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전부는 아니지만 이름 없이 시작할 순 없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도, <힌드의 목소리>에서도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가기 이전에 먼저 하는 것이 서로의 이름을 확인하는 거다. <프랑켄슈타인>에서 프랑켄슈타인은 ‘빅터’만을 외친다. <햄넷>도 이름에서 시작한다. 예시는 무한대로 들 수 있다. 아니 반대로 예시를 들 수 없는 이야기에선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걸 역이용하여 어떤 영화는 일부러 이름을 없애기도 한다. 어떤 영화는 그래서 좋고 어떤 영화는 그래서 아쉽다. 어떤 영화는 <변호인>이고 어떤 영화는 <두 검사>이고 어떤 영화는 <왕과 사는 남자>이고 어떤 영화는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이고 어떤 영화는 <내 이름은>이다. 어떤 이야기는 숨기기 위해 이름을 없애지만, 어떤 이야기는 숨겨진 이름을 위해 존재한다. 여기에 왜 이름 대신 다른 것이 들어앉아 있는 것인지 질문하게 한다. 제주4·3의 이름은 왜 지금까지 숨겨져 있던 것인가. 제주4·3은 왜 아직도 이름이 정해지지 않았는가. 여러 가지 의미로 조금 더 젊은 세대 감독이 만든 4·3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시차가 느껴지는' 결과물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움직였다. 이름 찾기라는 아주 기본적인 절차를 위해 원로 감독이 희생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 이름은>은 이름이 전부는 아니지만 이름 없이 시작할 순 없다는 것을 아는 영화다. 이 영화 덕분에, 머지않은 미래에 더 멋진 4·3 영화가 나올 것임을 확신한다. 오늘 극장에 걸려 있었다면 좋겠지만.. <내 이름은>은 4월 15일에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