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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세영 Dec 03. 2020

오늘은 수능날! 마지막 학력고사를 추억하며..


오늘은 수능날이다. 아침 7시에 달리기를 하러 나가는데, 확실히 차들이 많았다. 집 앞에 있는 성포고등학교에서 수능시험이 치러지기에, 좁은 길이지만 경찰관 두 명이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다. 여느 날보다 두세배 정도 차량이 많은 듯했다.


날씨는 예상보다 쌀쌀하지 않았다. 몇 년 전부터인가부터 수능 당일날 춥다고 느껴진 적이 없다. 개인적으로 중요한 날의 날씨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반영된다고 믿는다. 예전에는 수능날마다 엄청난 한파가 몰아치곤 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긴장과 걱정으로 날씨까지 꽁꽁 얼어붙은 거라고 생각했었다.


올해는 전국 대학의 모집정원에 비해 고교 졸업생 비율이 67%에 불과해, 많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유치하느라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해마다 심해지고 있으며, 앞으로 많은 대학교가 문을 닫게 될 전망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우리나라도 독일처럼 등록금 걱정 없이, 가고 싶은 대학을 마음껏 골라서 갈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수능시험을 보는 날마다 한 번 더 우리나라의 교육개혁을 간절히 바래본다. 입시위주의 교육이 변해야 사회가 변하고,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마지막 학력고사 세대이다. 시험을 보러 가던 날의 기억이 어렴풋하면서도 아련하게 떠오른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학력고사 당일은 저 멀리 시베리아에서부터 칼바람이 불어오듯 매서운 날씨였다. 학생들은 수능으로 입시 시스템이 바뀌기 전 마지막 학력고사에서 무조건 통과해야 된다는 압박을 받고 있었다. 다음 해에 교과서도 바뀌기 때문에 재수를 하는 것도 가당치 않다고 생각했다.


원서는 시험 보기 전에 딱 하나의 대학만 고르고 골라서 넣을 수 있었고, 그 하루의 당락에 인생이 걸려있다는 메시지를 받곤 했다. 수많은 대학교 중에서 하나의 대학과 하나의 전공을 선택하기 위해 학부모들이 학교를 찾았다. 엄마와 함께 입시상담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담임 선생님은 엄마에게 나의 성품은 무조건 선생님이라며 끊임없이 교대를 권하셨다.


한 번도 선생님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이 없었다. 지금과 다르게 가르치는 것에 전혀 흥미가 없던 나는 "선생님은 되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왜 선생님이 되고 싶지 않니?" 하며 서운해하셨던 기억이 난다. 내적 갈등과 고민에 휩싸여 암울한 학창 시절을 보냈던 나에게 선생님은 "성품이 좋으니까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여러 번 해주셨다.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 생각 보니 나를 알아주신 선생님이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안산에 살고 있던 나는 시험 당일 5시 반 정도에 시작되는 첫 전철을 타기로 했다. 잠이나 제대로 잤는지 모르겠다. 깜깜한 새벽에 엄마와 함께 길을 나섰다. 뼛속까지 얼어붙을 것 같은 차가운 공기와 칼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차갑고 어둡기만 한 밤 같은 새벽에 내 곁에는 엄마가 계셨다. 그때 내 곁에 엄마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다.


5시 반 전철을 타고 거의 두 시간이 걸려 성신여대역에 도착했다. 내가 선택했던 대학은 성신여대 경제학과였다. 집을 떠나 멀리 가고 싶었고, 성적에 맞추어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는 것만이 목표였다. 전공에 대한 정보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몰랐다. 단지 사회에서 주입된 생각으로 인해 어쨌든 대학에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입시 하나로 인생이 결정된다고 믿던 시기였음에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커녕 공부할 분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 이름과 점수, 학과명만 보고 인생을 결정했다는 게 참 애석하고도 놀라운 일이다.




얼차려를 당하듯 덜덜 떨면서 대학교 교정을 올랐고, 심혈을 기울여 시험을 치렀다. 해가 짧아서 다시 어스름이 지는 시각에 엄마를 만났다. 엄마와 함께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칼국수를 너무나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단 둘만의 데이트, 둘 만의 외식이 그전에 있었을까 싶다. 아마도 그때가 처음이지 않을까. 엄마가 시험이 끝날 때까지 하루 온종일 나를 기다려주셨다는 게 너무 든든했다.


"엄마, 지금까지 뭐했어?"라는 물음에 엄마가 어떤 대답을 하셨는지 기억에 없다. 오로지 집 밖에 모르는 엄마. 어디 가서 커피 한 잔도 아까워 못 마시는 엄마. 밖에서 즐길 거리를 찾지 못하는 엄마인데, 도대체 뭘 하셨을까?


이 글을 쓰며 생각해본다. 나라면 커피숍도 가고, 그 당시 유행했던 만화가게도 가고, 미용실에 가거나 이런저런 할 거리가 많을 텐데... 엄마는 어디 가서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은 물론이고 돈 쓰며 즐기는 걸 못하시는 분이다. 도대체 뭘 하셨을까? 나중에 꼭 다시 물어봐야겠다. 지금 생각 보니, 갈만한 곳이라고는 딱 한 군데가 떠오른다. 아마도 은행에 앉아계셨을 것 같다.


깜깜한 새벽부터 다시 깜깜한 밤이 되어 돌아오기까지 엄마가 기다려주고 계셨다. 그래서 쌀쌀한 날씨에도 뭔가 따뜻하고 든든하게 그날을 기억할 수 있었다. 오늘은 수능날이다. 과거와 많이 변했지만 엄마들의 마음은 비슷하겠지.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아이가 제대로 잘 집중해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기를 빌고 있겠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는 안 다니겠다고 벌써부터 이야기하는 우리 아이들. 이 아이들의 미래가 궁금하다. 수능을 보던 그렇지 않던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인생에서 중요한 도전의 순간에 함께 해주고 싶다. 아주아주 춥고 깜깜한 고비를 지나는 순간에 아이가 든든한 마음으로, 자신이 헤쳐갈 도전과제를 통과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싶다.


오늘 수능 보는 학생들, 코로나로 인해 여러 가지 어려움과 변수가 있었던 아이들이다. 상황이 어찌 되었든 제대로 실력 발휘 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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