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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뭘 하시나?

2020 0418

by 정한별

어제 아침 광화문에서 한기호 큰아버지, 그리고 옛 동료들과 만나러 나가시는 아버지를 배웅하며 차 안에서 짧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시민의 염원으로 정권을 바꾸었으니 저 오만한 집권의 무리들을 더욱 경계하고 날 선 눈초리로 훑어보아야 한다고 말했고, 아버지께선 70여 년을 쓰레기 같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 이 다섯을 모조리 겪으며 얼마나 암울하고 역겨운 청춘을 보내셨는지 역설하셨다. 드디어 70여 년이 지나 지금을 둘러보면 그나마 당신에게는 참 아름다운 세상이노라 하신다. 네가 독립운동가를 이곳에 모셔오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도 꿈만 같다고 하셨다. 그래, 난 그 이전에 대한 이해가 적었고, 아버지 세대가 보내는 지금의 흡족한 시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고2 때 사상계를 늘 보셨고. 대학에 갓 들어가셔서는 직접 찾아가 사상계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셨었다고 하신다.


1960년 4월 19일, 대학 1학년 생이었던 아버지 주위에서 혁명이 시작됐다.


연대 교정에는 학생들이 웅성거리고 있었고, 연단에는 함석헌 선생이 올라오셔서 "학생 여러분! 여기서 뭘 하시나? 나가자!" 외치셨고, 학생들은 "이승만 물러가라!"를 연호하며 거리를 메워 걸어 나갔다고 한다. 서소문 이기붕의 집을 지날 때는 이미 고등학생들이 그 집으로 몰려들어가 금고를 밖으로 던지고 집기를 던져 댔는데, 현금과 달라가 하늘로 휘날렸고, 그 날리는 돈을 누구도 집어 들지 않았던 기억이 너무나 선명하게 각인이 되셨다고 한다.



다시 광화문에서 모여 스크럼을 짜고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하려는 순간 총성이 울렸다. 기억으로는 많은 학생들이 죽거나 다쳤고, 연대 학생도 2명이 광장에 쓰러진 채 죽엄을 맞았다고 한다. 팔과 어깨로 이어진 스크럼이 무너지려고 할 때, 뒤에서 이해경(연대학생, 학생들 사이에서 '마릴린 몬로'라 불렸다고 한다. 당시 연대 국문과 학생 30명 중 여학생 9명이었고, 그중에 한 학생이었다고 한다) 학생이 물러서지 말라고 울부짖으며 혼신의 힘으로 밀고 있었다고 하신다. 다시 후퇴하여 교정으로 모여들었고, 백낙준이 연단에 올라 "사랑하는 연세의 아들딸들아 자랑스러운 일을 했다, 제군들이 자랑스럽다!"외쳤다고 한다. 그러자 곧 학생들 속에서 "친일파 물러가라!"라는 함성이 터지기 시작했고, 그는 변장의 연기를 다 마치지도 못한 채 연단에서 쫓기듯 내려가고 "최현배! 최현배! 최현배!"를 연호하자 최현배 선생이 올라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학생들을 격려, 고무하였다고 한다.


오늘의 훨훨 날갯짓은 독립운동부터 촛불 혁명까지, 100년이 훌쩍 지난 역사다, 세상의 사람들이 한국의 놀라운 모습이 어느 날 돌출한 것으로 아나, 곰곰 들여다보면 지난하고 끊임없는 저항의 역사가 차곡 쌓여 흘러왔었다. 모지리 징징이가 되어 가분수 대가리 몇만 탓하며 벽 뒤에 숨어 한탄할세 더욱 새로워질 기회를 잃는 것 이리라.


"인생 여러분! 여기서 뭘 하시나? 나가자!"

혁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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