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올리는 2020년 12월 기준 40개월 된 아들과 21개월 된 딸을 키우고 있습니다.
에피소드들은 어제 얘기일 수도 있고 1년 전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 때론 2년째 반복되는 얘기일 수도 있고요.
감정이입 그리고 눈물.
타인의 감정에 공감해서 눈물을 흘리는 행동을 얼마 전에 첫째 아들이 한 적이 있다.
둘째 딸은 아직 잘 때면 쪽쪽이를 찾는다. 깨어있을 때는 쪽쪽이를 잊고 지낸다. 하지만 잠을 청해야 할 때면 어김없다. 아내와 나는 두어 달 전부터 쪽쪽이와 헤어져야 함을 딸에게 얘기하곤 했다.
"이제 오니(딸의 이름은 시온)는 언니가 됐으니 쪽쪽이는 아기들 나라에 보내줘야 해"
우리의 시나리오는 이렇다. 저 말에 딸이 "알겠어"라고 동의한 후, 쪽쪽이를 침대 옆에 두되 물지 않고 잠이 든다면 잠든 사이에 쪽쪽이를 안 보이는 곳으로 치우는 것이다. 쪽쪽이와의 작별을 충분히 인지시키고 본인의 의지대로 보내줄 수 있도록 하자는 것. 딸은 수차례 "알겠어"라고 대답하곤 했다. 하지만 몇 분 가지 않았다.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쪽쪽이를 찾았다.
너무 서두르거나 강요하진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이제 좀 떼면 좋겠다는 바람도 품고 있던 얼마 전 아내는 다시 '이제 쪽쪽이 아기 나라에 보내줄까'라고 물었고 딸은 자신 있게 "웅" 대답했다. 여느 때보다 당찬 어조와 목소리에 기대를 품고 있는데... 이게 웬걸 옆에 누워 있던 첫째가 울먹거리는 게 아닌가.
"오니 이제 쪽쪽이... 못 보는 거야? 오니... 괜찮을까.. 막 보고 싶으면..."
예상 못한 눈물이었다. 대성통곡을 한 건 아니다. 언뜻 아들은 눈물을 감추고 싶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더욱 찐눈물이었다. 감정에 북받쳐서 결국 흘러내리고야 마는 액체 그거. 참고 싶었으나 못 참은 눈물이었기에 난 아들에게 운 이유를 묻지 않았다. 눈물은 '나는 것'임을 잘 알기에.
추측을 해보기는 했다. 혹시 첫째는 쪽쪽이를 떼는 순간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걸까. 그 순간이 자신에게는 아픔이었던 걸까. 첫째 역시 쪽쪽이와의 작별이 쉽지는 않았다. 몇 번을 다짐했지만 이내 다시 쪽쪽이를 찾았다. 최후의 방법으로 쪽쪽이를 가위로 잘라놨다. 빨아도 예전 같지 않자 몇 번을 더 시도해봤을 거다. 그러다가 결국 포기했다. 돌이켜보니 일종의 배신감이 들었을 것 같기도 하다. 분명 어제까지 날 평온하게 해 주던 쪽쪽이였는데 갑자기 이상해졌으니.
첫째는 갑작스러웠을 작별의 순간이 떠올랐던 걸까. 상실의 순간을 맞이할 동생에게 자신을 투영했던 걸까.
어느 쪽이든 그동안 흘렸던 눈물과는 분명 다른 성질의 것이다. 욕구가 충족되지 않거나 어딘가 아프거나 무섭거나, 모두 당장 처한 상황에 대한 놀람과 슬픔인데 이날 아들의 눈물은 어찌 보면 과거의 회상 또는 타인에 대한 감정이입이었을 테니 말이다.
사람이 성장한다는 건 기쁨 슬픔 분노 등 여러 감정을 일으키는 이유가 많아지고 또 복잡해진다는 것일 거다. 감정의 종류 자체가 많아지기도 한다.
"아들아 나 역시 너를 보며 이전에는 몰랐던 감정을 새로이 느낀단다.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 모두. 그렇게 우리는 커가고 있은 것 같다. 너의 눈물의 이유가 궁금하긴 하지만 묻지는 않을게. 결혼식에서 펑펑 운 나에게 많은 이들이 이유를 물었지만 단 한 사람 내 아버지만은 나에게 이유를 묻지 않은 것처럼."
왠지 위에 적은 말은 살면서 종종 아들은 보지 못하지만 '아들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