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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피 지망생 Jun 02. 2020

어떤 날

개구리 로드킬 사건이 불러온 그 날의 기억

어젯밤에 있었던 일이다. 길을 걷는데 아스팔트 도로 위에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뭔가가 보였다. 자세히 니 개구리였다. 크기는 7-8cm쯤 되어 보였다. 제 알아서 갈 길 가겠지 하고 돌아서려는데 반대편 차선에서 차가 오는 걸 보고는 이 녀석이 당황해서 움직이지를 않는 거다. 그렇게 가만히 있으면 위험한데... 바로 그때 오토바이 한 대가 개구리 옆을 스쳐 지나갔다. 엉덩이 부분만 스쳤는지 죽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하아...  진퇴양난이라는 표현은 이런 때 쓰는 거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손으로 잡아 도로 옆으로 옮겨주고 싶은데, 내가 소년이었다면 그랬을 텐데, 개구리가 크기가 작은 것도 아니거니와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교통사고 당한 개구리가 조금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어서 차마 손으로 집어 옮기는 건 못하겠더라. 내 손에 널따란 뭐라도 있으면 그 위에 옮겨 도로 옆으로 피신시킬 수 있었을 텐데, 내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와중에 개구리랑 눈이 마주쳐 버렸으니 이젠 못 본 척 도망칠 수도 없게 됐다.


주위를 둘러보니 널따란 풀이 있었다. 이 위에 옮겨 도로 옆에 갖다 놓으면 되겠구나 싶었다. 풀을 뜯어서 개구리에게 다가가려는 찰나, 차 한 대가 개구리를 지나갔다. 그것도 절반만. 하아... 조금만 더 빨리 움직일 걸... 살 가망은 제로인데 아직 죽지도 않았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몇 년 전, 호주 울룰루 투어 때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내가 탔던 버스가 캥거루를 버렸다. 가이드가 내리길래 나는 살리려고 내리는 줄 알았다. 잠시 후 삽으로 내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가이드가 말하길, 이런 일이 열 번에 여섯 번 정도 꼴로 일어나는데 어차피 살 수 없는 캥거루를 고통 없이 보내주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헛기침하며 애써 마음을 추스르던 그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지금 내가 딱 그 상황에 처하게 된 거다. 살릴 수는 없는데 고통 없이 죽일 수도 없는...

그때, 그 뒤에 따라오던 차가 개구리 위를 지나갔다.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그 차가 지나가지 않았다면 난 어쩌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겠지. 다만 첫 교통사고 때 손으로 집어 옮겨주지 못한 게 미안할 뿐...

에휴, 이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로드킬 당한 개구리를 보고 있자니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었다. 그때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지.

17년 전으로 시계를 되돌려야겠다.




그저 그런 날들은 금세 잊히지만, 어떤 날들은 잊히지 않는다. 평생 한 번 일어날까 말까 싶은 일이 하루에 두 번이나 일어난 그 날을 어찌 잊을까.     


대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형과 자전거 타고 어딘가로 향하던 길이었다. 길 한가운데 차에 치여 죽은 개 한 마리가 보였다. 누군가 치우겠지 하며 애써 고개를 돌리려는데, 길가에 자리를 뜨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는 개 한 마리가 보였다. 슬픈 표정과 몸집의 크기로 미루어 보아 길가에 죽어있는 개의 어미로 보였다. 길에 누워 있는 개는 이미 죽은 게 확실해 보였지만, 가만히 놔두면 지나가는 차들에 또 밟힐 수밖에 없는 상황. 어미는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어미의 표정이 눈에 밟혀 형에게 말을 꺼냈다.


“형, 저기 죽어있는 개, 사체라도 길가에 치워줘야 하지 않을까요? 여기 옆에 있는 개가 어미 같아 보이는데 가만 놔두고 가면 어미도 다칠 것 같아요. 바쁘지 않으면 길가에 옮겨놓고 가요.”


형이 평소 어떤 성품을 가진 사람인지 알았기 때문에 꺼낸 말이긴 했지만 막상 말하고 나니 겁이 났다. 아무리 죽은 동물이지만 동물의 사체를 옮긴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형이 잠시 생각하더니 나에게 말을 꺼냈다.


“그러게. 그런데 우리가 저 개 손으로 들어서 옮기면 온전히 옮겨질 거 같지 않은데? 저 아래 뭐가 있을지도 모르고..


사실 나도 그게 겁나서 형에게 말을 꺼냈던 터였다. 우리 둘은 자전거를 세우고 죽은 개의 사체를 옮길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시청에 신고하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행정 처리를 기다리기엔 각자 다음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다른 도구를 이용해서 개를 옮기는 현실적인 방법을 생각했다. 주변에 버려진 종이 박스를 찾아 어떻게든 그 위에 개를 뉘어놓은 다음 박스를 옮기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주위에 박스가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박스를 찾는 척하며 형이 더 나은 방법이 찾아주기만을 바랐다.


