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어제 먹고 남은 파네쿠켄이었다. 어제 문득 나의 남은 방학을 기념해줄 팬케이크가 먹고 싶었다. 팬케이크라는 서양의 서민음식은 밀가루에 우유랑 계란만 들어간 주제에 비싸긴 드럽게 비싸다. 직접 해먹고 말지. 해 먹는 김에 한국에 안 파는 네덜란드식 팬케익을 해먹어주지. 그렇게 세 장의 먹다 남은 파네쿠켄이 냉장고에 들어섰다. 살기 위해 등록한 필라테스 학원에 가기 전 냉장고에서 파네쿠켄을 꺼냈다. 냉동실의 얼린 바나나도 꺼냈다. 팬케이크에는 생 바나나를 곁들이기 마련이지만, 어제 말랑하게 후숙된 바나나를 골라 사들고 오는 길에 그것들을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뜨려버렸다. 말랑한 것들은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렸기에 냉동실에 얼릴 수밖에 없었다. 차가워진 파네쿠켄은 따뜻하고 밍밍할 때보다 맛있었다.
아침 식사에 여름 과일에 관한 에세이를 곁들여 읽었다. 내 신발장 선반 위에는 읽다 만 시집들이 먼지처럼 쌓여 있다. 아침은 모름지기 가뿐하게 시작해야 하지 않겠나. 마음을 가볍게. 모든 것을 평범하게. 서점 구석의 시집 코너를 무시하고 에세이를 샀고, 진부한 삼류 영화를 보고 특별하지 않은 하루를 보낸다. 멋지기보다 그저 행복하고 싶다. 저녁의 한구석에서 눈을 반쯤 뜨고 쓰는 일기장이 나의 가장 잘 쓴 작품이더라. 용을 쓰며 골백 번 고쳐 쓴 글들의 유통기한은 반년이 채 안되더라.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올 과학 연구의 선구자는 모르겠고, 연구의 재미를 오래 느끼며 살고 싶다.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출산이란 것도 해보고, 가능하면 작은 화단이나 발코니가 있는 햇살 좋은 집을 갖고 싶다.
자기 자신에게 더 이상 엄격하지 않아지는 놀라운 변화는 성숙의 증표일까? 아니면 암기로 점철된 쉼 없는 공부와, 그런 생활과는 상반된 그저 그런 성적표의 부산물일까. 어쨌든 나는 오래도록 지녀왔던 허황된 꿈을 잃었다. 끊임없는 동경의 굴레에 빠진 자아비대증 명문대생은 그만두고 평범한 사람으로, 진부한 행복을 찾고 있다. 학문으로써 글로써 나의 가치를 증명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행복하게 여름의 끝자락에서 이런 싱거운 글을 쓰고, 저녁이 되면 콩국수를 먹으러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