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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피 지망생 May 18. 2020

한 달 동안 히피처럼 살아봤다

히피 지망생의 히피 체험기

* '히피 DNA'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지난 한 달 동안 히피처럼 살아봤다.

캐치프레이즈는 ‘최소한의 소비, 최대한의 자유’.

내 마음대로, 마음 가는 대로 살아봤다. 한 달 동안 내가 쓴 돈을 살펴보고, 내가 만약 지금 당장 히피가 된다면 한 달에 얼마면 생활이 가능할지 가늠해봤다.

속세의 기준 따위 개나 줘 버려.


1. 집

캠핑카에 살아서 집세는 안 든다. 히피가 돼도 캠핑카에 살 거다. 아파트 관리비나 집 수리비도 낼 필요 없다. 그러므로 집세는 0.

2. 전기요금

전기요금 안 든다. 나에게는 태양광 발전이 있다. 히피가 돼도 태양은 비출 것이다. 그러므로 전기요금도 0.


3. 수도세

수도세 안 든다. 히피가 돼도 어딘가에 시냇물은 흐를 것이다. (이 긍정적 마인드를 보라!)

수도세도 0.


4. TV 수신료, IPTV 사용료

TV 안 본다. TV 갖다 버린 지 10년쯤 됐다. TV 수신료, IPTV 사용료도 낼 필요 없다. 내 평생 다시 TV 볼 일은 없다. 그러므로 TV 수신료도 0.

5. 핸드폰

핸드폰 요금은 3만 원짜리 쓰고 있다.

알뜰폰으로 갈아타고 싶지만 부모님이랑 통신사가 묶여있어서 바꾸지 못하고 있다. 히피가 된다면 알뜰폰 만 원짜리 요금으로 갈아탈 거다.
처음으로 돈 드는 거 등장! 히피가 돼도 핸드폰은 써야 하는군. 히피가 만든 스티브 잡스가 히피도 핸드폰 써야 하는 세상을 만들어놨다니...

잡스형, 당신은 계획이 다 있었군요.

6. 인터넷

핸드폰으로 인터넷 쓰고 있다. 난 하루에도 궁금한 게 수 백개씩 생겨서 인터넷 없으면 안 된다. 인터넷만 되는 알뜰폰 요금제가 그때 가도 있을 것이다. 인터넷 이용료도 핸드폰 요금에 포함될 테니 패스.


7. 음악 감상
난 하루 1시간 이상은 음악을 들어줘야 한다. BGM 없는 인생은 상상할 수 없다. 이젠 세상이 좋아져서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무제한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히피가 돼도 음악은 못 끊는다.
스트리밍 사이트 이용료 5000원, 기분 좋게 쏜다!

8. 영화 감상
히피가 돼도 넷플릭스는 포기 못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는 진심 짱이다. 지금은 넷플릭스 요금(월 14,500원)을 4명이서 나눠 내고 있다. (한 달 3,600원 정도)
넷플릭스 보는 히피라... 세상이 바뀌긴 바뀌었군.

9. 책 구입비
1년에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책이 200권 정도 된다. 여름엔 에어컨 틀어줘, 겨울엔 히터 틀어줘, 책 공짜로 빌릴 수 있어, 보고 싶은 책 있다고 하면 대신 사 줘, 인터넷도 공짜로 이용하게 해 줘... 지금껏 도서관보다 환상적인 실내 공간을 본 적이 없다. 도서관만 생각하면 내 세금이 아깝지 않다. 고마워요, 도서관.
히피가 돼도 도서관은 있을 것이다. 책 구입비 0원.

10. 유류비
평소 모터바이크를 타고 출퇴근하고 가끔 캠핑카를 타고 여행을 간다. 이번 달은 기름 값으로 5만원 정도 썼다. 히피가 된다면, 자전거를 주로 타긴 하겠지만 가끔 여행 갈 때는 모터바이크도 필요하겠지? 내 바이크는 만 원이면 200km 이상 가니까 유류비로 후하게(?) 만원 책정!

11. 이발
한 달에 한 번, 이발하는 데 12,000원 쓴다. 히피가 된다면, 바리깡으로 내 머리 내가 삭발할 거다. 하하.

12. 기부금
기부를 많이 하는 편이다. (대한민국 평균의 열배쯤 된다. 누가 보면 부자인 줄 알겠다) 히피가 된다면 별 수 없이 기부를 줄여야 한다. 이게 가장 마음에 걸리지만, 다른 방식으로라도 어려운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내가 나를 나로 만난 이유니까.

