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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아직도 비참한 상태일까 <레미제라블>

<레미제라블>이 21세기에 던지는 질문

by 김철홍

0. 라즈 리 감독의 <레미제라블>은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받은 2019년 72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은 작품이다. (클레버 멘돈사 필로 감독의 <바쿠라우>와 공동수상) 감독 라즈 리(Ladj Ly)는 첫 장편 극영화로 칸 경쟁부문에 초청된 신예 감독. 1978년생, 말리 출신. 연기도 한다고 한다. 전작으로 TV 다큐멘터리 작품이 있다. 그래서인지 카메라가 인물을 따라가는 방식들이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들게 한다.


0-2. 라즈 리 감독의 <레 미제라블>은 우리가 레미제라블 하면 딱 떠올리는 빅토르 위고의 고전 장발장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영화이다. 2012년에 개봉했던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 의 영향 때문에, 이 영화 역시 또 다른 리메이크 버전이 아닌가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전 세계 최고의 축구 슈퍼스타 킬리안 음바페, 그리고 최신식 드론 카메라가 나오는 가장 현대의 이야기이며, 장발장 같은 억울한 도둑도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뮤지컬 영화도 아니다.


0-3.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프랑스어로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은 ‘불쌍한, 또는 비참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소설 레미제라블과 영화의 닮은 점이 있다면, 라즈 리의 <레 미제라블>에도 역시 불쌍하고 비참한 사람들이 나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거기에 더해 영화의 주 무대인 몽페르메유(Montfermeil)라는 동네에 빅토르 위고가 살았다는 것, 그래서 ‘빅토르 위고’라는 이름의 학교가 이 동네에 있다는 것 정도가 소설 레미제라블과 찾을 수 있는 연결 고리의 전부다. 참고로 몽페르메유는 감독의 고향이기도 하다.


0-4. 영화는 프랑스 월드컵이 막 끝난 2018년 7월 15일 이후부터, 2018년 발롱도르 발표가 있기 전인 12월 4일 사이 중 며칠을 시기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많이 보이고 음바페의 이름이 여러 번 언급되며, 영화 중간에 인물들끼리 누가 발롱도르를 수상할 것인가에 대한 대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발롱도르는 음바페 거야, 아니야 모드리치가 받을 걸? 정도의 대사. 참고로 2018년 최고의 축구 선수에게 주어지는 발롱도르상은 크로아티아 선수 루카 모드리치가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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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레 미제라블>의 오프닝은 프랑스가 2018년 월드컵에서 우승을 한 뒤 쏟아져 나온 파리 시민들의 모습의 몽타쥬다. 에펠탑이 가장 잘 보이기로 유명한 샤요궁과 에투알 개선문 등이 눈에 띈다. 프랑스혁명을 배경으로 한 소설 레미제라블 때문인지 거리에 나와 환호하는 시민들의 모습과 휘날리는 프랑스 국기의 이미지는 자연스레 프랑스혁명을 떠올리게 한다. 2012년에 개봉한 톰 후퍼 감독의 <레미제라블> 역시 프랑스혁명의 중심에 있었던 시민들의 승리의 노래(<Do you hear the people sing>)로 끝이 난다. 말하자면 라즈 리 감독의 현재 영화 <레 미제라블>은 바로 그 순간부터 시작되는 영화인 것이다. 프랑스가 제일 기쁜 바로 그 순간에. 당신이 아마 지금 당장 프랑스에 가서 프랑스인을 아무나 붙잡고 프랑스가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이 언제였냐고 묻는다면, 두 가지 답 중 하나를 듣게 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하나는 프랑스혁명, 나머지 하나는 2018년 월드컵 우승. 그런데 그 두 개의 이미지가 영화 제목이 같다는 이유로 인해 하나로 겹쳐보이게 되니, 프랑스인들에게 이 오프닝은 그 무엇보다 최고의 순간으로 느껴질 것이다.


1-1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동시에 영화 제목이 뭔가를 불안하게 만든다. ‘레 미제라블’은 다시 말하지만 고유 명사가 아니다. 불쌍한 사람들, 비참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제목이 벌써부터 대놓고 이 영화에 비참한 일이 벌어질 것을 예고하고 있는데, 오프닝에 이렇게 프랑스에서 가장 기쁜 순간을 보여주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아마 극명한 대비효과를 거두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우리가 기뻐하는 바로 그 순간에 몽페르메유는.. 혹은 우리가 그렇게 자랑스러워 마지않는 프랑스혁명을 통해 프랑스를 완전히 바꾸는데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몽페르메유는.. 지금 몽페르메유에 살고 있는 비참한 사람들을 보라. 이래도 정말로 기쁘십니까? 정말로 프랑스가 그렇게 자랑스럽습니까? 아직도 그 프랑스 국기를 높이 흔들고 싶으십니까? 하고 묻는 것만 같다.


