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을 하고, 아이가 데이케어를 마친 후 집에 오는 오후 다섯 시. 그즈음에 항상 느끼는 감정이 있다. 아이를 얼른 보고 싶은 마음, 꼭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스무 번은 말하고 싶은 마음, 오늘도 잘 지내줘서 엄마 아빠가 열심히 일 할 수 있었다고 빨리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 등. 세상에 나온 지 세 해도 되지 않아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아이의 등을 반드시 내 손으로 따뜻하게 쓰다듬고 싶은 마음이 몽글하게 올라오는 그 시간.
그날도 어김없이 아이가 오후 다섯 시에 집에 왔다. 오자마자 얼른 신발과 양말부터 벗겨주는데, 하루종일 양말과 신발을 신고 있어야* 하는 아이가 그날따라 괜히 짠했다. 살짝 부은 발에 신발이 조금 타이트하게 꼈는지 자국이 나있어 더 그런 마음이 들었나 보다. 통통하고 귀여운 발을 매만지면서 "우리 애기 발에 신발 자국이 났네. 8시간 동안 얼마나 답답했을까. 나도 그렇게 8시간 있으면 답답한데..." 혼잣말을 했다. 한탄조의 어른스러운(?) 혼잣말이라, 아이가 듣거나, 들었어도 이해할 거라고 생각하며 말한 건 아니었는데 아이는 말했다.
"어쩔 수 없지!" [어쩔쑤업찌]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이었다. 순간 "어쩔 수 없지"의 의미가 뭘까 생각했다. 남편과 내가 자주 쓰는 말이 아니었기에 그걸 어디서 배웠을지는 추측할 수 있었다 (물론 '뽀로로' 아니면 '타요'). 그렇지만 아이가 어떻게 이 상황이 '어쩔 수 없'는 것임을 인지하고 있는 건지 - 그것이 마치 뽀로로 친구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머리가 비상한 에디가 말했을 법한 "어쩔 수 없지!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의 느낌인 건지,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가 말했을지 모르는 "어쩔 수 없지. 포기할 수밖에..."의 느낌인 건지 - 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너무나 맞는 말이긴 했다. 맞아, 어쩔 수 없지. 이 상황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하지.
아이의 그 한 마디는 내 마음에 꽤 오래 남았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알고 인정하고 수용했을 때가 언제였었는지 생각하게 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 어쩔 수 없는 사람, 어쩔 수 없는 시간. 나는 내 주위의 것들을 얼마나 받아들이고 살았고, 또 얼마나 외면하며 기를 쓰고 바꾸려고 했는지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그 뒤로 가끔 아이의 이 한 마디를 마음속에 그대로 떠올려본다. 그래, 어쩔 수 없지.
- 2022년 9월 어느 날
(* 아이가 다니는 데이케어는 혹여나 맨발로 다칠 것을 우려해 신발을 신고 있어야 하는 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