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경력단절 9년 워킹맘의 취업성공기
전 직장에서 한 거라곤 물건정리 밖에 없어요.
빈 종이로 제출된 자기소개서. 막막한 표정의 그녀와 마주 앉았다.
"한 게 없어서, 이루어 놓은 것이 없어서,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경리직으로 7년 근무했지만 경력단절 9년이라는 세월과 함께 기억도 희미해진 듯했다.
"경험이 없다니요! 분명 강점이 많으신데, 저랑 오늘 탐색해 봐요."
격려차 던진 말이기도 했지만 분명했다.
"전 직장은 어떤 사업장이었어요? 주로 어떤 업무를 하셨나요?"
"식자재 납품 대리점이었어요. 한 거라곤 단순보조 밖에 없어요. 물건정리 정도?"
그녀의 20대와 7년의 시간들이 말 한마디에 저평가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역량을 이끌어낼 질문을 순차적으로 던졌다.
"어떻게 물건정리를 하셨어요?"
"주로 창고 직원들을 도와 함께 박스포장을 했어요."
"재고관리도 직접 하셨고요?"
"그렇죠. 문의 전화도 받고요."
"경리 사무원이면 기본적인 회계처리도 하셨겠네요?"
"네. 부가세신고, 영수처리하고 재고를 입력했어요."
"단순 물건정리라고 하기엔 많은 업무를 하셨는걸요? "
"그런가요..?"
의아한 표정의 그녀. 나는 그의 답변을 토대로 자기소개서 내용을 재구성했다.
"문의 전화를 도맡아 받으신 건 단순 전화업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여러 고객을 만났을 거예요. 자연스럽게 그들의 요청사항이나 민원도 처리하셨겠고요."
"맞아요. 불만사항이나 요청이 있으시면 사장님이나 직원분께 전달해 해결해 드렸어요."
"우리는 그것을 고객응대, C/S 능력이라고 해요. 고객 서비스와 만족을 위한 업무를 담당하는 거죠. 오래 할수록 위기대처능력, 노하우도 쌓일 거고요. 센스도 좋으실 것 같아요."
"어디 가서 센스 있다는 말은 종종 들어봤어요."
수줍게 웃으며 돌아오는 그녀의 답변. 긴장감이 풀어지며 자기 효능감이 향상된 표정이었다.
"부가세신고, 영수처리를 하시다 보면 예산도 작성하셨겠네요? 발주도 하셨고요? "
"네. 예결산 모두 작성했어요. 부족한 물건도 주문해 물량도 유지하고요."
"제품재고 파악과 함께 전산입력, 발주도 하셨다면 자재관리 사무도 하신 거고요, 어필할 게 너무 많은데요? 게다가 첫 직장에서 7년의 꾸준함을 출산 전까지 지키셨다니. 성실성도 두드러지시고요! 누구나 같이 일하고 싶겠어요."
상담 초기와 달리 밝아진 그녀가 말했다.
"저는 그동안 제가 해온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제 경력이 물경력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나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좋은 인연을 만난다면 그곳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 거예요. 최근까지만 해도 오전엔 제과제빵학원, 오후엔 아르바이트하시며 성실히 살아왔잖아요. 저녁엔 아이도 돌보시면서요. 저에게 전하는 눈빛, 몸짓, 말투에서 높은 호감성도 느껴지시고요. 취업이 운이라고 하지만 그 운을 저와 함께 찾아봐요."
그렇게 완성된 서류. 텅 비었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가 빈틈없이 채워졌고 그녀와의 본격 여정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