2. 간략한 이야기 소개. 요약하면 타지에서 온 온화한 경찰이 험한 동네에서 적응/성장/변화해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시카리오>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봐도 되겠다. 주인공은 몽페르메유에 전입하게 된 루이즈다. 몽페르메유는 파리 근교에 있는 도시이며, 과거 2005년에 프랑스의 역대급 격렬했던 시위가 일어났던 도시라고 하는데, 그 성향은 현재에도 여전히 남아있을 터. 따라서 루이즈가 속하게 된 팀의 팀원들은 시민들에게 항상 강압적으로 굴고 전혀 정중하게 그들을 대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위엄을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순찰을 돌면 돌수록 루이즈와 그의 선임 크리스의 신경전의 강도가 세지고, 그러다 어떤 한 사건을 계기로 시민들의 분노를 사게 된 루이즈 일행은, 어느 날 시민들로부터 엄청난 복수를 당하게 된다. 과연 루이즈는 이 모든 과정을 거친 후에 어떤 경찰이 되어있을 것인가, 가 영화를 보는 관전 포인트 중 하나이다. 이로써 또 한 명의 크리스가 생겨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또 하나의 나쁜 경찰의 탄생은 앞으로 얼마나 많은 레미제라블들을 만들어낼 것인가. 라즈 리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현 프랑스 대통령인 마크롱이 꼭 봤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영화는 그만큼 지금 프랑스가 갖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날리고 있다. 물론 경찰의 공권력 오남용 이슈는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니므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어필이 되기에도 충분하다. 아마 이런 지점이 심사위원들의 선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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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좋은 주제를 선택했다는 것만으로 영화와 감독을 칭찬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영화에서 보여주는 조금 특별한 시점이다. 보통 전지적시점을 활용하여 어떤 사건의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 쉬운 방법이기 마련인데, 라즈 리 감독은 그 대신 관찰자 시점을 활용하여 사건의 진상을 보여준다. 특별한 점은 그 ‘관찰자’라는 존재가 영화 속 실제 인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 관찰자는 공교롭게도, 그리고 내가 느끼기엔 그다지 억지스럽지 않게도, 시민과 경찰이 충돌하는 두 개의 결정적인 순간 모두를 현장에서 관찰한다. 한 번은 드론카메라를 통해서, 또 한 번은 현관문의 작은 외시경을 통해서. 이 관찰자의 존재는 우선 감독의 소망을 드러내는 표현의 하나로 보인다. 지금까지 벌어졌던 수많은 공권력의 과잉진압 현장에, 그 상황을 제대로 기록하고 있는 증거물이 있었더라면.. 그랬다면 그러한 폭력들이 보다 줄어들지 않았을까? 그로 인한 레미제라블들이 덜 태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소망. 그것이 바로 드론 카메라의 존재 이유인 것 같다. 여기서 살짝 기술의 양면성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왜냐면 소년은 처음엔 드론을 동네 여자아이들을 몰래 촬영하는데 이용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용되는 가에 따라, 누가 운전하느냐에 따라, 누가 컨트롤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과학기술들, 제도들, 혹은 사람들. 이 부분은 영화의 핵심 주제와 맞닿아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진짜 나쁜 것은 무엇인가. 4에서 계속.


3-1. 관찰자시점의 두 번째 의도에 대해. 그가 다음으로 현장을 지켜보는 장소는 시민들의 복수가 벌어지고 있는 아파트 안이다. 그는 이번엔 현관문 외시경을 통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데, 위기에 빠진 ‘아직은 착한 경찰’이 그 문을 두드린다. 그가 문을 열어준다면 나쁜 짓을 저지른 경찰 일당들의 목숨을 구할 순 있겠지만 반면 시민들의 분노는 여전히 그대로 남게 될 것이다. 반대로 그가 문을 열지 않는다면 시민들은 나름의 복수를 하는 데는 성공하겠지만, 과연 그 경찰들이 자신들의 죄의 대가로 죽기까지 했어야 되는 것일까라는 질문이 남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여기서 문을 여는 것이 착한 사람일까, 아니면 문을 열지 않는 것이 착한 사람일까. 관찰자인줄 알았던 소년에게, 감독이 사실 넌 관찰자가 아니었다고, 이 사건의 마무리는 너의 선택에 달린 것이라고 질문을 던지는 바로 이 순간. 그리고 그 질문이 영화를 관찰하고 있던, 단지 관찰자인줄만 알았던 나에게 넘어오는 순간의 깊은 울림. 이 울림이 감독의 두 번째 의도가 아닐까. 첫 번째보다는 두 번째 의도가 내게는 더 와 닿았다. 새로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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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진짜 나쁜 것은 무엇인가.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 바로 전, 소설 레미제라블의 한 문장이 인용된다. “There are no such things as bad plants or bad men. There are only bad cultivators.” 나쁜 식물이나 나쁜 사람 같은 건 없다. 오직 나쁜 농부(경작자)가 있을 뿐. 소설 레미제라블의 핵심적인 질문을 담고 있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장발장은 진짜 억울한 착한 사람인가 아니면 나쁜 사람인가. 그렇다면 그 장발장을 잡으려던 자베르 형사는 정말로 무자비한 나쁜 인간인가, 아니면 사회 질서를 지키려던 착한 사람인가. 그러니까 정말로 나쁜 것은 무엇인가. 바로 이 메시지와, ‘Les Mieserables’이라는 이름과, 그리고 영화 <레 미제라블>의 마지막 질문이 결합될 때. 이 영화는 단순히 공권력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로만 보기엔 미안한 마음이 들 것이다. 2019년에 멜버른 영화제에서 본 영화였는데, 솔직히 <기생충>보다 좋았고, 그 해 본 영화 중 베스트였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우리나라에 개봉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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