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 하러 나갔다가...(1)
그냥 걸었던 이야기
'띵동'하고 알람이 울렸다. 당근거래를 원하는 상대방으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나는 빠른 거래를 원했으므로 그날 당장에 거래를 하기로 했다. 저녁 8시. 불광역 8번 출구에서 보기로 했다.
거래는 매우 빠르게 이루어졌다. 나는 내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핸드백을 건넸고 그녀는 반으로 접힌 천 원짜리 몇 장을 내게 건넸다. 인사는 짧고 간단했으며 거래는 순식간에 끝났다.
'이제 뭐 한담?'
당근 한다고 밖에 나왔는데 봄바람은 불고 그냥 들어가기가 아쉽다. 그래서 나는 반대편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며칠 전에 봐두었던 새롭게 알게 된 산책 루트가 있어서 그곳을 걸으면 좋을 것 같았다. 집까지 넉넉잡아 왕복 2시간 정도의 거리는 길지도 짧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구파발천은 사람도 많지 않아 한적하게 걷기에 좋았다.
올해 벚꽃은 다른 해보다 무척 이르게 피었다. 반가우면서도 약간은 무서운 그런 마음. 그래도 벚꽃은 예쁘다.
길에 늘어선 벚꽃나무들을 보면서 추웠던 겨울보다야 마음이 들떴지만 이제는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보고서도 주체하지 못할 설렘이 없다는 것이 느껴졌다. 내 마음에 어떤 세포가 또다시 사라졌구나 하는 그런 생각. 인생의 또 다른 한편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그런 생각이 언뜻 스쳤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잔잔하게 아름다움을 느낄 테니까
구파발천은 자전거가 금지된 산책길이라 사람들은 빠르게 다가오는 물체에 대한 어떠한 경계심도 필요없이 여유롭게 산책을 즐길 수 있었다. 차로 인한 소음도 거의 들리지 않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소음공해도 거의 없으니 다른 어떤 산책길보다도 평화롭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이따금 들리는 산책하는 사람들의 대화 내용에 나는 사람들이 지닌 소소한 귀여움을 언뜻언뜻 훔쳐보기도 하며 열심히 걸었다.
구파발역에 도착하면 구파발천의 메인 산책길은 거의 끝난다. 이곳에서 다시 돌아가야 왕복 2시간 정도의 산책길이 완성되는 것이다. 나는 마음 어떤 곳에서 오늘의 산책이 이대로 끝나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예쁜 길은 어디까지 다다를까 궁금했다. 저녁 9시가 됐을 즈음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네이버 지도를 폈다. 그리고 아주 무모한 검색어를 창에 입력했다.
파주 목동동
언니가 사는 집의 위치를 검색했다. 거의 일직선으로 이루어진 도보길은 6시간 30분이라고 적혀 있었다. 지금은 저녁 9시... 만일 제시간에 도착한다면 새벽 3시가 넘는 시간.
신기하게도 나는 그때 새벽 3시가 눈에 들어온 게 아니라 도보로 걷는 루트가 거의 일직선이라는 것에 눈이 더 갔더랬다. 그 일직선을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 먼저 들었고 만일 새벽 3시에 언니집에 도착하였다 하더라도 그 시간에 걸어서 도착한 동생의 기행 아닌 기행을 한참 꿈나라에 있었을 언니가 반길 것인가는 아주 잠시동안만 걱정했을 뿐 이내 마음에서 사라졌다. 대신 루트를 빠르게 탐색했는데 창릉천과 삼송역 원당역까지 이어지는 길은 어쨌든 오늘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걷다가 힘들면 원당역에서 3호선을 타고 집으로 곧장 오면 된다는 계산도 있었다. 빠르게 가면 12시 안에는 원당역에 도착할 테니 그때에도 지하철이 다니겠지? 안 다니면.... 아무 찜질방에나 들어가고....... 코로나로 인해 찜질방도 거의 사라졌는데 그 마저도 없다면..... 그냥 택시를 타도 된다. 언니의 놀란 얼굴은 원당역을 통과하면서 지하철을 타느냐 계속 걷느냐 그때의 결정에 따른 것이었으므로 잠시 미뤄두었다.
주위는 가로등의 개수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인기척도 점점 사라져 갔다. 나는 저녁 9시에 미지의 세계로 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