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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세영 Jan 09. 2021

조금 돌아서 가도 괜찮아요.

돌아서 가는 길의 의미와 가치


지난주에 가평에 있는 스파펜션에 가족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겨울엔 역시 스파펜션이 답이다! 싶을 정도로 따뜻한 힐링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요 며칠 아이들과 집에서만 보내다가 모처럼의 콧바람에 어찌나 기분이 신선해지던지요. 가평의 맑은 공기를 허파 가득 들이마시며, 2% 부족했던 산소를 공급받은 기분이랄까요. 마음에 들어왔던 시름과 고민들이 훌~훌~ 흩어져 날아가는 듯했습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지만, 때때로 일상을 벗어날 때 비워지거나 얻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내 안에 똬리를 틀었던 낡은 감정들이 정화되고, 좀 더 여유 있는 마음과 시각을 회복하게 되는 것. 그것이 여행의 묘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짐을 싸고, 멀리 이동을 하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그렇게 집 떠난 곳에서 온갖 정보나 바쁜 일들에 방해받지 않으며,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전에 한 번 더 스파를 하고, 전날 남긴 고기와 잔슨빌 소시지, 야채 등을 다 때려 넣고 끓인 된장찌개는 얼마나 꿀맛이 던지요. 든든하고 맛있는 아침식사를 하고, 여유 있게 출발했습니다. 





집으로 출발 후 한 시간쯤 지난 뒤부터 눈꺼풀이 내려앉기 시작했습니다. 뒷좌석도 조용한 걸 보니 아이들도 잠이 든 모양이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취침 모드에 들어가기 전에 내비게이션을 확인해보니, 한 시간이 남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곤 약 한 시간 정도를 잔 것 같았습니다. 


집에 다 왔겠거니 싶었는데, 가도 가도 끝이 안나는 묘한 느낌에 슬며시 눈을 떴습니다. 헉! 순간 눈을 의심했습니다. 경기도 안산에 있는 집으로 오려면 경기도 외곽에 고속도로를 타다가 중간에 빠져야 되는데, 눈 앞에 보이는 풍경은 서울 한 복판이었습니다. 웬일인지 도로는 꽉 막혀있었고요.


남편이 길을 잘못 든 모양입니다. 순간 짜증이 올라왔습니다. 동시에 조수석에 앉아서 혼자만 쿨쿨 잔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더군요. 한동안 말없이 창밖만 바라보았습니다. 헐~ 집에 도착할 시간에 서울의 국회의사당이 보이는 게 웬 말이더냐. 그러면서 문득 든 생각. '어쩌면 우리는 인생도 이렇게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자꾸만 잘못되고 엉뚱한 길로 돌아서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이랬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우리는 둘 다 '길치'라서 어디를 가든 이렇게 길바닥에 시간을 뿌리고 다니는 재주가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온 18년의 인생도 문득 돌아보니, 참 많이 돌고 돌면서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이렇게 닮은 걸까. 마음이 살짝 무거워졌습니다. 


"길을 잘못 들었나 봐."라는 나의 말에, 남편은 중간에 빠지는 길을 놓쳤다고 담담히 이야기하더군요. 그 얼굴이 무척 피곤해 보였습니다. 내비게이션에는 집까지 한 시간이 남았다고 적혀있었습니다. 꼬박 한 시간을 돌고 돌았는데, 다시 또 한 시간을 가야 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었습니다. 한편 혼자 운전하면서 애를 썼는데 엉뚱한 길로 왔으니, 남편은 얼마나 더 속상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무렵, 아이들이 깨기 시작했습니다. 언제 도착하냐고, 배가 고프다고 성화인 아이들. 이제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보채기 시작합니다. 그 날은 월요일이었는데, 앞에서 사고가 났거나 공사를 하는지 대낮인데도 거북이 행렬이더군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옆길로 새기로 했습니다. 에라이~ 어차피 여행길인데, 뭐 좀 돌아가면 어떤가요.


광명 쪽으로 빠지니 상가지역이 나오더라고요. 생리적 욕구도 해소해주고, 식사도 하고, 천천히 차도 마셨습니다. 아이들은 다시 조잘조잘 거리며 웃고 떠들기 시작하고, 맛있는 식사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너무 맛있어서, '우리가 여기서 밥을 먹으려고 돌아왔나 보다'라고 이야기를 할 정도였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좋게 말하면) 초긍정인 것도, (나쁘게 말하면) 어리숙한 것도 닮은꼴일까 싶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많은 시간을 돌고 돌아도, 언제 그랬냐는 듯 잘 사는 것 같기도 하고요.


