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꿈을 포기한 나는 무엇이 되나

생명과학 연구자가 되고 싶었다

by 김재희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나를 동경한다. 내가 정말 멋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나는 멋이 계속 있을 수 있을까? 내 고딩시절의 멋은 확고한 목표와 그에 따른 철저한 자기관리에서 왔다. 도서관에서 읽은 책 한 권 때문에 느닷없이 기생충의 매력에 빠졌다. 기생충학은 의대에서만 배운다고 했다. 의대에 가기로 결심했다. 또는 서울대에 가기로 결심했다. 생명과학을 공부하고 연구하지 않으면 내 눈 속에서 활활 타는 불꽃이 죽어버릴 것 같았다. 나의 삶의 목표는 줄곧 연구였다. 정말 연구였다.

의대는 전부 떨어졌고 대신 한국에서 기초연구가 가장 활발한 치대에 입학했다. 남들 다 쉬고 노는 예과 시절, 나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허송세월할 틈이 없었다. 나에겐 지금이 진짜 공부의 시작이었다. 대학생활은 황새들을 쫓느라 다리 찢어지는 날의 연속이었다. 남의 과 전공수업, 세미나, 학술대회, 강연을 챙겨들었다. 언제나 바라볼 곳이 있었다. 짝사랑의 대상도 물리학 잘하는 선배, 대단한 것들을 이루고 있는 사람이었다. 조급해하는 사람들을 홀로 좋아했기에 나도 내 모습에 만족하지 못한 채 전전긍긍했다. 뜬금없이 울고 싶은 날이 많았지만, 이렇게 순수한 즐거움으로 가득한 삶에서 왜 울고 싶은지는 몰랐다.


3년의 예과 끝에 드디어 제대로 다져진 길을 달릴 시간이 왔다. 첫 학기에 쉴 틈 없이 기초 생물학, 치아형태학, 해부학, 재료학 등을 머리에 욱여넣었다. 그래도 즐거웠다. 처음으로 황새가 되는 길에 선 것 같았다. 주어진 공부만 하면 내가 성장하는 것이 보였다. 어제 6번 대구치의 형태를 모르던 사람이 오늘은 아는 사람이 되었다. 앞길이 훤히 내다보이기 시작해 기뻤다. 드디어 나도 연구자가 되는 길을 찾은 것 같았다.


첫 여름방학이자 졸업 전까지 4번 밖에 없는 소중한 방학을 나는 연구에 할애했다. 관심 있던 분야를 연구하는 교수님에게 대뜸 찾아가 당신이랑 학생 학술대회에 나가고 싶다고 했다. 받아주셨다. 랩실에서의 첫 주, 실험하는 법이라고는 몰랐기에 박사님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배웠다. 모든 것을 흡수하려고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집중했다.

연구는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았다. 박사들은 색이 바래있었고 나의 학생 학술대회에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증명해가는 과정이 없었다. 다른 박사님이 닦아놓은 길을 따라가는 일이거나, 우리가 창조한 쓰레기더미 데이터에서 건져낸 조악한 덩어리를 어떻게든 다듬어 밖으로 내보이는 일이었다. 학부생 연구가 다 그렇겠지만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학술대회의 결과조차 볼품없었다. 실패의 연속이었다. 연구자가 된다고 누구나 반짝반짝한 일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 단상 위에서 빛나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나는 없었다. 빛나는 사람이 되는 법은 그 연구실에서 배우지 못했다.


이맘때 처음으로 '그냥 치과의사나 할까'라는 말을 입 밖으로 뱉었다. 나에게 있어 '그냥 치과의사'라 함은, 낭만적인 꿈이라고는 없이 돈을 벌어 남들 보기 좋게 강남에 집을 사는 것 따위가 인생의 전부가 되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이때까지 내가 본 현직 선배들의 이미지는 그랬다. 치과의사나 될까 라는 말을 내뱉은 날 나 스스로가 실망스러워서 밤에 울었다. 현실과 타협하고 안주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너도 결국 벽에 부딪히면 나처럼 될거라는 말을 하는 꼴사나운 어른은 되기 싫었다. 아무도 뭐라한 적은 없지만 내 안에서 끊임없이 가상의 실망을 만들어 마음을 괴롭혔다. 나를 이 자리에 있게 만든, 내 등 뒤에 조명을 비추어주었던, 친구들이 나를 동경하게 했던, 연구자라는 꿈을 포기한다면 나에게 남는 것이 무엇일까.


나를 잃은 것 같다는 감각. 연구를 포기한 나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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