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자가게가 만든 동네 커뮤니티
앞선 사례들이 취향, 일상 활동, 혼자의 시간을 통해 사람들을 공간 안으로 끌어들였다면, 일본 지바현 우라야스에 위치한 긴모크세이 우라야스는 이 질문에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답한다. 이곳은 서비스제공형 고령자주택(サービス付き高齢者向け住宅(サ高住))이라는 명확한 복지시설이지만, 공간의 첫인상은 ‘노인시설’이 아니라 아이들을 부르는 다가시야(駄菓子屋), 즉 막과자가게에서 시작된다.
긴모크세이 우라야스는 ㈜실버우드가 운영하는 민간 고령자주택으로, 주로 자립 가능하거나 경미한 개호가 필요한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다. 1층에는 입주자뿐 아니라 동네 주민도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모두의 키친’과 식당이 마련되어 있으며, 이 공용공간을 중심으로 동네와의 교류가 이루어진다. 특히 주목할 만한 장치는 출입구 옆에 배치된 다가시야로, 아이들이 과자를 사러 들르고 머물며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일본의 전통적인 동네 과자·놀이 가게다.
이 다가시야에는 10~30엔대의 저렴한 옛날 과자 200여 종이 진열되어 있다. 인근 초등학교 세 곳에서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하루 평균 100명가량 이곳을 찾고, 주말에는 아이들을 포함해 동네 주민 200~300명이 이용할 정도로 활기가 넘친다. 편의점에서도 비슷한 과자를 살 수 있지만, 이곳에서는 소비세를 받지 않는다는 점도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몰리는 이유 중 하나다. 다가시야의 월 매출이 약 400만 원에 이른다는 점은, 이 장치가 단순한 상징을 넘어 실제로 작동하는 기획임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이 다가시야가 고령자시설에 딸린 작은 가게가 아니라, 공간 전체의 성격을 바꾸는 진입 장치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과자를 사기 위해 이곳에 들어오고, 그러다 신발을 벗고 모두의 키친으로 들어와 쉬거나 놀기도 한다. 그 안에서 고령자 입주민과 아이들의 시선이 겹치고, 인사와 짧은 대화가 오간다. 고령자시설이 동네로 ‘열리는’ 순간이, 돌봄 프로그램이 아니라 과자라는 아주 일상적인 계기를 통해 만들어진다.
긴모크세이 우라야스는 다가시야 외에도 식당, 그리고 ‘마마댄스’와 같은 활동을 포함해 세 가지 교류 장치를 운영하며 동네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례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고령자를 위한 시설이 스스로를 설명하거나 홍보하지 않고도 아이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동네의 일상 속으로 들어간다는 점이다.
이 사례는 ‘끌어들이기’가 반드시 이용 대상자에게 직접 작동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긴모크세이에서 끌어들이기의 출발점은 고령자가 아니라 아이들이며, 그 결과로 고령자시설의 공용공간은 고립된 복지 공간이 아니라 동네의 커뮤니티 거점으로 자리잡았다. 원래 커뮤니티 공간으로 설계되지 않았던 곳이, 다가시야라는 작은 장치 하나를 통해 동네 사람들이 드나드는 공간이 된 것이다. 여기서 다가시야는 단순한 놀이 요소가 아니라, 세대 간 경계를 풀어내는 공간적 장치다.
‘끌어들이기’는 사람을 모으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들이 공간에 머물 이유를 갖게 만드는 기획의 문제다. 많은 커뮤니티 공간이 프로그램과 운영 방식부터 고민하지만, 끌어들이기는 그 이전에 공간이 사람의 일상과 어떤 접점을 만들고 있는지를 묻는다. 앞선 ‘다가가기’가 공간에 들어오기 전의 문턱을 다뤘다면, 끌어들이기는 그 문턱을 넘은 이후의 시간에 대한 질문이다.
요코하마의 코난다이 타운카페에서는 수공예라는 취향의 계기가 사람들을 공간 안으로 이끈다. 무엇을 사지 않아도 괜찮고,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작은 전시와 판매대는 호기심이라는 가벼운 이유로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그 멈춤은 자연스럽게 체류로 이어진다.
도쿄의 깃사란드리는 세탁이라는 반복되는 일상의 활동을 통해 같은 질문에 답한다. 세탁을 기다리는 시간은 카페라는 형식과 결합되며, 세탁은 목적이 아니라 체류를 가능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서울 해방촌의 론드리프로젝트는 세탁을 통해 또 다른 방향을 보여준다. 이곳에서 끌어들이기는 관계 형성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안전하게 유지하는 데 가깝다. 이 사례는 끌어들이기가 모두를 위한 공간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어떤 사람에게 이 공간이 필요한지를 분명히 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치바의 긴모크세이는 끌어들이기의 출발점이 이용 대상자가 아니어도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이들의 일상을 통해 공간 전체가 동네로 열린다.
커뮤니티 공간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곁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낯선 공간 앞에서 사람들은 망설인다. 뭔가를 해야 할 것 같고, 아는 사람도 없고, 괜히 들어갔다가 뻘쭘할 것 같다. 끌어들이기는 바로 이 망설임을 없애고, 사람들이 그 공간과 자연스럽게 친해지도록 만드는 기획이다.
미니 수공예 상점은 구경이라는 자연스러운 이유를 만들고, 세탁카페는 빨래라는 분명한 목적을 통해 머물게 한다. 과자가게는 아이들을 불러들이고, 그 아이들이 고령자시설의 문을 연다. 이 모든 장치의 공통점은 하나다. 억지로 참여하지 않아도, 각자의 이유로 자연스럽게 그 공간 안에 있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이미 하던 일을 하면서 머물 수도 있고, 전혀 몰랐던 취향을 발견하며 새로운 이유가 생기기도 한다.
끌어들이기란 그런 조건을 만드는 일이며, 어떤 일상과 어떤 계기를 가져오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형태로 설계될 수 있는 공간 기획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