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느끼는 감정과 내가 뱉는 말이 다를 때가 있다. 사실, 내가 느끼는 감정과 뱉는 말이 같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경우가 더 많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상대방을 존중하는 (혹은 눈치 보는) 법을 배우면서, 때로는 나의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말을 마음과 동일하지 않게 표현한다. 내뱉어지는 말은, 스며져 나오는 감정을 숨긴다. 뒤로 일단 보내놓고는, 말로 감정을 정리하기도 한다. 마치 애초에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나의 건조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얼마 전에 아이를 목욕시키고 마무리하려고 하는데, 아이가 말했다. "엄마, 어제 미안했어." [엄마어제미안해떠] 정확히 무슨 의민지는 모르겠지만 그 모습이 마냥 귀엽고 마음을 흐물(?) 거리게 한 효과로 아이를 한번 꽉 안아주고는 왜냐고 물었다. 물론 아이는 설명까지 하지는 못했다. 나는 아이의 머리를 말려주면서 그 "어제 미안했어"라는 말에 온갖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니, 어제 미안했어-라니? 미안해-도 아니고, 그냥 미안했어-도 아니고, '어제' 미안했어-라니. 굳이 이 말을 지금 왜 하는 거지?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든 걸까, 아니면 어제부터 계속 미안했다가 지금 얘기가 나온 걸까, 그것도 아니면 그냥 지금 갑자기 어제 생각이 났고 그게 미안했던 걸까?
그런데 아까 왜 엄마한테 미안했다고 한 거야?
몇 분 뒤 다시 한번 물어보았지만 역시나 아이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그런데 엄마의 직감상, 그냥 그 순간에 아이는 그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혹은 무슨 이미지로 인해 어제 벌어졌었던(?) 미안했던 어떤 상황에 대해서 연상이 되었던지. 이래도 저래도 분명 미안함을 느끼긴 한 것 같았다. 그 순간의 감정이 궁금했지만, 나는 감정과 말의 농도가 같아 보이는 이 순수한 아이의 말을, 또 그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머리를 다 말리고는 아이는 또 말했다. "엄마, 목욕할 때 재밌었어." [엄마모교칼때 재미떠떠] 이 어눌하고 짧은 한 마디는 딱 그만큼의 무게로 나의 마음을 건드렸는데, 그 힘은 꽤 오래갔다.
나는 그다음 날부터 남편에게 짧지만 내 감정을 그대로 이야기해 보기로 했다. "나 그때 그거 너무 재밌었어." "그때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 "그거 정말 고맙더라." 그냥 생각나는 대로 툭툭 끄집어낸 말인데, 마침 서로에게 조금은 지쳐있다가 마지못해 소강상태에 들어갔던 우리 사이를 조금은 부드럽게 만들어주었다.
- 2022년 10월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