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일하게 들어가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있다. 누군가 '너무 걱정이 많은 나,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요?'라는 글을 썼길래 댓글을 달았다. 잠시 후 대댓글이 달렸다.
"나중에 시간 나시면 내용 더 달아주세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기분은 늘 좋다. 나의 존재 의미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랄까.
나는 앉은자리에서 불안을 주제로 글을 써 내려갔다. 의식의 흐름대로 썼지만 진심이 담겨 유난히 쉽게 써졌다. 그 글을 살짝 다듬어 여기 옮긴다.
인류 역사에서 불안만큼 질기고 뿌리 깊은 감정이 있을까요?
먼 옛날, 수렵 채집 시절로 시계를 되돌려보겠습니다.불안은 인류의 생존율을 높이는, 필수 불가결한 '생존 방식'이었습니다. 사바나 초원에서 불안을 감지하고도 불안을 외면한다는 건 죽음을 의미했죠.
불안을 느낀 사람은 맹수의 습격을 미리 피할 수 있었겠지만, 불안을 느끼지 않은 사람은 바로 맹수로부터 공격을 당해 죽음을 맞이했을 테니까요. 이를 지켜본 인류는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진화합니다. 불안을 기본 값으로 장착하고 태어나도록...
여기서 질문이 하나 생기죠. 현대 사회는 맹수의 위협 같은 직접적 생존 위협이 사라졌는데, 왜 다들 불안한가요?
현대사회의 불안은 '인간관계, 타인과의 비교와 경쟁,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사회의 불안정성' 등으로부터 발생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언제든 날 떠날 수 있다는 불안, 내가 경쟁에서 뒤처져 하루 아침에 길거리에 나앉게 되진 않을까 하는 불안,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잘리게 되진 않을까 하는 불안, 지금 내 옆을 지나가는 사람 때문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옮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 등...
불안이라는 건 결국,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간의 한계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에요.'공포스러운 상황이 갑자기 날 덮칠지도 몰라.' 이게 불안인 거죠. 다만, 사람마다 가져도 좋은 불안의 적당한 크기라는 게 있는데, 우리 사회는 부지불식간에 '불안에 잠식당해버린 사회'가 되어버렸다는 게 문제입니다.
(이에 대해 얘기하려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김태형 심리학자가 쓴 '불안 증폭 사회'라는 책을 추천드립니다)
저는 IMF 사태가 우리 사회가 불안이라는 감정에 잠식당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전까지는 고속성장에 취해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최소한 먹고살 수는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었는데, IMF 때 수많은 회사원이 한순간에 직장에서 잘리고, 멀쩡하던 사람이 노숙자고 되고... 이런 사회적 공황 사태를 두 눈으로 목격하고는 '일단 나부터 살고 보자'가 우리 사회의 주류 생존방식이 되어버렸죠. 여기에 무한경쟁, 승자독식 구조, 전세계적인 신자유주의의 흐름까지 맞물리며, 부지불식 간에 '불안, 불신, 불만'이 온 세상을 덮어버렸습니다.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을 행복
불안해지면 사람은 아래를 보지 않고 위를 봅니다. 세 잎 클로버(행복)는 내 밭 밑에 있는데, 몇 장 있지도 않은 네 잎 클로버(행운)만 찾아다녀요. 나보다 잘난 사람만 보이죠. 그러면 더 불안해지고, 자존감 떨어지고, 자꾸 나 자신에게 더 뛰라고 채찍질하게 되고... 이런 굴레에 빠진 사람들, 주위에 많이 보이지 않나요? 그렇다고 돈 많고 잘난 사람들이 행복한 것만도 아니에요. 전문직 자살률은 최근 몇 년간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들도 불안한 거죠. 언제 '내가 내리막길로 접어들지 모르다는 불안감'과 '나보다 더 잘난 사람들과의 비교로 인한 열등감'이 그들에게도 있습니다. 불안에 대한 사회구조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불안을 제거할 수 있을까요?
불안이라는 감정, 유전과 환경에 의해 굳어지는 거라 바꾸기가 쉽지 않음을 저도 경험을 통해 누구보다 잘 압니다. 저조차도 어렸을 때부터 늘 불안에 시달렸던 사람이었어요. 지금도 불안하면 손이 입에 갑니다. 사람들이 이게 애정결핍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런 얘기 들으면 저희 어머니는 화부터 내시죠. 난 너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고^^
저 또한 누구보다 불안했던 사람이었어요. 학교 전학 가서 자기 소개하라고 하면 우는 아이 있죠? 제가 그런 사람이었죠. 지금은 불안하지 않습니다. 불안하지 않다기보다는 '불안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을 찾게 됐다'는 표현이 더 적확하겠네요. 가끔 스스로에게 물어봐요.
도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저는 언젠가부터 스스로 '불안을 하나씩 제거해나가기 시작'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제 자랑은 아닙니다. 저는 나 자신과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인데, 우연히 길 걷다가 깨닫게 됐어요)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우리 모두에게 '나중에 은퇴해서 남한테 꿇리지 않고(?) 살려면 아파트 몇 평에 돈이 몇 억 정도는 있어야 해’라는 사회적 기준이 있어요. 이게 제게도 적용되는 기준이라면, 전 절망할 수밖에 없어요. 전 돈이 많지 않거든요. 불안해지죠. 그런데 그렇게 불안에 떨면서 살긴 싫어요. 그래서 저는 '소유에 대한 불안을 제거'하기 위한 실험을 해봅니다.
