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편] 끌어들이기 ②

일상의 활동이 머물 이유가 될 때

by 박혜선

일상으로 끌어들인 세탁카페: 깃사란드리,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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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태우는 자전거가 줄지어 있는 외부, 업무용 세탁기와 건조기, 다양한 가사도구를 갖춘 ‘마을의 가사실’


세탁, 목적 아닌 계기

요코하마의 코난다이 타운카페가 ‘수공예’라는 취향의 계기를 통해 사람들을 공간 안으로 끌어들였다면, 도쿄의 깃사란드리는 훨씬 더 일상적인 행위인 ‘세탁’을 통해 같은 질문을 던진다. 앞서 다가가기 편에서 깃사란드리는 그라운드 레벨과 투명한 경계를 통해 사람들이 망설임 없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으로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 공간이 진정 흥미로운 지점은 그 이후에 있다. 깃사란드리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세탁’이라는 평범한 일상을 통해 사람들이 왜 이곳에 머무르게 되는지를 설명한다.


깃사란드리에서 ‘세탁’은 이미 반복되고 있던 생활의 일부다. 사람들은 세탁기를 돌리기 위해 이 공간에 들어오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기다리게 된다. 깃사란드리는 이 기다림의 시간을 카페라는 형식과 결합해, 분명한 목적을 지닌 행위를 체류의 이유로 바꾼다.


마을의 가사실

이러한 성격은 공간 구성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깃사란드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카페 좌석이 아니라 세탁기가 놓인 공간이다. 상업용 세탁기와 건조기를 중심으로 재봉틀과 다리미, 바느질 도구와 뜨개질 도구까지 갖춘 이곳은 ‘마을의 가사실’이라 불린다. 대부분의 공간이 열려 있는 가운데, 이 세탁 공간만은 미닫이문으로 느슨하게 구획되어 있으며, 한 번에 8~10명이 함께 사용할 수 있다. 빨래를 맡기는 장소이자 작업실이고,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들이 자연스럽게 머무르며 교류하는 공간이며, 방과 후 아이들의 놀이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세탁 공간을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이 겹쳐지는 것도 이곳의 특징이다. 회의나 생일 파티가 열리고, 모자 만들기나 상복 제작, 색종이 공작 워크숍 같은 소규모 수업이 이루어진다. 지역 이주 설명회나 현대미술 전시처럼 전혀 다른 성격의 프로그램도 이 공간을 매개로 펼쳐진다. 세탁이라는 분명한 생활 행위가 중심에 놓이되, 그 주변에서 서로 다른 활동들이 자연스럽게 중첩된다.


동전 없는 세탁기

깃사란드리는 코펜하겐의 ‘란드리 카페(Laundry Cafe)’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스스로를 단순한 ‘세탁 카페’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이곳의 세탁기와 건조기에는 동전을 넣는 투입구가 없다. 사용자는 반드시 카운터를 통해 직원의 안내를 받아야 하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루어진다. 동전 투입구 대신 카운터를 통하게 한 것은 단순한 운영 방식의 차이가 아니다. 세탁이라는 일상적인 행위를 동네 사람과 카페 직원 사이의 대화로 이어지게 만드는 의도적인 장치다.


운영자 다나카는 이 공간이 ‘사설 공민관’으로 기능하길 바랐다. 세탁기와 커피가 교류의 계기가 되어,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고 머무는 장소가 되기를 기대한 것이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빨래나 커피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들이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로 작동하는 방식이었다. 커피 대신 오코노미야키가 놓여도 상관없다는 그녀의 말은, 매개가 무엇이든 사람을 연결하는 것이 이 공간의 본질임을 보여준다.


깃사란드리는 공공의 지원 없이 민간이 기획하고 운영하는 공간이다. 수익 구조를 보면 세탁실 운영은 전체의 일부에 불과하고, 카페와 공간 대관이 운영을 지탱한다. 그럼에도 이 공간의 상징은 분명히 세탁기다. 거리에서 지나가며 가장 먼저 보이는 것도,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하는 것도 세탁기다. 아이와 함께 올 수 있는 이유이자, 동네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이유이며, 잠시 머물 수 있는 명분이다.


이곳에서 ‘세탁’은 사람을 끌어들이고 머물게 하며 관계를 시작하게 만드는 가장 일상적인 매개다. 카페 안에 집의 일상을 들여놓듯, 서로 다른 일상이 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겹쳐지도록 조건을 만드는 것. 일상의 활동이 이 공간을 찾는 계기가 되고, 그 안에서 동네 사람들과의 관계가 시작된다. 그것이 깃사란드리가 보여주는 '끌어들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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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들어서면 보이는 마을의 가사실, 엄마와 아이들의 모임이 이루어지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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