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가 끝나면 다음 과목 시작 때까지 보통 2주 정도 여유가 생긴다. 그 틈에 인근 나라로 여행을 다닌다. 이곳에 와보니, 국경을 넘는다는 게 큰일이 아닐 수도 있구나 싶다. 오슬로 사람들은 주말에 인근 스웨덴 마을로 장을 보러 간다. 당류와 주류에 높게 매겨지는 세율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금전적 혜택을 보기 위해서다. 섬 같은 반도국에서 온 내게 은근한 충격이다. 유럽과 중동을 한 권역으로 묶었을 때, 그 사이를 오고 가는 항공료는 2만 원에서부터 40만 원 대까지 다양하다. 언제 발권을 하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지만 대체로 저렴하다. 그 덕에 이곳저곳을 여행 다니고 있다. 사회 선생인 내게 여행은 특히나 더 세상을 배우는 학교다. 시야를 터주고 호기심을 계속 품게 만들어준다. 다양한 장소에서 저마다의 무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나며 힘을 얻는다.
며칠 전 북한학을 연구하는 러시아 교수의 특강을 들었다. 최근 북한을 방문해 찍은 거리 풍경과 사람들을 보여주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정치 이념적 프로파간다 대신 경제 성장을 목표로 하는 표어들이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단다. 가을 녘 들판의 농부와 소달구지를 담은 사진을 보는데 뭔가 울컥한다. 내 기억 속 할아버지의 모습과 너무 닮으셨다. 매일 새벽녘 논에 나가 벼를 살피고 아침 먹을 때쯤 들어오셨던 내 할아버지 같으신 분이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계신다. 그를 만나 이야기 나누고 싶다. 같은 말을 쓰기에 통하지 않을까? 라오스 산간 마을의 할머니, 아르메니아 주상절리 앞에서 만난 어르신과 손짓 발짓으로 하던 소통과는 차원이 다르겠지? 아제르바이잔도, 스리랑카도, 이란도 갔다 왔는데… 한국은 무비자나 도착비자로 190여 개의 나라를 갈 수 있다는데... 유일하게 못 가는 곳이 북한이라니... 생각지도 않던 게 갑자기 간절해진다. 지극한 현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만약 북한을 여행하게 된다면, 우리는 어느 정도의 소통하게 될까? 지난한 세월 동안 우리들의 모국어는 어느 정도로 뒤틀어졌을까? 그럼에도, 그 뉘앙스와 미묘한 감정의 결은, 대번에 귀신같이 알아채겠지? 한 번이라도 좋으니, 꼭 그곳을 여행하고 싶다. 여행의 맛을 느끼게 해 준, 내 이십 대 초반 전라도 배낭여행 때처럼 말이다. 보성과 장흥의 시골에서 만난 할머니들 댁에서 하룻밤 잠을 청한 일, 송광사와 도갑사의 손님방에 머물며 새벽 예불에 참석한 일, 강진에서 만난 기왓장 보살님 댁에서 머무른 일 등등… 남도의 길 위에서 많은 분들을 만났듯이, 북녘의 길 위에서도 많은 분들을 만나고 싶다. 경의선과 동해선이 연결되고, 부산에서 베를린까지 자유롭게 유라시아를 횡단하는 그날이 어서 오길. 서울역 국제선 창구에서 표를 끊어 베를린까지 간 손기정 선수처럼, 나도 국제선 기차표로 유라시아를 가로지르고 싶다.
북녘과 유라시아로 수학여행을 가면 어떨까? 그것은 아마도 꽤 의미 있는 사회 수업이 되지 않을까? 길 위에서 만나는 풍경과 사람들은 그 자체로 훌륭한 사회 교과서가 된다. 언어가 통하지 않더라도, 미소와 호의만으로도 소통이 된다는 것을 체감하는 순간, 울지 않을 수가 없다. 경계를 넘나드는 순간, 우리의 시야는 확장된다. 생김새와 말, 글, 음식과 문화, 일상의 터전 등 그 모든 것들이 다르게 펼쳐진다는 것을 몸소 확인할 수 있다. 동시에 낯선 익숙함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황홀한 순간이다. 이란 에스파한에서 만난 가족분들의 따뜻한 환대, 아르메니아의 오래된 수도원, 게그하드로 가는 길을 묻다가 알게 된 젊은 포토그래퍼 릴리트의 식사 초대,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에서 만난 카우치 서핑 호스트 라샤다, 이들의 이야기가 나에겐 사회 교과서이고, 그들은 내 사회 선생이었다. 언젠가 북녘을 교과서 삼아, 그곳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맛난 것 나누어 먹으며, 귀 기울여 듣고 싶다. 그곳에 우리들의 사회 선생님들이 살고 있다. 차근차근 한걸음 씩이라도 내디뎠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