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동화책 한 편을 읽어주고 굿 나이트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솔이는 먼저 잠이 들었는데, 원이는 잠이 잘 오지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원이도 이제 자야지. 잘 자."
"네. 엄마도 잘 주무세요!"
"그래. 고마워. 엄마도 잘 잘게. 내일 아침에 8시 50분 하고 9시에 알람이 울리지? 알람 잘 맞춰두었으니까 알람 소리 들으면 일어나자!"
"네. 알겠어요. 엄마도 이제 주무세요."
"그래. 고마워. 엄마는 책 조금만 보다가 잘게. 책을 읽다가 자면 잠이 잘 오거든."
작은 스탠드를 켜고 이불에 엎드린 채, 저는 책을 읽을 자세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근데 말이에요. 엄마 요즘 어디 아픈 거 아니죠?"
"왜? 엄마가 어디 아픈 거 같았어?"
"그냥요. 엄마가 오늘 계속 피곤하다고 했었잖아요. 요즘 엄마가 자꾸 피곤해하는 것 같아서요."
"우리 원이가 엄마 걱정했구나. 엄마가 피곤해해서 어디 아픈 건 아닌가 하고 말이야."
"네. 엄마가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아프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엄마, 운동도 열심히 하고, 아프면 병원에 검사도 하러 가고 그러세요."
"그래. 우리 쌍둥이들과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려고 엄마가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명상도 하고, 운동도 하고 있어. 엄마가 잠을 좀 덜 자서 피곤했던 거야."
"네. 그러면 잠도 좀 많이 자요. 내일은 피곤하면 낮잠도 많이 자고 그러세요. "
"그래. 알겠어. 엄마가 잠도 많이 자고 그럴게. 원이가 엄마를 걱정해서 이렇게 다정하게 이야기해주니까 엄마가 마음이 참 좋네. 엄마가 피곤하면 잠도 푹 자고, 운동도 열심히 해야겠다. 원이가 이렇게 신경 써주니까 말이야."
"네. 엄마, 그리고 아빠도 걱정 되는게 있어요. 아빠랑 피부과에도 꼭 같이 가요. 아빠 얼굴에 뭐가 난 거 빨리 제거해줘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아빠는 치과에도 가봐야 될 것 같아요. 엄마가 같이 가주세요."
"그래. 아빠랑 피부과에도 가고 치과도 곧 갈 거야. 또 걱정되는 거 있니?
"네. 아빠가 하얀 거(막걸리)랑 노란 거(맥주)를 많이 마시면, 걱정이 될 때가 있어요."
"그랬구나. 오늘 보니 원이가 다 컸네. 엄마, 아빠 걱정을 이렇게 다 하고 말이야. 엄마, 아빠 걱정해줘서 고마워. 건강 잘 챙길게. 또 하고 싶은 말 있니?"
"아니요. 엄마. 이제 잘게요."
"그래. 고맙다. 원이 사랑해."
"네. 엄마. 저도 사랑해요. 잘 자요."
어젯밤 아이와 나눈 짧은 이야기. 그냥 소소한 대화였지만 마음이 참 정겹고 따뜻했습니다. 조그맣고 자기밖에 모르던 아이가 어느덧 이렇게 커서 엄마 걱정도 하고, 아빠 걱정도 하네요. 아이에게 짐을 주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렇게 걱정해주는 마음이 어찌나 이쁘던지요.
그 마음을 표현하는 말투는 또 어찌나 다정하고 상냥하던지요. 그 다정함에 마치 꿀이 묻어있는 것처럼 달콤했습니다. 고단했던 마음까지 스르르 녹여주는 듯하더라고요. 정말 대단한 것도 아닌 잠자리 대화였는데 말이죠. 서로의 마음을 교감하며 대화를 나누는 시간들이 아이를 키우며 경험하는 보물 같은 순간들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주로 집콕하며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는 아이들. 온라인 수업이 재미없고 힘들어서 틀어놓고 딴짓을 부리는 아이들. 밖에 나가서 맘껏 뛰놀지 못하는 아이들. 친구들 하고의 교류가 끊어져 자기들끼리만 온종일 보내는 아이들. 유튜브를 보거나 자신들의 유튜브 채널을 편집하는 게 낙인 아이들. 가끔씩 밖에 나가는 날에는 절대 마스크를 벗지 않는 아이들. 이 아이들의 지난 1년을 떠올리며 가슴이 짠해질 때가 많습니다.
