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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누우리 Jul 23. 2022

31년생 *우빈 여사님

도리도리, 곤지곤지, 죔죔

이쁜 우리 외할머니 이름, *우빈!


노환으로 아프시다는 소식을 듣고 더 늦기 전에 신랑과 함께 찾아뵈었다. 하루 종일 누워만 계시고 말을 걸면 겨우 눈을 떠서 답을 하신다고 들었다. 맘을 단단히 먹고 갔다. 그런데 내가 간 날엔 다행히 컨디션이 좋으셨다. 나를 보시고 내 손도 꼭 잡아주셨다. ‘사랑해요’라고 말도 해 주시고 노래도 불러 주셨다.


내가 외손녀인지는 몰라도 보자마자 밥 먹었냐고 물어보시고, 옆에 있는 요구르트랑 살구 자두도 우리 먹으라고 권하는 모습은 늘 보던 우리 외할머니 모습 그대로 셨다. 계속 도리도리, 곤지곤지, 죔죔을 하시고, (힘들어도 밥과) 반찬을 꼭 먹어야 똥이 안 막힌다고 말씀하신다.


손을 잡아 드렸더니 왜 손이 차갑냐고 하신다. (혹시나 외할머니가 나 때문에 코로나에 감염될까 봐) 방금 손을 닦아서 차갑다고 말씀드렸다. 손이 따듯해야 한다고 하신다. 외할머니의 따듯한 손에 내 손을 갖다 대어 보니 우리 엄마 손처럼 크셨다. 엄마 손은 외할머니를 닮았나 보다. 주름진 할머니 손은 여전히 하얗고 고왔다.


외할머니는 오른팔을 다쳐서 최근까지 깁스를 했다가 풀은 지  얼마 안 되셨다고 했다. 힘도 안 들어가고 뻣뻣해져서 계속 왼손으로 주무르고 계신다고 한다. 내가 주물러 드리려고 했더니 살이 다 빠져서 남이 주물러 주면 아프다고 하신다. 그래서 직접 주물러야 한다고 하셨다.  


얼마 전에 큰아들(큰외삼촌)이 국을 끓여가지고 온 것도 내게 말해 주셨다. 외할머니를 모시고 계시는 작은 외삼촌이 '그래도 큰아들은 잠깐 왔다가도 기억하네. 엄마, 배신감 느껴!' 삐진 척 말하시면서 가신다. 정신이 몽롱하셔도 외할머니에겐 큰외삼촌은 딸 셋만 낳다가 귀하게 얻은 아들인가 보다.


외할머니가 소리를 잘 못 들으신다고 들었는데 잘 들으시는 것 같았다. 외삼촌에게 얘기하니 그냥 혼자 말하시는 거라고 한다. 안 좋으실 때는 거의 일주일 내내 낮에는 계속 주무시다가 새벽 2시에 외삼촌을 깨워 밥을 차려 달라고 하고, 노래를 큰 소리로 불러서 잠을 제대로 못 주무셨다고 한다. 외삼촌은 치매 증상이 있는 외할머니를 붙잡고 엄마, 나 좀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사정하며 우신 일도 있었다고 했다. 지금은 덤덤하게 말씀하시는데 아프신 외할머니를 모시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을까!


6남매에 다섯째, 둘째 아들인 작은 외삼촌은 2009년부터 서울에 있는 가족과 떨어져 광양에서 일하고 계시고 있다. 외할머니가 노환이 드신 이후로는 작은 외삼촌이 광양으로 외할머니를 모시고 와서 함께 살고 있다. 근처에 계신 큰 이모가 가끔 반찬을 만들어 가지고 오신다고 한다. 반찬을 가져다주는 큰 이모와 함께 살고 있는 작은 외삼촌, 평일 낮에 매일 오는 간병인은 알아보신다고 한다.


나보다 2~3주 전에 왔다간 외할머니의 둘째 딸, 우리 엄마는 외할머니가 못 알아보셨다. 그래서 외삼촌이 내가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와봐도 외할머니가 못 알아보고 그냥 슬프기만 해. 굳이 힘들게 광양까지 내려올 필요 없어.'라고 하셨다. 코로나 때문에 구순 생신에도 못 뵙고, 너무 오랫동안 뵙지를 못했다. 이번에도 찾아뵙지 못하면 후회할 것 같아 외삼촌의 만류에도 찾아뵈러 갔다.


한편으로는 외할머니 간병으로 힘든 외삼촌에게 내가 찾아뵙는 게 오히려 부담되는 일일 수도 있을 것 같아 외할머니 얼굴만 잠깐 뵙고 올라오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외삼촌은 아침 일찍 외할머니 아침 식사를 차려 주시고 오전 11시 ktx 순천역 도착 시간에 맞춰 광양에서부터 나와 신랑을 마중 나와주셨다. 외삼촌을 4년 만에 뵈었다. 그 사이 외삼촌은 직장 생활과 할머니 병간호를 같이 하시면서 안 그래도 마른 몸이었는데 5kg가 더 빠지셨다고 한다.


병간호로 서울 집도 최근 5개월 동안 못 가셨다고 한다. 지난 주말 힘들게 이틀을 요양보호사에 부탁하고 다녀오셨다고 한다. 외삼촌은 이 와중에 조카가 온다고 하니 근처 유명한 식당을 미리 예약해 물회도 사주시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느티나무 20수를 기증한 공원도 기억해 데리고 가주셨다.


외할머니에게 간다고 인사를 드렸을 때, 내 인사를 알아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아들(외삼촌) 덕분에 이렇게 살고 있고, 나 때문에 아들이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 그래도 이렇게 내가 버티고 살아있느니 네가 보러도 오고 하는 거지?’라는 말씀을 하셨다.


'도리도리, 곤지곤지, 죔죔을 옛날부터 아이한테 시켰는데 정말 지혜로운 운동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계속 이렇게 고개와 손을 움직여 줘야 한다고 하시고, 하루 종일 혼자 말을 안 하고 있으면 입안이 마른다며 혀로 입술 안쪽을 돌리시고, '혼자 있어도 말을 계속해야 한다, 아니면 말을 할 일이 없다'라고 하시는 모습에 그동안 외할머니 스스로도 건강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눈물겨운 노력을 하셨는지 알 것만 같았다.


습관이 태도가 된다고 하는데 외할머니가 이제는 기억을 잘 못하시는 상황에서 건강을 위해 반복하시는 말과 행동에 자꾸 눈물이 났다. 손을 꽉 잡아드렸더니 외할머니가 힘을 주신다. 여전히 외할머니 손에는 삶에 대한 뜨거운 의지가 느껴진다.


외삼촌 덕분에  외할머니도 잘 뵙고 외할머니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듣고, 생각지도 못한 아버지의 느티나무도 볼 수 있어서 얼마나 감동이고 감사한지 모르겠다. 흔쾌히 함께해 준 신랑의 따뜻한 마음도 감동이다. 자주 찾아뵙지는 못하겠지만 외삼촌과 외할머니를 위해 늘 기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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