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1월 1일에는 까마득해 보이던 12월을 맞이하면, 내 삶의 조각들에 더 미련이 생긴다.
조금 더 둥글게 다듬어 놓을걸, 마음속에만 가지고 있을게 아니라 꺼내어 어떤 모양이든 내 손으로 다듬어 볼걸, 내 것과 너의 것을 비교하며 저울질하느라 정작 내가 받은 마음의 반의 반도 안 되는 조각을 아쉬운 듯이 내놓지는 말걸하는 미련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또 의도하지 않았든 의도했든 나의 날이 선 태도에 누군가가 상처받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내가 내 스스로를 너무 가혹하게 상처 주지 않았나 하는 후회들도 어지럽게 떠오른다.
늘 다정하게 살자고 다짐하는 이유가 실은 내가 너무 뾰족해서, 그런 내 모습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하기도 하지만 분명 다른 이유 하나는 다정한 사람들의 덕을 너무 많이 보고 살아왔고 다정한 사람들에겐 그 어떤 사람보다도 반짝반짝 빛나는 매력과 힘이 있기 때문이다. 더해서 다른 이에게 다정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도 진심으로 다정한 사람일 거라는 믿음도 있기 때문에 난 늘 다정함을 잃지 말자고 다짐한다. 여전히 가끔 어렵지만 스스로에게 한없이 다정하다 해도 어느 순간 무너지기 쉬운 세상 속에 살고 있다는 걸 깨달으면 죽는 날까지 노력해야 하는 부분인 것은 분명하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필연적으로 엮이게 되는 것이고 이를 통해 얻는 것도 있지만 잃는 것도 분명히 있다. 상대의 속마음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다정함이 간혹 본인을 후회와 절망으로 밀어 넣는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나 하나 다정하다한들 무자비하고 이기적인 인간들 사이에서 무슨 소용인가 싶을 수 있다. 확실히 요즘은 처음 보는 누군가에게 다정한 손길을 건넨다는 것이 때로는 온정을 가장한 불순한 의도로, 굉장한 용기로 여겨질 정도로 삭막하다.
하지만 인간은 분명 다른 인간 없이는 행복할 수 없다. 인간은 다른 인간과 다정함을 교환하며 더 행복하고 더 발전할 수 있다. 다른 인간의 도움 없이, 다정한 손길 없이 자라는 인간은 다른 이에게 다정함을 베풀 수 없다. 내가 만드는 다정함이 다른 이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고 위로가 되고 하루를 더 살게 하는 연료가 되는지 느껴본 사람과 느껴보지 못한 사람의 인생은 너무나도 다르다. 또 내가 이런 다정함을 가지고 있는 건 누군가가 내게 배로 그 다정함을 부어 넣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다정함이 얼마나 강력한지, 또 지금의 사회가 얼마나 다정함이라는 인간 고유의 특성이 고갈되어 있는지 느낀다.
이렇게 다짐하다가도 때때로 뾰족했던 기억이 지금과 같은 겨울이 깊어지는 밤에 불쑥불쑥 떠오르면 고마운 내 주변 다정한 이의 얼굴이 함께 떠오른다. 마음속의 적이 많고 스스로에게 너무나도 날카로웠던 어린 시절의 나에게 항상 곁을 지켜주며 다정함을 듬뿍 부어준 엄마가 떠오른다. 친구 같은 동생으로 늘 본인만의 다정함을 쓱 건네준 유진이가 떠오른다. 감정 전달에 서툴렀던 나에게 다정한 말과 미소로 우정을 만들어가는 법을 알려준, 이제는 가족과 같은 오랜 친구가 떠오른다. 그리고 다정하게 다가와 내 삶의 작고 큰 추억들을 선사해 준 가족들과 친구들, 자주 만나지 못해도 가끔 불쑥 안부를 물어주거나 소식을 전해주는 인연들의 다정함이 오늘따라 너무 고맙다.
당신들의 다정함으로 내가 인생을 조금 더 행복하게, 값지게 살 수 있게 되었으니 오늘도 다시 한번 다정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또 누군가에게 다정함을 베풀길. 그래서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다정한 사람은 필히 행복하니까.