어쩌면 잃어버린 시간들 같은데, 그 속에서도 아이들의 몸과 마음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네요. 엄마, 아빠를 생각하는 마음도, 자신의 마음을 예쁘게 표현하는 말솜씨도, 때때로 소모적인 다툼을 피하기 위해 협상을 하는 지혜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징징거리거나 말싸움을 벌이는 날도 많고, 똘끼 충만한 행동으로 입을 딱 벌어지게 하는 날도 여전히 있지만 말입니다.
따뜻한 말 & 친절한 말의 영향력
아이들이 초등 2학년에 올라갈 때 키즈 워치를 채워줬습니다. 엄마가 많이 돌아다니는 일을 하고 있기도 했고, 아이들이 학원을 다니기도 해서 필요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다지 많이 사용하지는 못했습니다. 특히 작년에 코로나 이후로는 아이들이 학원에도 가지 않고, 저도 주로 재택근무를 하니 별로 필요가 없더군요.
그렇게 사용하지도 않는 키즈 워치였지만 계약기간을 채워서 해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사실 진작에 해지하고 싶었지만, 약정 위약금이 더 많아서 사용료를 부담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에 대해 불만이 좀 있는 채로,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했습니다. 아이들의 키즈 워치를 해지하는 방법에 대해 문의를 했고, 해지를 하는 절차에 대한 안내를 받았습니다.
전화응대를 해주시는 분이 어찌나 성심성의를 다해 친절하게 대응을 해주는지, 지금까지 불필요한 돈이 나간 것에 대해 약간의 위로 내지는 보상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상담하시는 분이 잘못한 것도 아니고, 계약한 대로 제가 물어야 할 돈이었으니까요.
상담이 끝나고 절차를 밟아서 해지가 되었고요. 문자가 왔는데, 그 문자의 내용에 참 성의가 있더라고요. 문자를 받고 한동안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이지만, 친절한 몇 마디의 말이 제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어주더군요. 그냥 인사치레로 넘기기엔 조금 다른 특별함이 있었기에 그랬던 것 같아요. 그건 바로 남다른 존중과 진정성이었습니다.
서로에게 친절의 씨앗을 심을 수 있다면
요즘 고객센터에 전화를 하면 이런 멘트가 나오잖아요. "지금 연결해드릴 상담원은 누군가에게 소중한 가족입니다." 그런 멘트를 들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상대방도 수많은 고객들 상대하느라 정말 힘들겠구나. 나의 불편을 해소해주기 위해 애쓰는 분들인데, 나 또한 그들한테 좀 더 친절하게 설명하고, 정중하게 요청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더라고요.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존중받아야 마땅하고, 특별하고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대면의 세상에서 오히려 인간다움과 친절의 가치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는 어쩌면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바이러스를 주고받을 수도 있지만, 가장 소중하고 좋은 것들을 주고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최근에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마음에 남아서, 한동안 가슴이훈훈했거나 왠지 힘이 났던 적이 있었나요?
우리에는 누구나 다정하고 따뜻하며 친절한 마음의 씨앗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만나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존중과 진정성을 가지고 그 씨앗을 나누어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그런 친절한 마음의 씨앗을 심어줄 수 있기를. 그 좋은 씨앗들을 퍼뜨려서, 세상이 좀 더 아름다운 말들로 가득 찰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근로기준법의 산업 안전 보건 기준에 관한 규칙 제669조(직무스트레스에 의한 건강장해 예방 조치)에 의해 사업주는 감정노동(고객응대) 근로자를 고객으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상담원들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 어느 가정의 남편이며 아내이고, 어느 부모의 아들이며 딸이고, 어느 아이의 아빠이며 엄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