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사랑의 미로, 얽힌 실타래
오늘 하오빛판타지와 연결된 팟캐스트
오늘 하오빛판타지와 연결된 브런치북
하오빛은 며칠째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평소라면 무심히 흘려보냈을 타인들의 사소한 다툼이 유난히 신경 쓰였다. 길을 걷다 우연히 들은 젊은 연인의 차가운 말들, 오래된 부부의 침묵 속에서 느껴지는 서늘함, 심지어 애완동물을 대하는 무관심한 주인의 태도까지, 그의 레이더에 잡혔다. 이데아의 저편에서 ‘근원적인 의지’를 지킨 이후, 현실의 감정적 균열이 예전보다 훨씬 선명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그날 밤, 그는 억지로 잠을 청했다. 눈을 감자마자, 세상은 부드러운 분홍빛과 황금빛 물감처럼 번져나갔다. 이내 익숙한 아득함과 함께, 하오빛은 다시 ‘이데아의 저편’에 서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지난번 황량한 협곡과는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온통 부드러운 분홍빛과 황금빛이 감도는 거대한 미로였다. 미로의 벽은 투명한 유리처럼 빛났고, 그 안에는 수없이 많은 빛나는 실타래들이 얽히고설켜 있었다. 어떤 실타래는 팽팽하게 이어져 영롱하게 반짝였고, 어떤 실타래는 느슨하게 풀려 있었으며, 또 어떤 실타래는 맥없이 끊어져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이곳이 ‘사랑의 미로’임을 하오빛은 직감했다. 인간이 느끼는 모든 형태의 사랑, 즉 연인 간의 사랑, 가족애, 우정, 심지어 애완동물에 대한 애정까지도 이곳에서는 빛나는 실타래로 존재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미로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실타래들이 미묘하게 떨리는 가운데, 유난히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그리고 어딘가 익숙한 느낌의 실타래가 눈에 들어왔다. 버스에서 보았던 그 젊은 연인의 실타래였다. 실타래는 다른 수많은 실타래들과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중간중간 매듭이 지어져 있었다. 매듭 부분에서 희미한 빛이 고통받는 심장처럼 불규칙하게 깜빡였다.
하오빛은 실타래를 따라갔다. 그 엉킴 속에서 그는 기이한 환영을 보았다. 연인의 행복했던 첫 만남, 함께 웃던 순간들, 그리고 오해가 쌓여가던 과정, 서로에게 던졌던 상처 주는 말들…. 이 실타래가 그들의 관계를 상징하는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이 실타래가 다른 여러 개의 실타래들과 심하게 엉켜 있었고, 그 엉킴 속에서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그들의 사랑은 다른 사람들의 오해와 질투, 혹은 현실의 냉혹한 장벽 같은 것들에 묶여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결국 이 실타래는 끊어져 버릴 것이고, 현실의 그 연인들 또한 영원히 멀어질 터였다.
그때, 미로의 벽에서 음침한 소리가 울렸다. “풀지 마… 이미 늦었어….” 그것은 포기된 사랑의 잔재들이 내뱉는 속삭임이었다. 소리는 점차 커지더니, 미로의 벽을 이루던 실타래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엉킨 매듭들이 마치 살아있는 눈동자처럼 깜빡였고, 그 사이에서 가는 촉수들이 돋아났다.
“젠장, 이게 뭐야!”
촉수들은 끈적한 액체를 뿜으며 하오빛을 향해 빠르게 뻗어 나왔다. 그것은 ‘시기심의 덩굴’이었다. 촉수들은 상대방에 대한 하오빛의 작은 질투심이라도 감지하면 더욱 강하게 옥죄어 오는 듯했다. 덩굴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 있어, 조금이라도 저항하면 ‘열등감’이라는 독을 주입하려 했다.
하오빛은 몸을 날려 촉수를 피했다. 손끝으로 빛나는 실을 만지자, 따뜻하면서도 아련한 감정들이 밀려왔다. 그는 자신의 손에 쥐여진 ‘끈기의 나침반’을 떠올렸다. ‘포기하지 않는다’는 의지. 나침반은 미세하게 떨렸지만, 이 복잡한 미로 속에서 그가 집중해야 할 실타래를 향해 바늘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는 실타래의 엉킨 부분을 풀기 시작했다. 손끝으로 빛나는 실을 만지자, 따뜻하면서도 아련한 감정들이 밀려왔다. 어떤 매듭은 쉽게 풀렸지만, 어떤 매듭은 굳게 묶여 풀리지 않았다. 그 매듭을 풀려고 노력할수록, 하오빛은 그 연인들이 겪었던 고통과 좌절을 고스란히 느꼈다. 그들의 상처가 그대로 그의 마음을 찔렀다. ‘시기심의 덩굴’은 더욱 거세게 그를 덮쳐왔다. 하오빛은 덩굴을 피하며 매듭을 푸는 데 집중했다. ‘자신을 믿어. 남과 비교하지 마.’ 그는 하오빛 라디오에서 자신이 수도 없이 강조했던 말들을 되뇌었다. 그의 내면에서 ‘자기 확신’의 에너지가 샘솟는 것을 느꼈다.
그 에너지가 그의 손끝에 모이자, 덩굴을 막을 수 있는 작은 방패가 손에 쥐여졌다. ‘공감의 수정 방패’였다. 이 방패는 하오빛이 진심으로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할 때만 발현되는 아이템이었다. 방패로 덩굴을 막자, 덩굴은 ‘지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일시적으로 물러났다.
하오빛은 ‘공감의 수정 방패’로 덩굴의 공격을 막아내며 필사적으로 매듭을 풀었다. 그의 집중력이 극에 달하자, 미로의 벽에서 흘러나오던 부정적인 속삭임들이 점차 잦아들었다. 마침내 마지막 매듭이 풀리는 순간, 엉켰던 실타래가 서서히 펴지면서 원래의 영롱한 빛을 되찾았다. 실타래는 다시 팽팽하게 이어져 미로의 벽 사이를 가로질렀다. 실타래에서 흘러나오는 온기가 미로 전체를 감쌌고, ‘시기심의 덩굴’들은 힘을 잃고 스르르 사라졌다.
의식이 현실로 돌아온 하오빛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았다. 피곤했지만, 마음속은 묘한 평온함으로 가득 찼다. 다음 날 아침, 출근길 버스에서 하오빛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며칠 전 그 연인이 버스 정류장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여자의 얼굴에는 희미하지만 분명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다행이다.”
하오빛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의 노력은 아무도 모르게, 하지만 분명하게 현실에 작은 변화를 가져온 것이었다. 이데아의 저편, 그곳에서 벌어지는 보이지 않는 싸움이 세상을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다시금 깨달았다. 하지만 동시에, 수없이 많은 실타래 중 겨우 하나를 풀었을 뿐이라는 사실이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이 거대한 미로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실타래를 되돌릴 수 있을까? 그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의 마음속에는 이제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선, 이 불가사의한 세상에 대한 책임감이 조금씩 싹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