동차의 위협 없이 걸을 수 있고, 아케이드 아래에서 안정적인 보행 환경이 유지된다. 무엇보다, 지나가다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멈출 이유가 있는 장소다.
상점가에 면한 에후에이살롱의 입구는 목재 프레임과 유리문으로 구성되어 있어, 상점가를 지나다가도 내부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처음에는 이 유리문에 대해 이용자들이 다소 부담을 느끼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설계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친근한 인상을 주고, 망설임 없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의도적인 선택이었다.
이 공간을 설계한 로쿠하라 마고토(六波羅真) 건축가는 고령자들이 폐쇄적인 공간에는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래서 에후에이살롱의 입구는 지나다가 내부를 자연스럽게 볼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누군가를 일부러 초대하지 않아도, 지나다가 서로를 알아보고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일종의 ‘초대하는 공간(inviting space)’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초대하는 공간이란 누구나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도록 열려 있는 환경을 뜻한다. 아는 사람이 안에 있는 모습을 보고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는 상태, 그 자체가 공간의 역할이라는 판단이었다. 이러한 설계는 고령자 커뮤니티 공간에서 특히 중요하다. 문이 닫혀 있고 안이 보이지 않는 공간은 물리적으로 접근 가능하더라도 심리적으로는 쉽게 다가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에후에이살롱은 닫힌 공간에 머물러 있던 고령자의 일상을 상점가라는 열린 동선 위로 다시 끌어내는 방식을 택했다. 상점가를 걷다 보면, 안에서 누군가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누가 있는지, 어떤 분위기인지 알 수 있다. 이러한 ‘드러남(Visibility)’, 다시 말해 안이 읽히는 상태는 고령자에게 특히 중요하다. 닫힌 문 앞에서 망설이기보다, 이미 알고 있는 장소처럼 느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입구 옆에는 에후에이살롱의 활동을 설명하는 그림 간판이 걸려 있다. 글을 읽지 않아도 어떤 공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자전거를 세워둘 수 있는 작은 포치(porch) 공간도 마련되어 있어, 잠시 멈췄다가 들어가기 부담스럽지 않다. 이러한 작은 장치들이 모여, 이곳은 ‘복지시설’이 아니라, 일상의 동선 속에 자연스럽게 놓인 생활공간으로 인식된다.
에후에이살롱의 또 다른 특징은 안과 밖이 서로를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안에 있는 사람은 밖을 지나가는 이들을 보고, 밖에 있는 사람은 안의 분위기를 살핀다. 눈인사가 오가고, 아는 얼굴이 보이면 자연스럽게 문을 연다. 계획된 프로그램이 없어도, 이 시선의 교차만으로 관계가 시작된다.
이곳에서 ‘다가가기’란,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하는 태도가 아니다. 지나가도 되고, 들여다봐도 되고, 들어와도 괜찮은 상태. 상점가라는 위치, 1층이라는 조건, 그리고 투명한 입구는 모두 그 상태를 만들기 위한 환경이다.
에후에이살롱은 고령자를 위한 공간이지만, 고령자만의 공간은 아니다. 상점가를 지나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그래서 오히려 고령자들이 고립되지 않는다. 이 살롱이 오래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명확하다. 사람들의 일상 동선 위에 있으면서 그 일상을 방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가가기는 설득이 아니라 환경의 문제다. 에후에이살롱은 그 사실을 상점가 한복판에서 조용히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