형에게 “박스가 없는데 어쩌죠?”라고 말하며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조금 전까지 손으로 들어서 옮기면 뒷수습은 어찌하냐며 걱정하던 형이 죽은 개를 맨손으로 들어 옮기는 게 아닌가! 사실 형에게 죽은 개의 사체를 옮기자고 말을 꺼내면서도 딱히 대책이 있어서 꺼낸 말은 아니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고 그 형이라면 묘책을 내놓지 않을까 해서 형에게 말을 꺼냈던 터였다.


형에게 마음의 부담을 전가하고 주위에 있을 리 없는 애꿎은 박스만 찾던 나와 달리 형은 맨손으로 옮기는 방법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난 말만 했고, 형은 실행에 옮겼다. 단지 그 차이였다. 형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난 그저 부끄러웠다.


형이 맨손으로 죽은 개의 사체를 들어 올려 길가로 옮기던 그 장면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 마음속에 아로새겨졌다. 형이 행한 일은 마치 성인군자나 혁명가의 그것과 같았고, 그날의 기억은 젊은 날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다. 이 사건이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이유는 그 장면이 주는 깊은 울림 때문도 있지만, 뒤에 이어질 사건의 복선 구실을 했기 때문이 더 크다.       



죽은 개 옆에서 슬피 우는 어미 개를 뒤로하고 나는 수영장으로 향했다. 당시 내가 다니던 대학은 수영 시험 기준(2가지 영법으로 100m 왕복)을 충족하지 못하면 졸업을 할 수 없었고, 어릴 때 물에 빠져 죽을 뻔한 트라우마로 물가 근처도 못 가던 나는 별 수 없이 수영 강습을 받아야 했다. 그날도 수영 강습을 위해 친구랑 수영장을 찾은 터였다. 수영장 풀에 들어갈 때 뒤따라 들어온 덩치 큰 청년이 있었는데, 행동이나 표정이 어눌해 보였지만 대수롭게 여기진 않았다.  


수영 강습에서 배운 영법을 연습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때였다. 레인 한가운데 어둡고 큰 뭔가가 떠 있는 게 보였다. 순간 내 뒤를 따라 들어온 청년이 떠올랐다. 사고가 났음을 직감하고 그에게 헤엄쳐갔다. 그가 물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면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을 텐데, 움직임이 크게 없는 것으로 보아 사고가 난 지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한 듯 보였다. 재빨리 바닥 위로 옮겨 심폐소생술을 실시해야 했다. 다행히 우리는 1 레인에 있었다. 저 멀리 친구가 보여 도와달라고 소리치고 수영장 바닥 위로 들어 올리려는데 덩치가 있는 친구여서 둘의 힘으로 들어 올리기가 버거웠다. 지나가던 수영 강사와 다른 사람들이 도와줘서 바닥 위로 들어 올릴 수 있었고, 심폐소생술이 시작됐다.


당시만 하더라도 심폐소생술을 할 줄 아는 일반인은 매우 드물었고, 나 또한 그랬다. 심폐소생술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는 수영 강사가 그 장소에 있었던 것은 천운이었다. 바닥 위로 올리고 보니 몇 사람이 달라붙고도 그 청년 하나 들어 올리기가 힘들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뜩이나 덩치가 있는 친구였는데, 물을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배가 볼록 나와있었다. 초등학교 때 물어 빠져 죽을 뻔했던 그날 나도 그랬었지. 숨 쉬려 숨을 들이켤 때마다 물이 들이치던...


다행히 심폐소생술을 받자 누워있던 청년의 몸에 조금씩 반응이 보였다.

지금 돌이켜보니 소름이 끼치는 게 첫 사건, 그러니까 길 한가운데 죽어있던 개의 사체를 옮겼던 그 사건이 없었다면 그다음 수영장에서의 일이 어떻게 전개됐을까? 우리는 어떤 인연으로 그곳에서 그런 인연으로 만났던 걸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가 개의 사체를 치웠던 곳을 지나가게 됐다. 우리가 신고한 동물 사체 신고가 접수됐는지 낮에 형이 옮겨놓았던 개의 사체는 치워지고 없었다. 낮의 기억이 떠올라 등 뒤에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지만, 그날 낮에 형이 데워 놓은 공기의 온도 덕에 마음만은 따뜻했다.


그날, 그 청년은 그 형이 살린 거다.


아직도 선명한, 잊을 수 없는 어떤 날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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