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려상

by 김재희

가볍고 싶다. 작은 숨에도 팔랑팔랑 날아가버릴 만큼 가볍고 싶다. 쓰지 말라는 명령들을 어기고 흔하디 흔한 삼류소설보다 못해지는 그런 가볍디 가벼운 글을 쓸 것이다. 이런 글만 쓸 것이다. 잘 모르는 사람의 이름과 말을 가져다 붙이지 않을 것이다. 요즘 읽는 민음사의 매거진 '한편'은 최악의 글을 쓸 사람으로 서울대 인문대생을 섭외한다. 안 읽힌다 이 말이다. 난 이제 머리 짜내며 어렵게 시 쓰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내 머리는 그렇게 타고나질 않았다. 이제야 서울대생이 되었는지 내가 초라하다. 비대했던 자아의 껍데기가 흉하게 남아서 앞으로 능력 없이 빽빽대는 교수 또는 무언가 또는 아줌마가 될 것이다. 태국말로는 오리, 날고 걷고 헤엄치지만 그 어느 것도 깊지 않은 그런 인간이 될 것이다. 최고의 선택도 하지 않을 것이고 최선을 언제나 다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냥 살 것이다. 집도 안 치울 것이다. 힘들어서 침대에 웅크리고 무릎에 머리를 묻을 것이다. 이 놈의 인생은 그리 힘들지는 않지만 버거워서 그렇다.


어쩌면 이미 가벼운 사람일지도. 온실 속 화초 정도면 가볍지 않은가. 무엇에 대한 가벼운 글을 쓰려고 이 노트패드를 꺼냈는지도 망각한 인간. 무겁게 비가 오는 날 밤에 에어컨을 틀고 앉아있을 수 있다. 이전에 몸담았던 문예창작동아리 창문의 '창밖' 전시 팸플릿을 읽고 있었다.그 전에는 나의 낙서된 종이들을 정리하다 펀치가 없어 그만두었다. 낙서는 왜 남겨두어 무엇에 쓰이게 하려고.

이 낙서들도 가볍고 가볍고 가볍고.

전부 가볍고 가볍고, 아 나의 마음만 무거웠지 나는 가벼웠구나. 어디선가라도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나를 가라앉히는구나. 가볍게 주어지는 일상적인 칭찬은 부족하고 더 무거운 감투를 탐하는구나. 한 번이라도 그러면 좋으련만. 그래서 남들보다 날 자주 우위에 두려고. 정말 우위에 있다 믿어버려서 꼴사나운 걸 넘어서 안쓰럽다. 비가 와르르. 내가 시에 썼던 와르르라는 말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의 시와 겹쳤다. 흔하고 글을 망치는 흉한 말, 이라고 했었다. 내가 흉한 걸. 시멘트 턱에 악 소리 내며 쓸린 내 발등처럼 인상 찌푸려지는.




사실은 예술가가 되고 싶다. 그냥 예술가 말고 아주 위대한 놈이. 나의 일기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자기 평생을 바쳐 분석해줄 사람이 나타날 그런 예술가. 그래서 계속 이런 토막들을 못 버리고 주섬주섬 모아두는 게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어엄청난 학자가 되고 싶다. 사람들이 불러대서 동분서주하며 맛깔나고 감동적인 발표를 하고 획기적인 발견을 담은 논문을 찍어내고 상을 휩쓰는 그런 학자. 누군가가 되고 싶은데, 열심히 자기 삶을 살았을 뿐인데 어느날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나의 삶을 모두가 궁금해하는 누군가가 되고 싶다. 늙은이들이 치의신보 기자를 불러 앉혀다가 장황하게 지 인생을 풀어놓는 건 꼴볼견이지만 난 그러고 싶다는 말이다. 난 젊으니까 정점을 향해 기어올라가고 싶다는 말이다. 아득바득 그러나 겉으론 평온하게 그 짓거리를 하고 싶다는 말이다. 욕심덩어리가 내 안에서 곰팡이처럼 자라고 있었다.

나는 관악에서 그런 걸 키웠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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