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편] 끌어들이기 ③

혼자이되 고립되지 않는 공간

by 박혜선

동네 안 혼자의 시간으로 끌어들인 론드리카페: 론드리프로젝트, 서울 해방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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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드리 프로젝트의 낮의 풍경과 밤의 풍경


카페가 편치 않은 사람들

도쿄의 깃사란드리가 ‘세탁’이라는 일상의 활동을 ‘머무름의 계기’로 확장했다면, 서울 해방촌의 론드리프로젝트는 ‘세탁’을 1인 가구의 일상에 맞게 재해석한 사례다. 두 공간 모두 세탁과 카페를 결합하지만, 깃사란드리가 다양한 사람들이 뒤섞이는 동네의 가사 공간을 지향했다면, 론드리프로젝트는 혼자 사는 도시 거주자의 생활 리듬과 심리에 집중했다.


해방촌 론드리프로젝트는 경사가 심한 언덕길을 따라 오래된 건물들이 이어진 골목에 자리한다. 이곳은 카페가 흔한 도시환경 속에서도, 모든 사람에게 카페가 편안한 공간은 아니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카페는 대개 누군가와 함께 가는 곳이고, 혼자 앉아 오래 머물다 보면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 1인 가구가 늘어나는 도시에서, 혼자이지만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 공간은 원래 ‘남산 기원’이라 불리던 바둑장이 있던 자리였다. 담배 연기가 가득했고, 니코틴에 의해 벽면은 누렇게 오염된 상태였다. 론드리프로젝트를 준비하며 이 공간은 전면 리모델링을 거쳤고, 당시 유행하던 인더스트리얼한 분위기를 고려하기도 했지만, 결국 누렇게 변색된 흔적을 덮기 위해 여러 차례 흰색 페인트를 덧칠하는 선택을 했다. 그렇게 완성된 밝고 정돈된 공간은 오래된 건물들이 이어진 가파른 언덕길에서 유독 눈에 띄었다. 이곳이 남산 터널을 통해 강남으로 이어지는 동선 위에 놓여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외관에 대한 작은 호기심이 발걸음을 멈추게 했고, 그 호기심은 방문과 질문, 그리고 대화로 이어졌다.


빨래를 돌려놓고 보내는 시간

최소한의 가구와 가전으로 살아가는 1인 가구에게 세탁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빨래를 돌려놓고 시간을 보내야 하는 ‘애매한 공백’이 반복되는 일상이다. 론드리프로젝트는 바로 이 공백을 흡수하는 ‘거실 같은 공간’을 목표로 한다. 공간 구성에서도 이러한 태도는 분명하다. 전면 유리로 계획된 파사드는 외부에서 세탁 공간이 바로 인지되도록 하고, 밝은 조명과 정돈된 선반을 통해 세탁기가 숨겨야 할 설비가 아니라 공간의 얼굴이 되도록 만든다. 세탁기를 전면에 드러내되, 지저분함이나 피로감을 느끼지 않도록 한 점은 세탁을 ‘생활의 부담’이 아니라 ‘정리된 일상’으로 인식하게 하는 장치다.


론드리프로젝트의 ‘끌어들이기’는 관계 형성보다도 심리적 안정에 더 가깝게 작동한다. 이용자들은 이곳에서 반드시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된다. 빨래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밖을 바라보고,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어도 ‘집안일을 하는 중’처럼 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무인 빨래방이 효율적이지만 낯선 공간이라면, 론드리프로젝트는 집안일을 외부에서 하지만 여전히 ‘나의 시간’으로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고립되지 않은 혼자

이 공간은 단순한 코인 론드리도 아니고, 빨래를 할 수 있는 카페도 아니다. 어떤 이에게는 생각을 정리하는 장소이고, 어떤 이에게는 동네 지인을 우연히 마주치는 공간이며, 또 어떤 이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합법적인 머무름의 장소다. 세탁을 하지 않아도 커피 향과 기계 소음만으로도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는 이용자의 반응은, 이 공간이 기능을 넘어 경험을 설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론드리프로젝트는 인근에 크린토피아와 무인 빨래방이 들어서면서 한동안 이용객 수가 급격히 줄어든 적이 있다. 그러나 한 달쯤 지난 뒤, 일부 이용자들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무인 빨래방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세탁하는지, 공간이 어떻게 관리되는지 알 수 없어 마치 집안일을 바깥으로 옮겨 한 것 같았다는 이유에서였다. 대표 이현덕은 이 경험을 통해 이 공간이 모든 사람을 위한 장소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론드리프로젝트를 다시 찾은 사람들은 단순히 빨래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집안일을 해결하면서도 동네 안의 일원으로 존재하고 싶었던 이들이었다. 혼자이지만 고립되지 않은 상태, 그것이 이 공간이 제공하는 것이었다.


깃사란드리가 세탁을 매개로 사람들 사이의 교류와 활동이 겹쳐지는 구조를 만들었다면, 론드리프로젝트는 세탁을 통해 혼자이되 동네 안에 머무를 수 있게 한다. 이 차이는 ‘끌어들이기’가 단일한 해법이 아니라, 동네와 생활 조건에 따라 달리 설계될 수 있는 기획의 문제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론드리프로젝트를 커뮤니티 공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적극적인 만남이나 관계 형성을 전제로 한다면, 이곳은 그 기준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혼자 사는 사람이 동네 안에서 고립되지 않고 존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연결을 만든다는 점에서, 이 공간은 분명히 커뮤니티적 기능을 한다. 커뮤니티 공간이 반드시 '만남'을 전제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고립을 막는 최소한의 연결 또한 동네 커뮤니티의 중요한 기능이 될 수 있다는 것. 끌어들이기는 모이게 하는 기술이 아니라, 머무는 방식을 선택하게 하는 설계다.


(해방촌에서 운영되던 론드리프로젝트는 현재 해방촌을 떠나 다른 위치에서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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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드리 프로젝트의 외관, 평면도, 내부(왼쪽이 세탁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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