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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돛이 없는 돛단배 May 31. 2024

선택

국민학교 시절, 

우리 반에는 매달 한 번씩 짝꿍을 새롭게 정하는 날이 있었다. 

담임선생님은 성별을 번갈아 가며, 

한 달은 여학생들이 남학생 짝꿍을 고르고, 다음 달은 남학생들이 여학생 짝꿍을 고르는 방식을 취하셨다. 

이 행사는 나에게 언제나 불안과 긴장 그리고 불쾌감을 안겨주었다.

여학생들이 남학생 짝꿍을 고르는 날이면, 

모든 남학생들은 교실 뒤쪽으로 나가 서 있는다. 

여학생들은 하나둘씩 자신이 원하는 남학생의 옷자락을 살며시 잡고 원하는 자리로 향했다. 

나는 그 순간을 매번 두려움과 함께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들이 한 명씩 여학생에 선택되어 자리에 가서 앉을 때마다 교실 뒤쪽에 남아 있는 남학생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었고, 나는 거의 항상 마지막까지 남겨지곤 했다.

마지막 순서의 여학생이 불가피하게 나를 선택할 때면, 

나는 그녀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실망감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표정에는 자신이 원하는 짝과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이 고스란히 드러났고,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치욕스럽고 부끄러움을 느꼈다. 

더욱이 나는 그녀에게 잘못한 게 없는데도 미안함까지 느껴야 했다. 내가 선택받은 것이 아니라 그저 남겨진 결과로 함께 앉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학생들이 여학생 짝꿍을 고르는 날이 오면, 

나는 일부러 끝까지 선택하지 않고 있다가 마지막에 남은 여학생들 중에서 그나마 조금 만만한 친구를 선택했다. 그런 후 자리에 가서 앉아 종이 쪽지에 '미안하다'라고 써서 그녀에게 건넸던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선택의 부담감과 상대방에게 미안함을 동시에 느꼈다.

이 경험은 나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매달 반복되는 이러한 상황은 자존감을 크게 떨어뜨렸고, 

나 자신이 가치 없는 존재인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교실 뒤쪽에서 혼자 남겨져 있는 시간은 마치 세상이 나를 외면하는 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

나는 짝꿍을 정하는 방식을 도입한 담임선생님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커져갔다. 

매달 겪는 이 치욕적인 경험은 선생님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고, 그분의 방식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후에도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늘 불안감을 느꼈고, 

누군가가 나를 선택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보다 오히려 거절당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더 크게 자리 잡았다. 

그때의 경험은 단순히 한 번의 상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내 마음속 깊이 남아 나를 괴롭혔다.

어린 시절의 작은 경험 하나가 나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지금도 가끔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면 마음 한구석이 아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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