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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세영 Jan 28. 2021

이태원 클라쓰, 마현이의 용기


얼마 전 넷플릭스를 통해 애태원 클라쓰라는 드라마를 정주행 해서 보았습니다. 작년(2020년) 초반에 방영되었던 드라마인데, 원작이 웹툰이었네요. 이 드라마 흡입력이 장난이 아니더군요. 오늘은 이태원 클라쓰의 명장면을 남겨보려고 합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역시 마현이의 최강 포차 결승전이었습니다. (이 드라마 안 보신 분들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장근수는 요리경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 (상대방의 약점을 공격하는) 비열한 수 한 가지를 생각해 냅니다. 바로, 단밤 포차의 마현이가 트랜스젠더라는 정보를 공개한 것입니다. 최종 결승 당일날 마현이가 등장하자 대회장은 술렁거리기 시작합니다. 그녀를 기분 나쁜듯한  표정으로 힐끗힐끗 쳐다보는 사람들. 그들은 그녀의 정체에 대해 속았다는 듯이 수군거립니다.


"트랜스젠더래. 그동안 뻔뻔하게 속여왔던 거야?"라는 소리를 들은 마현이는 당황하며, 일순간 무너져 내립니다. 시합장을 뛰쳐나가 숨어서 흐느끼고 있는 마현이를 찾아낸 박새로이. 그는 부들거리며 떨고 있는 마현이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합니다.


"괜찮아. 너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용감한 사람이야. 누가 뭐라든

넌 가장 용감하고, 예쁜 여자야.

그냥 단밤으로 돌아갈까?"


마현이는 눈물을 삼키며 이렇게 대답합니다.


"괜찮아요. 걱정 안하셔도 돼요.

알다시피 저 되게 용감하잖아요. 도망치지 않을 거예요.

"맛으로 납득시킬 거예요. 할 수 있어요."


"도망쳐도 돼. 아니지. 도망이 아니지.

잘못한 게 없잖아. 저딴 시선까지 감당해야 할 만큼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야.

네가 너인 것에 다른 사람을 납득시킬 필요 없어. 괜찮아."



https://www.youtube.com/watch?v=7A4d529KG6U



진심으로 자신의 편에서 이야기해주는 새로이의 단단하고 따뜻한 말에 그녀는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아냅니다. 한 동안 폭풍 오열하는 마현이를 보며 저도 따라 울었습니다. 저도 함께 위로를 받는 듯했습니다.


그녀는 무참히 흔들렸고, 무너져 내렸지만 눈물을 닦고 다시 일어섰습니다.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 숨어버리고 싶었지만 결국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대회장의 문을 열고 나타난 그녀의 모습은 누구보다도 당당하고 멋있었습니다. 쏟아지는 불빛과 따가운 시선들을 마주하며, 그녀는 의연하게 자신의 무대에 오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트랜스젠더입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 우승하겠습니다." 그녀는 숨지 않았고, 자신의 무대 위에 서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냈습니다.


그녀가 경연장에 들어가기 전에 이서에게 전화가 왔었습니다.


"언니 맘 많이 상했지?

오늘 아침에 시집을 하나 읽었어.

언니가 떠오르더라. 지금 이 상황에 언니한테

이 시를 들려주는 나는 나쁜 년이야."


나는 돌덩이.

뜨겁게 지져봐라.

나는 움직이지 않는 돌덩이.


거세게 때려봐라.

나는 단단한 돌덩이.

깊은 어둠에 가둬봐라.

나는 홀로 빛나는 돌덩이.


부서지고 재가 되고 썩어버리는

섭리마저 거부하리.

살아남은 나.

나는 다이아.



https://www.youtube.com/watch?v=pQY49Tvxw0g






이 장면이 감동의 쓰나미였어요. 그녀가 더 이상 다른 사람을 납득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진실해지기 위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는 용기를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진정 아름다운 다이아몬드였습니다.


사회의 기준과 잣대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이 모습이 나다. 나는 이런 나를 더 이상 숨기지 않을 것이며, 이런 나로 살겠다"라는 자기 선언 같았습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진심으로 솔직하게 표현하는 용기에 누가 감히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누가 함부로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내려놓고,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는 용기만큼 아름다운 것도 없구나 싶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고, 좋은 사람이고 싶고, 괜찮은 사람이고 싶다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숨긴 채 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사회의 기준과 잣대에 맞추기 위해, 내가 아닌 모습을 자꾸만 포장해서 보여주려고 애쓰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점점 더 진정한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진정한 자신의 가치를 깨닫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갈 수 있기를...

진정한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를 갖기를...

다른 누군가를 납득시키는 삶이 아닌, 자기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 살아가기를...




누구도 저와 제 사람들을 건들지 못하도록
제 말과 행동에 힘이 실리고 어떠한 부당함도,
누군가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제 사람의 주체가 저인 게 당연한,
소신에 대가가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박새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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