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일곱에 다시 배우는 삶의 우선순위
세상에 없던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하고, 숫자로 가득한 전략 기획서를 쓰며 10년을 보냈다. 나의 언어는 늘 단호했고, 결과는 효율적이어야 했으며, 모든 계획은 오차 없이 실행되어야 했다. 농업학을 전공하며 씨앗을 뿌리고 결실을 기다리는 인내를 배웠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내 커리어의 텃밭에서는 한 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주의자로 살았다.
그러다 잠시 멈춤의 시간이 찾아왔다. 10년간 앞만 보고 달렸던 궤도에서 내려와 숨을 고르던 중, 예기치 못한 '변수' 하나가 내 삶에 뛰어들었다. 길 위에서 마주친 고등어 무늬와 삼색이 섞인 작은 생명. 길 고양이를 구조하며 나는 처음으로 기획서대로 되지 않는 삶의 온기를 느꼈다.
전략적인 분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일상을 채우기 시작했다. 재경관리사 강의를 들으며 복잡한 세법과 재무제표를 파고들다가도, 곁에서 낮잠을 자는 고양이의 숨소리에 마음의 정렬이 다시 맞춰지는 기분. 효율성이라는 잣대로만 보면 '비효율'의 극치일지도 모르는 이 돌봄의 시간이, 역설적으로 나에게 가장 필요한 '전략적 휴식'이었음을 깨닫는다.
이제 나는 인생의 다음 챕터를 기획하고 있다. 37살, 누군가는 늦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나는 이제야 비로소 나만의 진짜 이야기를 써 내려갈 준비가 된 것 같다. 화려한 커리어의 성취뿐만 아니라, 잠시 쉬어가는 시간의 막막함, 새로운 가정을 꾸리기 위해 용인에 집을 구하며 느끼는 설렘, 그리고 작은 고양이와 함께 배우는 '함께 사는 법'까지.
브런치라는 공간을 통해 내가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명확하다. 빈틈없는 기획자로서의 삶과 그 이면의 무구한 일상이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불협화음, 그 속에서 찾아낸 나다운 균형점들이다. 나의 글이 완벽한 정답을 찾는 이들에게는 '조금은 틀려도 괜찮다'는 위로가, 매일 치열하게 버티는 직장인들에게는 '나를 돌보는 작은 틈'이 되길 바란다.
인생은 결코 한 번의 기획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끊임없이 수정하고 보완하며, 때로는 예상치 못한 고양이 한 마리에 전체 계획이 수정되기도 하는 것. 그 '수정 중'인 과정 자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의 문장으로 증명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