13. 취미활동
난 히피가 돼도 파도가 치는 날엔 서핑을 할 것이고, 파도가 없는 날엔 카약을 탈 것이다. 날씨 좋은 날엔 백패킹을 할 것이고, 날씨 안 좋은 날엔 책을 읽거나 집(?)에서 영화를 볼 것이다. 여전히 자전거를 타고 바람이 내 뺨을 스치는 기분에 황홀해 할 것이고, 하루 한 시간 이상은 걸으며 나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가끔은 뛰면서 땀 흘리는 기쁨을 느낄 것이고, 가끔은 바이크 타고 멀리 떠나보기도 할 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돈이 별로 안 든다는 것이다. 히피가 되면 포기해야 할 유일한 취미는 스쿠버다이빙뿐이다. 다이빙도 가끔씩은 돈 모이면 해야겠다. 이 정도 사치는 해도 되지 않나?


14. 식비
드디어 가장 큰 지출 항목이 나왔다. 식비. 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이여! 캠핑카에 산 다음부터, 아침은 토스트로 해결한다. 점심은 직장에서 나온다. 저녁은 주로 채식 위주로 먹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푸드파이터 대회 나가보란 권유를 들을 정도로 식탐이 강한 사람이었다. 피자 라지 사이즈 한 판 먹는 건 일도 아니던 시절이 있었지. 동물권에 대한 책을 읽고 나서 채식의 필요성을 느꼈고, 최소한 혼자 살 때에는 채식으로 식사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채식을 지향하려는 노력’을 통해 육류 소비량을 절반 이상 떨어트렸고, 생활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마라톤 훈련, 하루에 100km 걷기를 할 때도 빠지지 않던 몸무게가 10년 만에 빠졌고, 몸에 피로감이 사라졌다. 식비를 대폭 절감했고, 마음도 한결 편해졌다. (언젠가 채식이 가져다준 변화에 대한 글을 써보겠다) 4월 한 달 동안 식비에 쓴 돈을 얼추 계산해보니 하루 만 원쯤 되는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캠핑카에 친구가 찾아와서 이 날만 술 값 7만원이 나갔다. 이 친구가 실업자 신세여서 내가 쐈다. 내 일주일 식비다, 이것아!)


히피가 된다면 일단 두 끼만 먹을 거다. 식사는 세 끼, 규칙적으로 챙겨 먹어야 한다고? 일할 때는 나도 세 끼 먹는다. 그러나 일을 하지 않는데 세 끼를 챙겨 먹으면... 살만 찐다! 언젠가부터 일하는 평일에는 세 끼를 먹고, 일을 하지 않는 주말엔 두 끼만 먹는다. 신기한 게 두 끼만 먹으면 배고플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일을 하지 않으면 에너지 소모가 줄어들어 배가 덜 고프고, 채식 지향으로 식단을 바꾼 다음부터 위가 줄어서 이젠 조금만 먹어도 포만감을 느낀다. 사람들이 가끔 물어본다.


“벌써 다 먹었어? 예전에 너랑 먹으면 숟가락 들기도 전에 끝났는데..”

난 대답한다.

“지금은 위가 줄어서... 그땐 미안했다^^;;;”

진화생물학관점에서 보더라도 인간이 세 끼 챙겨 먹은 건 인류 역사에서 얼마 안 됐다.

수십만 년 동안 영양소 결핍으로 고생하던 인류가 이젠 영양 과잉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전 세계 다이어트 보조제로 쓰이는 돈의 일부만 말라리아 예방에 써도 수백만을 살릴 수 있다는 글을 어디선가 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린 너무 많이 먹는다. 덜 먹고 덜 쓰고, 덜 버리는 것만이 인류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쓰다 보니 지난번 술 마실 때 배 터질 때까지 먹은 게 후회된다. 바다에 앉아 있는데 보름달이 너무 예쁘게 떠 있길래 후배가 선물한 보드카를 깠다. 한 잔 마셨더니 기분이 좋아져서 쥐포 큰 거 8마리와 생라면을 앉은자리에서 다 먹어버렸다. 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여!

이 달을 보고 어찌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있으리오..


히피가 된다면, 하루 식비는 만원으로 잡겠다. 하루에 만 원씩 잡으면 분명 돈이 남을 것이고, 남은 돈은 모아뒀다가 가끔 사람 만날 때, 또는 갑자기 술이 땡길 때 술 값으로 써야겠다.

쓰고 보니 50만 원이면 돈이 남아돌겠네? 이건 예상보다 너무 적은데? 빠진 게 뭐가 있을까?

경조사비? 그래, 경조사는 챙겨야지. 예비비로 경조사비 항목을 따로 마련해 놔야겠고..

(대신 돌잔치는 안 챙긴다. 다른 사람 돌잔치 가기 귀찮아서 나도 내 아이 돌잔치 안 했다^^)

치약, 칫솔, 비누 등이 떨어질 수 있으니 생필품비로 만 원은 책정하자.

또 뭐가 있지... 부모님 용돈? 부모님께는 미리 말씀드려놓았다. 갖고 계신 돈 살아계실 때 다 쓰고 가시라고, 대신 빚만 물려주지 마시라고. 내가 히피가 됐다고 용돈 안 드린다고 뭐라 하실 분은 아니다.

써놓고 보니 지금 당장 직장을 그만둔다 해도 걱정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 에필로그가 남았다. 4부작으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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