다시 길을 찾아 집으로 오는데, 쭉쭉 빵빵 길이 열렸습니다. 우리 가족은 흥겨운 노래를 불러가며 집에 도착했습니다. 역시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은 진리입니다. 뜻밖에 의도하지 않았던 길에서 우리는 잠시 멈추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길을 잘못 들어섰고, 한참을 헤맸지만 결국은 목적지(집)에 도착했습니다. 우리의 인생 여정도 그런 것 같습니다. 때때로 돌고 돌아서 지금 이 자리, 늘 똑같은 자리인 것만 같은 그런 (엿같은) 순간이 분명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언제나 새로운 길이 열려있고,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지 않을까요. 조금 늦었다고 해도 잘못될 건 없습니다.


가야 할 목적지가 분명하고, 소중한 사람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면, 조금 헤매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조금 천천히 가는 것도, 때로는 돌아가는 것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더 많이 연결되었고, 함께 웃었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니까요. 


어쩌면 우리 부부는 앞으로도 많은 시간을 길바닥에 뿌리게 될지 모릅니다. 그냥 가도 되는 길을 자꾸만 돌아서 가는 날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서로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돌아서 가도 괜찮아요. 뭐 좀 돌아서 가면 어떤가요. 결국엔 잘 도착할 텐데요. 당신과 함께 해서 언제나 고마워요."




빨리 가는 먼 길 vs 돌아가는 가까운 길


두 갈래의 길이 나타났을 때, 그는 성으로 가려면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길가에 있던 노인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두 갈래의 길 모두가 성으로 이어져 있다오. 왼쪽의 곧바로 뻗은 길은 빨리 가는 길이지만 먼 길이고, 오른쪽에 구불구불한 길은 돌아가지만 가까운 길이오."


그는 구불구불 비탈길로 이어진 오른쪽 길과 시원하게 쭉 뻗어있는 왼쪽의 길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참 복잡하게 설명해주는군. 어쨌든 다 성으로 간다 이거지. 그렇다면 빨리 가는 길로 가야겠다.'


그는 노인한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왼쪽의 길로 걸어갔습니다. 한 참을 내달리듯 걸어간 그는 마침내 성 근처에 도달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가요? 그 길은 성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그는 그 길을 벗어나서 성으로 들어갈 방법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성의 외곽은 아주 높고 두터운 벽으로 막혀있었습니다. 이리저리 들어갈 입구를 찾아보았지만, 그 어디에도 성으로 들어갈 입구를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젠장, 망할 노인네 같으니라고. 길이 막혔으면 막혔다고 알려주어야 할 것 아니야.' 그는 짜증을 내면서 어쩔 수 없이 원래 왔던 길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노인을 만났던 두 갈래의 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오른쪽의 굽이진 비탈길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길을 걷는 동안 주변은 점점 어둑어둑해졌습니다. 몸과 마음이 지쳐버렸지만 그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마침내 그는 성에 도착했습니다. 그 길은 성으로 바로 이어져있었습니다. 


그때서야 그는 노인의 했던 말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쭉 뻗은 길이 먼 길이고, 복잡하고 돌아가는 것 같아도 이 길이 가장 가까운 길이었구나. 돌아가는 길이 지름길이었구나.'





여러분은 지금 어떤 길을 걷고 계신가요?


우리 그럴 때 있잖아요. 빨리 가기 위해 이를 악물고 기를 쓰며 달려왔는데, 가장 중요한 것을 놓쳐버렸을 때요.  그것은 가족일 수도, 진정한 나 자신일 수도, 다른 중요한 무엇일 때도 있어요. 그럴 땐 빨리 달려온 게 무슨 소용인가요. 눈물을 머금더라도 다시 돌아갈 수밖에요. 어쩌면 조금 늦게 가더라도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과 함께 가는 것. 그게 가장 의미 있는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살다 보면 내가 가는 길이 자꾸만 헷갈리고, 돌고 돌아서 원점에 있는 것 같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 순간을 보낼 때,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요.


"돌아가는 길도 괜찮아. 인생에 정답은 없는 거니까. 어쩌면 이 길이 제일 좋은 길일지도 몰라. 많이 돌아온 덕분에 배운 게 있으니. 언제든 반드시 길을 찾게 될 거야. 나만의 길을."


당신이 걸어온 모든 길은 충분한 의미와 가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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