(전 이런 실험을 좋아해요. TV, 냉장고, 세탁기 없이 살아보기, 하루 두 끼만 먹고살아보기, 채식 지향 식단으로 살아보기 등등)
'내가 지금의 행복감을 유지하면서 살려면 최소 얼마만큼의 돈이 필요할까?' 하는 실험이었죠. 한 달간 지금의 행복감을 유지하며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금액으로 살아봤고, 50만 원만 있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게 가능한 얘기냐고 하실 수도 있는데, 실험 결과만 보면 50만 원도 남아돌 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 기준이 100만 원이었는데 캠핑카에 살아보고는, 집에 살았다면 나갔을 비용(월세, 관리비 등) 50만 원이 빠져서 50만 원이 됐어요.
(이 실험 결과, 나중에 기회 되면 글로 남길게요)
이제 저에게 ‘내가 만약 직장에서 잘리면 사회에서 인정도 못 받고, 돈도 없고, 불행해지겠지?’ 최소한 이런 불안은 없는 거죠. 연금 50만 원은 나올 테니까. 그때 가서 뭐든 할 일이 있을 테니까...
컴퓨터만 있으면 행복했던 시절의 일론 머스크
이건 일론 머스크(테슬라 CEO,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의 실제 모델)식 불안 제거 방식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인터넷에서 찾지 마세요. 제가 만든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프로젝트에 ‘일론 머스크 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일론 머스크가 젊을 때 한 달 동안 하루 1달러 핫도그만 먹고살아봤더니 살만하더래요. ‘난 거지가 돼도 하루 1달러는 있을 테니 망하면 핫도그 먹으며 살지, 뭐. 그러니 일단 좋아하는 컴퓨터 마음껏 해보자’라는 생각이 오늘날의 일론 머스크를 만든 거죠.일론 머스크라고 불안이 없었겠습니까? 자기만의 유쾌하고 긍정적인 방식으로 불안을 제거했기에 자기 능력을 100% 발휘할 수 있었던 거죠. 일론 머스크가 요즘 뻘짓 많이 하긴 하지만, 난 놈은 난 놈입니다^^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저는 다수의 청중 앞에 서면 불안해지는 사람이었는데, 고등학교 시절 어느 장기자랑 시간에 그날 무슨 용기가 있었는지 한번 웃겨보겠다고 무대 위로 올라간 다음부터 무대공포증이 사라졌어요. (https://brunch.co.kr/@hanvit1102/9) 여행에 대한 공포가 있던 사람이었는데(20대엔 무서워서 혼자 여행 못 갔답니다) 혼자 여행을 떠나본 다음 내가 걱정했던 일이 일어나지 않음을 확인하고는 지금은 여행작가가 꿈인 사람이 됐습니다.
숙소를 구하지 못해 바닷가에 침낭 펴고 자던 날
이런 식으로 스스로 한계를 하나하나 깨 보는 경험이 중요한 것 같아요. 고소공포증 있던 사람이 높은 곳에 올라가도 멀쩡하다는 걸 깨달으면 높은 곳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는 것처럼..
실제 인지치료도 이런 식으로 진행됩니다. 거미 공포증 가진 사람에게 거미를 손에 일부러 올려놓고 “그것 봐요. 아무 일 일어나지 않잖아요” 라고 확인시켜 주잖아요. (물론 인지치료도 치료 효과에 개인차가 있긴 합니다) 내가 뭐에 불안해하는지를 인식하고, 그 '불안(한계)을 깨려는 의지'만 있다면 불안은 서서히 사라진다고, 저는 믿습니다. 한마디로 내가 누군지 알면, 어떤 사람인지, 뭘 할 때 행복한지, 어떤 때 불안한지 알면, 불안에서 벗어나기가 쉬워집니다.
(우리 인생의 비극 대부분은 타인의 기준에 나를 맞출 때 일어납니다)
이와 더불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변수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를 구분'하는 게 중요합니다.우리는 늘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지 못하고 바꿀 수 없는 것에만 집중합니다. 과거와 미래. 이건 내가 어찌할 수가 없는 거예요. 지나간 일에 후회하는 사람들에겐 한마디 드려요. 그런다고 바뀌나요? 다가오는 미래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겐 또 한마디 드립니다. 두려워한다고 달라지나요?
그래서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기!
‘지금, 나, 여기’에만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게 요즘 마음 챙김(명상)이 세계적으로 급부상하는 이유죠. 자기 호흡에만 집중하면서 온갖 잡념을 몰아내는 겁니다. '지나간 날들은 나의 지금이 걸어온 길이고, 다가올 날들은 나의 지금이 걸어갈 길'이라는 것만 기억하세요. 지금 나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에 불평하지 말고, 주어진 것에 감사해보세요.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지지 않나요?
전 어려서부터 제가 감사한 마음을 잊고 산다고 생각 들 때마다 눈꺼풀의 존재를 느꼈습니다. 이 녀석은 하루 종일 수천, 수만 번 눈을 깜빡이는 노동을 게을리하지 않는데도 전혀 평가를 못 받아요. 오로지 내가 눈꺼풀이 움직이고 있다고 느낄 때만 그 존재를 느낄 뿐, 사람들은 눈꺼풀이 하루 종일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전 눈꺼풀의 움직임을 느끼는 순간이야말로 '지금에 집중하면서 내게 주어진 사소한 것들에 감사하는 순간'이 아닌가, 하여 가끔씩은 눈꺼풀의 움직임을 느끼는 시간을 가진답니다.
우리 서로에게 눈꺼풀처럼, 있는 듯 없는 듯, 그러나 없으면 절대 안 되는, 그런 사람이 되어줍시다. 그게 지구라는 별을 잠시 스쳐갈 뿐인 우리가, 지구라는 별을 잠시 스쳐가는 서로를 지금 이 순간에 스치게 된 이유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